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13일 화요일. 맑음


평소에 마음 써주던 친구들에게 자그마한 감자 박스를 만들어 농협택배로 보냈다. 보기엔 하찮은 거지만 마음을 담아 보내니 좀 묵직할 게다. 나도 누가 손수 만들고 손수 농사지은 것들을 받으면 내가 이걸 받을 만한 일을 그에게 했던가?’ 되짚게 된다. 택배를 부치려 나가며 우리 감자밭 이랑에 누렇게 말라 죽은 감자줄기를 건너다 보니 기역자 허리에 자식 농사로 뼈와 가죽만 남은 이 동네 아짐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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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단골 휴천농협은 말하자면 우리 휴천재 생활의 주거래은행이다. 택배 박스를 집에서야 끙끙거리며 차에 실어도 그곳에 가면 젊은 직원이 번쩍 들어 처리해준다. 워낙 나이든 어르신들이 고객 대부분이라 직원들의 몸에 뱄다.


거기서 동네 아짐을 만났다. ‘농가 몫돈만드는 서류를 하는데 읍에 있는 의료보험공단에 가서 필요서류를 떼오라니까 막무가네로 그냥 해달란다. 담당자가 딱해 보여 내가 읍내에 데리고 갔다 오겠다고 나섰더니 담당 과장이 나를 살짝 불러 그렇게 해주지 말란다. “노인이 이자 많이 얹어 준다는 농가목돈이 왜 필요하겠느냐? 결국 그 돈 챙길 자녀가 서류도 떼오고 모시고도 다녀야 하는 것 아니냐? 자칫하면 내 자식은 귀하니까 어떻든 남의 손을 빌리려는 염치없는 심사일 수 있다.”는 설명. 그래선지 요즘 관청에는 해당 서류 대신 작성해드리지 않습니다.”라는 공지가 자주 붙는다. 나도 내심 과장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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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기가 중딩2 때의 일. 마당에 김치독을 묻으려는 참에 근육질 동생 호천이가 왔기에 부탁을 했다. 그러자 누나 아들 시켜. 우린 초등학교 3학년 때도 김치독 묻었어.”라며 거절했다. 맞는 말이었다. 어려서는 그런 일 꼬마에게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왜 중딩2가 어려서 못할 것 같고 내 아들이라 왜 아까웠을까그 일로 존심이 상했던지 그날 이후 두 아들 빵기 빵고는 엄마, 우리가 할 께 남 시키지 말아요.”라며 집에서 남자가 해야 할 가사노동을 도왔다(물론 아빠는 아까우니까예외로 모시고.)


보스코는 그제 어제 오늘 사흘째 배봉지를 쌌다. ‘배농사 짓는 사람이 배봉지 쌀 일꾼을 못 구하거나 봉지 싸기 지겨워서 배농사를 포기한다는 소문도 나는데, 보스코는 스물 두 그루 배나무에 참을성 있게 싸고 또 싼다. “그냥 봄에 배꽃이나 보고 과일농사는 포기해요.” “싫어.” “그럼 언제까지 배농사를 지을 꺼요?” “배가 달릴 때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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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얼굴이 벌게지도록 한나절 배봉지를 싸서 일을 마쳤다. 그만하라고, 어차피 물까치한테만 좋은일 시킨다고, 한 가지에 1매씩만 싸라고 말렸지만 새로 사온 봉지 상자 절반이 들어갔다. 저게 다 자라서 익는다면 올 배는 탱자만큼이나 자잘할 게다. 그것도 병들어 떨어지고 태풍에 떨어지고 물까치가 쪼아서 떨어지고 남는 경우에 하는 말이지만....


농사꾼은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 자식 같은 곡식을 키워내던 땅을 놓고 가기가 제일 힘든가 보다. 며칠 전 임실댁이 서울에서 내려와 자기 논에 모내기 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서 다시 서울로 올라갔는데, 오늘 그미의 부고가 마을에 돌았다. 영감님이 가신지 7년만이다. 80 평생 흙에 묻혀 살다가 그 흙의 품으로 돌아가 흙이 되니 생명의 순환이라는 인생의 이치에 순응하는 걸 배우는데 농사보다 더 좋은 건 없다.


임실댁이 벼가 심겼나 마지막으로 둘러본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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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려던 일정을 임실댁 문상도 할 겸 하루 앞당기니 할 일이 많다. 이틀간 겨울 잠자리를 여름 잠자리로 바꾸며 세탁기를 돌리고 돌렸다. 마당 잔디밭에 흙도 깔고 옮겨심은 영산홍에 물도 주고... 서울 가는 일만으로도 이리 바쁜데, 임실댁은 저 모든 걸 내려놓고 80 인생을 떠나려니 얼마나 마음이 바빴을까? 울엄마가 만 20년을 보내시고 떠난 실버타운 유무상통노인들에게 설립자 방상복 신부님은 '놓아라'라는 가훈을 커다랗게 써붙인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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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페북에 올리길, 두더지가 고추밭을 망치는데도 집냥이는 팔자 편하게 잠만 자더란다. 화가 나서 , 양식만 축내지 말고 명색이 고양이라면 두더지라도 잡아와!” 소리 질렀더니 정말 두더지를 한 마리 잡아다 놓고 다시 늘어지게 자더란다. 나도 그 글이 생각나서 오늘 점심상에 남은 생선 대가리와 뼈를 주며 단골 길냥이한테 매일 밥만 얻어먹지 말고 죽은 두더지라도 좀 물어와!” 했더니 저녁 무렵 부엌 뒤 데크 밑에다 죽은 두더지를 물어다 놓고 갔다. 거의 썩어서 가죽과 발톱만 남은 시체여서 아주 무성의한 보답이지만 '길냥이가 사람 말 알아듣다니?' 정말 깜짝 놀랐다. 렇담 죽은 두더지 말고 다음엔 두더지를 산 채로 잡아오라고(dead or alive)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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