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14일 일요일. 맑음


[크기변환]IMG_4152.JPG


금요일 아침. 전날 심은 연산홍들이 궁금해 마당에 나가보려니까 보스코가 불러 세운다. '또 새벽부터 또 무슨 일을 하려고?' '어제 바깥에서 밤새운 애들 잘있나 보느라고!' 지리산속 만큼은 못해도 우이동 공기가 도시 답지 않아 걔들도 잘 쉬고 막 일어난 얼굴이었다. 기특하다고 칭찬해 주고서 '잔디밭 잡초 조금만 뽑아야지'하며 주저 앉은 게 두어 시간을 후딱 넘겼다. 집안일은 어디서든 몰두하면 흐르던 시간이 멈추듯 무아의 경지로 지나가버린다. 단순 노동이 주는 큰 특혜다.


[크기변환]20230512_131505.jpg


[크기변환]20230513_074057.jpg


[크기변환]20230512_170041.jpg


서울집 에어컨은 25년을 썼다. 성능과 요금이 요즘 것에 비해 가성비가 턱없이 떨어져 이번에 바꾸면 우리 생의 마지막 준비려니 싶어 바꾸기로 했다. 10년 후 서울로 귀경해서 바꾸면 몇 년도 못 쓰고 먼 길 떠날 것 같아서 이참의 대대적 집수리에 맞추어 바꾼 것이다. 11시에 설치 기사 두 명이 왔다. 벌써 한 집에 가서 설치하고 오는 길이라고, 우리집이 두번 째인데 4시간 정도 걸린다고, 그 다음 오후 네 시에는 오늘 마지막으로 설치할 집이 차례를 기다린다며 정신없이 손을 놀린다.


점심을 해 주려다 중국집에 전화를 해서 간짜장(보스코는 볶음밥)을 시켜서 함께 먹었다. 저녁식사 준비가 따로 있어서이기도 하다. 저녁에는 종수씨네 부부와 나가서 저녁을 먹자고 약속한 터이지만 보스코가 나가기 싫어해서 집에서 준비를 했다. 지리산에서 가져온 푸성귀와 봄나물로 차려진 소박한 밥상에 반가운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하하호호'하면 참 즐겁다. 또 이렇게 집에까지 오가며 만날 수 있는 친구의 숫자도 점점 줄어든다.


[크기변환]20230512_193422.jpg


토요일 오후 3시에 명동성달엘 나갔다. 한때 '민주화의 성지'로 여겨졌고 우리가 60여년 드나들던 성당이 관광지로 변해 있어 너무 생경한 느낌을 주었다교구청은 삼엄한 철문과 '출입금지' 표지판들로  신자들과도 심지어 성직자들과도 멀찌감치 거리를 두노라 선언하고 있었다. 그러니 한국천주교 신자 주일미사 참여율이 10%라는 통계가 자연스럽기도 하다. 유럽의 가톨릭신자 주일미사 참여는 3%! 그러니 수백년 묵은 고색창연한 성당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우려대로, 하느님의 백성이 기도하는 집이라기보다 모두 (구경꺼리)문화재로, (한 시대 종교 성황을 보여주는)박물관으로 변한지 오래일 수 밖에.)


명동성당에서 보스코의 친구 이민상 의사의 딸 선주의 혼배미사가 있었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우리가 알아온 여식이다. 요즘은 신랑 신부가 너무 늦게 결혼들을 하니까 80줄 신부 아버지와 그 친구들이며 40줄 들어가는 신부와 그 친구들이 모여든 광경이 생소하지도 않다. 100세 장수 시대인 만큼 나이 40에 결혼해도 60년은 살겠지. 다만 결혼식에 갔다 온 양가 부모의 지인들은 귀가하면 탈진도 할 게다. 보스코도 집에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누워 깊이 잠들었다.


[크기변환]20230513_144833.jpg


[크기변환]20230513_145245.jpg


[크기변환]20230513_155307.jpg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부터 평소에 인산인해를 이루는 명동길,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길 전체에서 단 세 명! 오늘 모처럼의 서울시내 외출에서 세어 본, '하이힐 신은 여자' 숫자다. 결혼식 가는 차림으로 외출한 나도 단화 차림이었는데 그것도 구두라고 끙끙 앓으며 걸었고 귀가해서도 다리가 몸살 중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옷도 신발도 편한 대로 차려 입고 핸드백을 들기보다 헝겁가방을 멘다. 다들 운동화를 신고, 심지어 슬리퍼 차림의 처녀들도 흔하다. 화장도 퍽 수수해졌다. 나 편한 대로 사는 삶도 타인에게 피해가 없다면 나쁘지 않다. 옛날 우리 여인들의 신발 패션을 책임지던 금강이나 에스콰이어 같은 회사들은 무슨 일을 할까? 패션 운동화를 만들까?


[크기변환]20230514_110307.jpg


오늘 일요일. 9시 미사에 맞추어 우이성당에 갔더니 마당이 조용했다. 본당교우 전체가 소풍(성지순례)을 갔단다. 집으로 돌아와서 수유성당 11시 미사에 갔다. 수유성당은 30년 넘게 '우리 본당'이었는데, 우이성당으로 저금 나오고 보니까 웬지 서먹했다. '지구장' 신부님이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하고, 대문간에는 본당신부님과 보좌신부님, 본당수녀님이 일렬로 서서 교우들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고객이 왕이다'라는 의미일까?


집에 와서 부지런히 점심을 차려 먹고 동대문으로 나갔다. 2시에 그곳 전철역 1번 출구에서 한신대 아우 여동문들과 만났다(내가 시골 사니까 내 상경일자에 모임을 맞추곤한다). 8명이 나왔다. '한양도성길'로 낙산을 오르며 한적한 성곽 바깥쪽 숲길을 걸었다. 성곽 벽면 전체를 보고 걸을 수 있어 역사의 장면을 따라가는 기분이다. 낙산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전경, 성곽 위로 올려다보이는 북한산과 늦봄의 하늘이 고았다


[크기변환]20230514_151100.jpg


여덟 모두가 산책에 만족하고, 수다도 떨고, 소박한 감자탕 저녁도 먹었다. 먼저 편백샤브집에 들렸는데, 식대가 25천원이라고 적혀 있어, ‘커피값 합쳐 식대 2만원을 넘어가면 안된다는 우리네 규정에 따라 일단 퇴각했다. 알뜰한 총무, 단식으로 밥 안 먹는 사람에게서도 참가비를 받아내는 깍쟁이 총무, 학교에서 배운대로 소박한 삶을 영위하는 아우님들이 귀엽다


한목사와 성혜씨랑 금계국이 만발한 천변길을 걸어서 지하철을 탔다. 어둑한 동네길을 걸어 올라오며 생각한다. 가끔 4차원의 세계에 사는 동무도 있고쌀에 섞인 뉘처럼, 한신 동문치곤 드물게 '태극기 아줌마'로 변신한 사람도 있지만, 나이 60대를 넘어서도 '한신에서 함께한 시간'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엮어지는 만남이 있어 아름답다


[크기변환]20230514_142856.jpg


[크기변환]20230514_15433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