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15일 목요일맑음


서울 다 가서 광명중앙대병원장례식장에 모신 이계숙(안젤라) 아주머니를 배웅하러 계획보다 하루 앞당겨 어제 지리산을 떠났다. 아침을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들고 집을 나섰다. 아침 기도도 로사리오도 달리는 차안에서. 단지 걱정은 하루 일찍 떠나느라 한길사 원고 마무리에 겨우 한 시간쯤 자고서 밤을 꼴딱 새운 보스코. 왜 농부는 해거름에 바쁘고 글 쓰는 사람은 마지막이 돼서야 발동이 걸리는가?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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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그래도 덜 한 편인데 빵기나 빵고는 2~3일이라도 밤을 날리며 끝갈무리를 한다. 어떻게 그렇게 둘 다 아빠만 닮았는지. 게다가 두 아들은 아빠보다 더 심각하다.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에 몰려야 천둥같이 번쩍 아이디어가 떠오르는지 '우리집 세 남자'의 속을 모르겠다


나는 체질적으로 그러질 못해 무엇이든 미리미리 해둔다. 여행을 가도 보스코는 내일 아침에 챙기면 되지 하는데 나는 차 키만 돌리면 떠날 수 있게 해 놓아야 안심이 되지, 안 그러면 아예 밤새 잠이 오질 않는다. 그러니 보스코처럼 꼬박 하루 걸릴 만한 글을 하룻밤에 끝내려니 마음이야 얼마나 급했을까!


며칠간의 배 봉지 싸는 노동으로 얼굴은 새까맣게 타고 머리칼은 꺼벙하기까지 하니 보스코 행색은 '완죤 시골 영감 상경기'. 8시쯤 떠나 1시쯤 광명에 도착하니 유가족이 안 보인다. 모두 입관실로 가고 없다. 임실댁의 영정과 우리 둘만 영안실에 오붓이 앉아 있으려니 평소 같은 가족적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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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논가에 심은 콩이 별라 잘 됐에요. 대사님은 폐암 걸렸으니 요래 영양 좋은 걸 드셔야 해요." 작년 가을 폐수술을 하고서 내려가니 눈물 바람으로 보스코를 맞아주었고, 실히 한 되 넘는 햇콩을 가져다 주기도 하셨다. 찹쌀도 팥도 고추가루도 친정언니처럼 챙겨주던 평소의 모습으로 우릴 바라보신다


우리 둘은 때마침 용산성당에서 온 연령회 여교우와 함께, 핸폰을 뒤져서 '위령기도'를 바치며 그 많은 천상 식구들에게 좀 떨어져 앉으면서 안젤라 아줌마 자리 하나 마련하시라고 부탁드렸다. 유난히 금슬좋았던 남편이 '깨팔러간지' 딱 7년만에 돌아와서 부인을 데려가셨다. 보스코의 주선으로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대세(바오로)를 받고 돌아가셨고, 문정리 앞산에 묻힐 적에도 보스코가 천주교식 하관예절을 해드린 뒤 부인은 함양성당에서 예비자 교리를 하고 입교하여 안젤라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휴천재 내려와 살면서 가까워졌고 7년 간격으로 부부 양편의 장례를 치르는 인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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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연도'가 끝날 즈음 서울교구 경찰사목위원회 태철민(알제아리오)신부님이 거여동성당 보좌신부님이랑 오셔서 장례미사를 거행하고 사도예절도 해 주셨다. 막내아들 미카엘씨는 자기 가족이 평소 '용산성당에서 성당일에 열심했던 보상을 어머니와의 이별 때 미리 좀 땡겨 주시는지' 모든 게 술술 풀린다고 감사해 한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93566

주례 신부님은 강론으로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를 읊어 들려주셨는데, 하느님의 마음을 고스란히 받아서 생명을 품에 잉태하고 낳고 키워 제 갈 길로 떠나보내고서 자취 없이 사라지는 여자의 삶을 간추리고 있었다. 울 엄마가 했던 그 힘든 삶과 수고를 자녀인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그 열매만 똑똑 따먹었다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사실 엄마는 그렇게 희생만 희생만 하면 안 되는, 사랑의 응답을 고대하는 어엿한 한 여인이었는데, 우리는 엄마가 떠나고 나서야 그걸 아는 멍충이들이었다. 그래도 임실댁 안젤라 아줌마는 사진 속에 웃고 있었다. 마을에서 우릴 볼 적마다 늘 웃던 그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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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 경 서울집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주인이 멀리 있으면 '엄마가 집나간 집 아이처럼' 흙 범벅을 한 집과 마당은 주인의 손길을 목 빼고 기다린다. 지난번 심었던 영산홍이 뿌리를 내렸고 각기 예쁜 자태를 자랑한다. 그러나 대책 없이 옆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대나무, 옥잠화, 은방울, 둥굴레에 여간 거북해들 하고 있었다. 잡초는 왜 내 눈에만 보이는지... 전규자 목사가 가져다 준 흙에 딸려 왔는지 괭이밥과 망초, 달개비가 새로 깐 흙 위로 소복하게 올라와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다섯 시부터 정원에 나가 풀을 뽑으면서, 보스코더러 마당의 여기저기에 시든 장미를 잘라내라 부탁했더니 '아침 먹고 하겠다'는 대꾸. '해가 나면 일하기 더운데 왜 그냥 미룰까?' 이해가 안 돼지만, '성나중씨'에게는 눈뜨자마자 마당으로 내려가는 내 극성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이나 보다.


한낮이 되어서야 마당에 나와 시든 장미를 가위질 하고는 "나는 들어가 샤워할 께." 하며 사라져버린다. '나도 남자로 태어났으면' 싶을 때가 이럴 때다, 나도 한번 저런 말 한 마디만 남기고 사라져 보고 싶다, 뒷치닥거리를 다 해주는 사람이 따로 있고.... 


지리산에서 포트에 옮겨 키우다 싣고 온 루피너스와 자란, 그리고 분홍 루드베키아를 심었다, 지난번 전목사가 나무를 뽑아가고 난 빈자리에. 점심시간을 훨 넘어까지 정원일을 하다 보니 다리가 후들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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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쯤 빵기가 커다란 여행 가방 둘을 끌고(서울 도착은 월요일이었는데 공항에서 직접 연수원으로 가서 회합을 마치고 오는 길이다) 들어오고, 5시 쯤 빵고가 형 보겠다고 도착했다. 빵기는 이번 귀국길에 아직 짜장면을 못 먹었다며 중국관에 가잔다. 아직도 짜장면과 탕수육을 찾는 걸 보면 어려서 좋아하던 그 모습 그대로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작은아들은 급히 수도원으로 돌아가고, 큰아들은 아래층에서 발표문을 정리하고 있고, 남편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고, 나만 '혼자'(?) 남아 일기장을 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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