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8일 일요일. 맑음
금요일 10시에 한국주재 교황대사를 5년간 지내고 귀국하는, 스웨렙 대사(Alfredo Xuereb)의 송별미사가 궁정동 교황대사관 경당에서 있었다. 정의롭고 자애로우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닮은 외교활동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리라. 우리와는 보스코의 주황청 한국대사(2003~2007) 근무 시절에 알던 인연으로 가까이 지냈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비서로서 보스코의 로마 방문 기회에 교황님을 뵙게 주선해주기도 했다. 우린 스웨렙 대주교님의 한국에서의 외교활동을 진심으로 성원했다.
프란체스코 교황님의 개인비서시절 교황님이 스스로 구두를 닦아 신으시고, 이발사가 깎아 놓은 당신 머리카락을 스스로 빗자루질 하여 치우시는 걸 보고는 “나도 저렇게 살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겠구나 싶었다”는 얘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을 때 그분 모습은 착한 목자 그대로였다. 2018년 그분이 한국에 부임하자마자 옛 정리로 그의 닷새 휴가(2018.7.26.~30)를 제주에서 함께 보낸 추억이 생생하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315853
그제 미사 중에 대사 활동에 당신과 함께 한 사람들을 일일히 호명하며 감사를 표하는데, 가까이 있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더냐가 그 사람 본 모습이라는 걸 아는 나로서는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부분 화려한 이임 리셉선을 개최하고, 각국 대사들과 지체 높은 분들을 초대하는데, 그런 행사를 개최하지 않고 지난 5년간 개인적으로 가까이 지냈고 마음으로부터 그분에게 친분을 보인 평범한 사람들만 초청하여 이임 미사를 지내고 소박한 리셉선을 갖는 점이었다.
어딜 가든지 하느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분이다. “5년간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편히 가시고 로마에서 다시 봅시다.”라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모래내 사는 호천이네가 한달반의 집수리 끝에 다시 이사를 들어온다. 광화문 궁정동까지 나온 길이어서 호천이네 집 구경을 갔다. 젊은 세대답게 심플하게 잘 고쳤다.
그 나이에 고쳤으니 앞으로 20년은 더 살겠다.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여 둘 중 하나가 병들어도 죽기까지 그 집에서 하나가 남기까지 캐어하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엄마가 실버타운에서 코로나까지 겹쳐 마지막에 외롭게 떠나시는 모습을 눈여겨본 우리 형제들은 모두 인간다운 마지막을 위해 자기가 살던 익숙한 환경에서 마지막을 보내겠다는데 뜻이 같다.
어제 토요일 오전. 빵기는 작은 손주 시우가 낚시를 하겠다고 어찌나 졸라댔던지(제네바 레만 호수나 동네를 흐르는 론강에서 낚시를 즐긴단다) 4,19탑 사거리에 있는 낚시 전문점에 갔다. 릴 낚시 낚싯대를 사 들고 돌아 오기에 레만호에 낚시를 드리우고 '그 고기를 잡으면 누가 먹느냐?' 물으니, 식구들이 모두 민물고기를 반기지 않아 고기를 잡기만 하고 호수에 도로 놓아주기로 며느리랑 약속했단다.
내가 전해 듣기로 우리 집안에서는 시아버님만 낚시를 좋아하셨고 누구도 물가에 가는 사람이 없었으니 격격세유전인가 보다. 민물 생선 역시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다만 어려서 어머님이 해주시던 묵은지 붕어찜을 기억하는 보스코만 좀 먹을 뿐이다.
예전에 우리 집 옆에 있던 ‘우리신학연구소’에 집을 빌려주셨던 집주인 홍선생님이 토요일 마다 낚시를 해오시면, 우리집 뒷문을 두드리시고 그날 잡아온 물고기를 주고 가셨다, “마누래가 물고기 들고 오려면 절대 낚시 가지 말래.” 하시면서. 실은 나도 비린내 나는 민물고기 손질은 꺼렸지만 그분의 처지와 보스코를 위해 '잘 먹겠습니다' 인사하고 받았다. 그 홍선생님도 부인도 돌아가셨고 홍선생님 그 널따란 집은 초라한 연립주택으로 바뀐 지 20년 넘었다.
토요일 오후에 우리 딸 ‘꼬맹이’가 남편 조서방이랑 우리 집을 방문했다. ‘꼬맹이’가 남편을 대하는 모습이 나와 많이 닮았다. 노동운동으로 남편과 떨어져 있으면서도 꿋꿋하게 자기 일을 하는 케리어우먼이다. 결혼 후로도 민주화 운동으로 남편이 몇 차례나 투옥되던 시련을 견뎌낸 철의 여인이기도 하다. 우리 네 딸의 성격과 생활 방식, 태도가 그렇게 달라도 서로 잘 지내는 게 사랑스럽다. 우리에게 맛있는 저녁을 대접하고 두 사람은 성남으로 돌아갔다. 둘째 순둥이도 그날 관구관에 일보러 갔다 '어쩌다 남매' 빵고신부를 찾아보고 왔단다.
빵기는 7시에 공항버스를 타고 떠났고 2주 후면 다시 가족을 데리고 한 달 여름 휴가를 보내러 귀국한다.
우이성당 주일 9시 미사가 일반 미사로 바뀌었다. 본당신부님은 강론에서 엊그제(금요일) ‘사제 성화의 날’이어서 그날 신학교 들어갈 때의 벅찬 감회에 대한 회상을 말씀하셨다. 그 약속, 그 서약대로 살아가려는 신부님이 아름답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택하실 때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을 골라서 그들을 대단한 사도들로 만드셨던 것처럼, 그분께서 당신의 사제생활도 이끌어 주시리라 믿는단다.
공지사항에서 앞으로는 주일 헌금과 교무금을 핸폰앱으로 지불하고, 주일미사에서도 제단 앞으로 나와 바코드에 핸폰을 대서 헌금을 결제한단다. 정성스레 헌금을 준비하여 흰 봉투에 담거나 봉헌함에 넣던 우리 세대의 정서와는 안 맞는다. 하느님께도 인간의 세태를 바라보시기 쑥스럽고 한심하실 듯하다. 오늘 저녁에는 모처럼 우이천변을 거닐고 로사리오를 염송하면서 오늘 30도 넘었던 초여름 열기를 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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