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7일 일요일. 비
이렇게 여러 날 비가 오면 마음이 우울해진다. 금요일, 후배 전목사가 가까운 이웃동네 산내에 왔다고 전화를 했다. 일행이 여섯이란다. 한둘이면 후딱 점심을 준비해 함께 하자고 해야 하는데, 비가 와서 푸성귀를 거둘 수도 없고 시장을 보러 가려도 시간이 없다. 이웃 원터마을 엄천식당에서 시골밥상이라도 대접하려고 전화를 했더니 그 식당도 비가 와서 쉰단다. 전목사 일행도 비 때문에 외출을 못하고 초대받아 내려온 그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단다.
그럼, 점심 후에 휴천재에 와서 차라도 한 잔 하자고 초대했다. 그리고 바빠졌다. 뭘 사러 나갈 수가 없으니 다 자가생산! 케이크를 굽고 쿠키를 만들고 상차림은 보스코가 도왔다.
휴천재를 방문한 6명중 춘천에서 목회하는 목사 부부를 빼고는 다 '대체의학'을 하는 중년 여인들. 보기에도 든든하다. 한국여자들은 세계 어디에 가서도 저 모습으로 자신들의 자리를 굳혀가기에 나 또한 한국여자로 태어난 게 자랑스럽다.
전목사는 지난해에 김포에 새 집을 마련했다. 뭔가 주고 싶었는데, 다행히 그 뜰에 심을 만한 연산홍을 어제 얻어와 나눠줄 수 있었다. 종이 박스 두 개에 연산홍들을 챙기고 명자꽃과 작약도 캐주었다. 그미가 집에서 떠날 때 남편이 호미를 쥐어 주며 "지리산 가거든 뭐라도 캐오라." 했다는데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아 다행이다.
우리에게는 '매일이 휴일(everyday holiday)'이다 보니 정신줄 꼭 잡지 않으면 세월 가는 시간감각도 놓치기 쉽다. 공소회장인 진이아빠가 주말여행을 가며 공소미사 안내를 우리에게 부탁했던 차라 알람을 6시에 맞추고 정시에 일어나 보스코를 깨워 공소로 내려갔다. 그는 제대에 미사 준비를 하고 나는 한 달에 한 번 미사후 갖는 아가페 조찬을 부지런히 준비했다.
그런데 7시면 미사 시간인데 20분이 지나도 아무도 안 온다. “뭐야! 다들 우리를 배신한 거야!?” 임신부님께 전화를 했다. "신부님, (미사 드리러 안 오고) 뭐하시나요?" "비가 와서 (못 오신다? 아니, 비온다고 문닫는 엄천식당 여주인도 아니고!)." 그런데 전화는 이렇게 이어진다. "집에 있는데 오후에도 비가 온다니 꼼짝 못할 것 같아요. 내일 7시 미사 때 만납시다." "??? 헐! 여보, 오늘이 주일 아닌 토요일이네!"
내 장탄식이 이어진다. "아아, 우리가 집으로(하느님 나라로) 돌아갈 때가 됐나 봐. 정말 밥숫가락 내려놓을 때 왔나 봐." 새벽부터 내가 깨워 엉겁결에 공소에 내려왔던 보스코가 하는 말. "이젠 1+1도 1이 안 되네.
5월 6일은 빵고신부 영명축일. 유명일 신부가 사진을 보내오면서 어미인 나더러 아들 축일 축하해주라고 넌지시 귀띔해줬다. 우리 작은아들 자기 수호성인 도메니코 사비오 같은 순수한 성덕의 길을 가도록 기도한다.
성도메니코 사비오 축일이라 빵고신부가 공동체 미사를 주례하고 케이크도 잘랐나 보다
오늘은 '진짜 주일'에다 5월 첫 주여서 우리 공소에 임신부님이 미사 드리러 오시는 날. 공소신자 모두에겐 기다림이며 기쁨이다. 순박하고 따뜻한 임신부님의 성품, 함께 동행하는 봉재언니, 그리고 귀요미와 이사야는 늘 우리에게 종합 선물세트다.
미사도 좋고 미사 후 애찬은 우리 모두의 즐거움이기에 주부들이 그만큼 준비에 정성을 쏟는다. 내일이 어버이날이어서 미루가 공소에 속한 모든 어버이를 위해 케이크를 마련해 와서 한결 자리가 흐뭇했다.
그리고 오후에 걸려온 위급전화! 공소미사 후 집에 올라간 체칠리아가 빗속에 꽃을 심겠다고 목장갑을 끼다가 장갑 속에 들어와 있던 지레에 물렸단다! 한뼘 넘는 커다란 지네! 온몸에 마비가 오고 심한 통증과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읍내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해독 주사를 맞고 있단다.
10여년전 보스코도 같은 경우를 당해 병원신세를 졌다. 이불 속에 들어와 있던 지네한테 허벅다리를 물린 적 있다. 나도 신발 안에 커다란 지네가 들어와 있었는데 발을 넣는 순간 뭉클했지만 지네가 내 발에 으깨지고 말아 나를 미처 못 물고 죽었다. 시골살이 하려면 지네에 물리지 말자. 물리면 다른 한 마리를 꼭 찾아 위험을 피하자. 지네는 나와 보스코처럼 꼭 부부 한 쌍으로 함께 다닌다.
비가 많이 와 휴천강 물이 크게 불었을 것 같아 물구경 갔다. 장마비에 하릴없이 꽃잎을 떨어뜨리는 꽃들도 구경했다. 우중에서도 찔레꽃만은 짙은 향기를 뿌리고 있었다. 제주여행으로 심한 독감에 걸려 여러날 고생하는 큰딸, 발을 다쳐 몇 달째 고생하는 둘째 순둥이, 꼬이고 꼬이는 정국에 로사리오를 드리며 송전길을 거닐었다, '찔레꽃 향기가 너무 예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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