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1일 일요일. 흐림
휴천재에 능소화가 피기 시작했다. 금요일 아침. 아직도 위아랫 눈섶이 붙어있는 ‘심봉사’ 보스코는 효녀 심청 전순란의 모든 도움을 받는다. 그 기분이 그럴듯한지 완전 중환자 시늉이다. 나도 뺨과 귀, 목덜미에 깔따구의 습격을 받았지만 약간 붉고 좀 가려울 뿐이다. 그렇다고 나까지 엄살을 부려서는 안될 것 같아 ‘저렇게 힘드니 어찌까이?’ 바라볼 뿐. 주사를 맞았고 약을 먹고 있으니 기다릴 밖에.
보스코는 칭병을 하고 그날 오후부터 시작하는 ‘살레시오고등학교 졸업 60주년기념’ 1박2일 여행에서 하루를 빠지게 되었다. 동창이자 그의 대자인 종수씨가 ‘사이회’[사레지오 2회 동창회] 총무로서 일체를 주관하는데 서운해 했다.
큰아들 빵기가 나이제리아에 파견갔다 사진을 보내 왔다. 흐르는 강물은 흙탕물인데 저 물을 어떻게 마시나 걱정스럽다. 아마 여학고에 양재를 가르치는 재봉틀을 보급한 듯한데, 그곳 아이들의 눈이 흑진주 같아 그 보석 같은 아이들에게 우리로서는 꼭 뭔가 해 주어야 하는 부채의식을 갖는다. 아프리카의 가난과 불행, 아프리카의 질병과 전쟁은 유럽과 미국이라는 제일세계에 모든 책임이 있을 만큼이다.
이젠 낮온도가 30도를 넘나든다. 이번에 옮긴 꽃들이 뿌리내릴 때까지 며칠에 한번씩은 물을 주고 있다. 텃밭에 채소도 부쩍부쩍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어제는 올해 첫 오이 두 개를 땄다. 지난번 길가에 떨어져 자란 들깨를 캐온 모종이 제법 커서 번듯한 잎을 펼쳐 보인다. 가끔 떨어진 아욱씨가 여러 포기가 돼서 솎다보니 한 끼 국거리로는 충분하다. 땅에서 살며 땅이 주는 그 풍요로움에 매일이 신비롭고 고마운 나날이다.
어제, 토요일 10시에 담양까지 가서 ‘메타세코이아길’ 입구에서 보스코의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광주 모교에서 오후 행사가 있어 가기 전 메타쎄코이아 길을 걷기로 했단다. 80이라는 나이가 각자에게는 실감이 안나겠지만 상대방 얼굴에서 서로 자기 처지와 현실을 확인하는 듯했다. 한 두명 빼놓고는 걷는 모습도 엉거주춤한데 마음만은 고등학교 청춘 그대로들이다.
남편을 따라온 동창 부인은 나 한 사람뿐이지만 50년간 자기네 눈에 익숙해진 얼굴이어서 다들 반겨준다. 김정호의 하얀나비 시비도 반가웠고, 커피숍에서 만난 김희중 대주교님(5회 졸업생)도 반가웠다.
12시가 좀 넘어 산보를 마치고 카페에서 팥빙수를 준다. 학교 주최측에서 2시쯤 점심을 준다고 했다는데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어 80세 노인들은 그날 점심을 굶고 서울로 돌아갔다. 우리부부는 돌아오는 길에 ‘담양 떡갈비’로 허기를 채웠다.
학교에 가 보니 2회(졸업 60주년), 12회(50주년) 32회(30주년)들이 와 있었다. 30주년을 맞은 이들은 청년들이어서 보기에 좋았다. 12회 졸업생 우리 막내 서방님도 와 있어 반가웠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이 모두 같은 마음으로 학교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다는 사실이다. 80 노인들이 나한테도 자기들이 받은 교육에 고마워하며, "우린 부자로는 못살아도 악당은 없어요,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라는 자부심을 말로 건넨다. 돈보스코의 교육이념이 "착한 그리스도인, 선량한 시민"이니 절반은 분명히 성공한 셈이다. 졸업 후 신구교에 입교한 사람들도 의외로 많단다. 살레시오 교육을 받은 보스코만 보더라도 그가 받은 교육의 혜택이 나에게까지 미치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1950년대에 한국살레시오회 진출을 선도한 마신부님, 아이들에게 깊은 돈보스코 사랑을 심어준 원신부님의 흔적을 따라 학교 한 바퀴를 들며 그분들이 살아계셨을 때 (졸업생의 아내인) 내게도 베푸셨던 사랑이 기억난다. 사람이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 교육이다. 살레시오 교육이 평생을 관통하여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사랑이더라.
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49
오늘, 일요일 아침. 공소예절을 끝나고 돌아와 아침을 먹고 둘이서 텃밭 배봉지를 싸기 시작했다. 다른 해보다 2주 정도 늦었다. 적성병이 너무 심해 제대로 된 열매를 먹으려나 걱정을 하면서도 하느님이 알아서 몇 개쯤이야 먹여주시려니 싶어 그냥 싼다, 논농사든 밭농사든 농사는 정작 하느님이 하시니까. 아침 나절 내내 쌌는데 창고옆 네 그루에서 일을 마쳤다.
사흘 전 보스코에게 잉구가 가져다 정자에 놓아둔 양파를 창고에 갖다 놓으라 했었다. 오늘 아침에 냉동실에서, 영하 18도의 냉동창고에 들여 놓은 걸 보고 정말 놀랐다! 내 머리가 쭈삣! '어? 보스코마저 말귀 못 알아듣는 노인? 진짜노인?' 본인이야 '오래 먹으려면 예냉고에 넣어야 한다 해서 [냉동실이] 냉장실인 줄 알았다.' 라지만 나는가슴이 철렁했다. 오늘 온 잉구에게 일러바쳤더니 "마, 내가 안 언 걸로 바꽈 주께."라고 한다. 요즘 보기 힘든 정말 착한 경상도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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