2023년 6월 20일 화요일. 흐림
서울집도 뒷문 열면 산속이다. 요즘이 개화기인 능소화가 우리 담장에서도 곱게 피어난다. 그래도 10분 거리에서 오가는 자동차의 매연이 골짜기로 몰려 있다가 그 고약한 냄새를 훅 끼친다. 더구나 날씨까지 더워 달구어진 공기는 사람을 더 힘들게 한다. 그런데도 도시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은 일거리라는 생존에 목맨, 어쩔 수 없는 숙명의 주인공들이다.
우리 동네는 번듯한 집 한 채 없는 산동네다. 넘어가는 해에 벽이 달궈지면 한증막이 된다. 다들 골목 바람을 맞으려 골목 끝에 부채 하나씩을 들고 돗자리 위에 모여 앉아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친정 부모나 시부모의 도움을 받아 아기들을 키우느라 애들 소리도 나고 북적북적 살아있던 동네였는데, 자식들이 어느 정도 자란 손주들을 데리고 빠져나간 동네는 시골과 비슷해 9시만 넘으면 적막강산.
그래도 중늙은이들은 재개발로 아파트를 올려야 한다고 설치지만 70 넘은 노인들은 콧구멍 만한 방을 세 놓아 용돈으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 말을 귓등으로만 넘긴다. 재개발하겠다고 집 내놨다 들어살지들 못하고 알거지가 된다는 개발 괴담이 노인들에게는 공포요, 집 떠난 자식들은 노부모들 죽은 뒤라도 손에 들어올 것 같은 아파트 횡재가 탐나 구미들이 당기는지 기회를 노린다.
전 세계에 땅이 없는 나라 홍콩 정도를 빼고 우리나라처럼 아파트로만 된 공화국이 어디 있을까? 땅 값도 싸고 넓은 시골에 마저 왜 마천루를 짓는 지. 게다가 갈수록 30층, 50층 높이로 올리는 아파트를 보면 아찔하다. 시멘트가 굳을 시간도 없이 '빨리빨리 지어 올린' 공중누각이 언제 지진에라도 무너질까 무서워 나는 도저히 고층 아파트엔 못살 것 같다. 그래도 하느님이 보우하사 지진 없는 나라여서 저런 난립건물들이 버틴다.
10여년전 바로 이웃에 3층 다세대주택을 짓는데 얼마나 급하게 벽돌을 쌓아 올렸던지 하루아침에 3층 전체의 측면 벽 전부가 쏟아져 내린 충격적인 장면을 내 눈으로 보고는 다시는 아파트에 안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작년 ‘3080 재개발’이 무산되고서도 미련을 못 버린 이웃 아짐이 '민간재개발'(대강 원주민 10% 정도가 입주하고 90%는 쫓겨난다) 추진에 동의해 달라고 찾아왔다. 대답도 안 했다. 콧구멍 만한 단독주택이라도 박물관 삼아 제발 그만 건드리면 좋겠다.
어제는 석달마다 보훈병원에 보스코가 약을 타러 가는 날. 3개월마다 다니는 길인데도 왜 그리 자주 오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또 죽을 때까지 약을 달고 사는 그 많은 노인들을 보면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 CT 촬영을 하고서 별 이상 없다는 진단이 나오고 다시 석 달치 약을 처방 받았다. 내 두발로 당당히 걸어 다닐 때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벌써 무릎이 망가져 일어날 때마다 '아구구' 소리가 절로 나니 그것마저 사실상 요망 사항일 뿐.
오늘도 보스코는 가까운 한일병원 피부과 진료를 보러 가고, 내가 서울 올라오기를 기다려 약속을 잡는 ‘아우동문’들을 만나러 인사동엘 갔다. 날씨가 더워 오늘은 걷기보다 식사를하고 북촌 쪽에 있는 '열린 송현'이라는 공원을 산책 한 후 카페에서 수다로 시간을 보냈다. 광화문 가까운 옛 미국 대사관 부지가 비면서 그곳에 어느 재벌의 미술관을 짓기로 한 공터를 거닐며 일본에 미군에 서울 요소요소를 점령 당해 살아온 한반도 수치스러운 100년 역사의 자취를 들꽃이 가득 덮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좋아했던 '최루탄 할머니'’ 정귀남 노인의 장례식이 파주 종로 성당 나자렛 묘원에서 있었다는 뉴스가 떴다. 여성으로서 전쟁, 빨치산, 감옥 생활 등 한반도 역사를 관통한 삶을 몸소 사셨던 분이다. 약주를 한 잔 하시면 '부용산'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기억난다. 시위 현장에서 늘 꺼벙한 보스코를 귀엽다는 눈으로 안쓰럽게 바라보던 그분의 시선이 그립다. 부디 이젠 하느님 품에 편히 쉬시며 이 비참한 한반도를 하느님 대전에서 도와주시리라 믿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vXq3x4hz9gM)
보스코가 병원에 혼자 가니 모든 사람들이 딱하게 보고 친절하게 해주더란다. 진료 후에 책 바오로 수도원엘 뭔가 의논하러 갔는데, 혼자 오셨다고 이봉하 수사님이 집에까지 모셔다 주더란다.
집에까지 데려다 준 수사님에게 커피를 대접한다며 캡술 뚜껑도 안 떼고 커피를 내리다 말았다는데 수사님 보기에도 커피인지 티인지도 모르는 이 노인이 얼마나 한심스러워 보였을까? 그야말로 100% ‘실생활 부적응자’여서 아내인 내가 잠시도 눈을 못 뗄만큼 '손이 많이 가는 남자'다. 한일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마저도 어찌 처리할지 몰라 처방전을 그대로 들고 돌아온 것으로 보아도, 주변 사람들의 호의와 보살핌으로만 살아온 보스코를 보면 '하느님 손을 많이 탄' 사람이어설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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