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30일 일요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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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아침. 휴천재 텃밭 축대와 길가 축대에 자라는 모든 덩굴식물들이 본토 진출을 노리고 있어 해마다 봄철과 한여름이면 전쟁을 벌이다시피 한다. 성을 지키는 군대가 없으니 용병(傭兵)을 써야 한다. 이 성에는 늙은 용병 한 명과 성주가 산다. 풍찻집을 성으로 삼고 있는 돈키호테의 라만챠를 떠올리면 된다.


날이 더워지면 덩굴도 억세지고 풀들도 해 보기 힘들 텐데... 내일 비 온다는데 비맞고 더 승하기 전 쟤들을 토벌해야 하는데...” 성주의 말에 늙은 기사가 낫과 손톱, 절단기를 들고 사다리를 찾아들고 텃밭으로 내려간다. 그가 사다리에 올라 도깨비방맹이가 거의 다 덮은 축대를 걷어내고, 염치 없이 곁방살이 하는, 뽕나무, 복분자, 북나무, 개산초 등을 쳐낸다. 저 용병이 어느 나이까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낫을 휘두르며 성곽을 사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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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을 한참 넘기고서 일을 끝낸 (그 시간에 나는 스콘을 구웠다) 보스코가 익은 새우 얼굴로 올라왔다. 점심을 먹자마자 그는 곧장 흔들의자에 누워 두어 시간을 푹 잤다. 용병에게 지급하는 봉록도 없으려니와 성주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치곤 너무 노쇠해 철갑은커녕 낫도 주체 하기 힘들어질 게다.


길가 축대도 평정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터라 3시쯤에는 내가 낫을 들고 내려갔다. 사위질방, 환삼덩굴, 뱀딸기, 노박덩굴 등등, 딴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식물을 모조리 제거했다. 나의 휴천재 사수 작전은 밤 8시가 넘어 끝났다. 길에 던져진 잡초를 걷어 한켠으로 치우고 대빗자루로 길을 말끔히 쓸었다. 가로등 불에 선선한 산공기를 마시며 하루를 쓰레질하는 상쾌한 기분은 시골살이만 누리는 특권이리라. 토요일 아침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려 내가 간밤에 빗자루질까지 한 시멘트길을 하느님이 물청소로 마무리지으신다. '하느님 쌩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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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그동안 몸이 아파 서너 달 서울 아들네집에서 정양하고 돌아온 '임실댁'을 찾아보았다. 몸이 쇠잔할 대로 쇠잔한 말기암에도 농사 지을 태세로 긴 목장화를 신고 나서는 태세라니! ‘전사(戰士)는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는 기염도 있지만 농부는 죽어도 흙으로 스러진다는 각오였다


나이 팔순 넘으면 아프더라도 하고자푼 짓 다 하고, 먹고자푼 것 다 먹고, 가고자푼 곳 다 가시라. 요로콤 아름다운 강산에서 한도 원도 없이 살다가, 더 좋다는 하느님 나라에, 서방님 곁으로 가시는 것도 즐거운 일이니까.”라는 요지로 위로했다. '임실양반'은 7년전 보스코에게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대세(代洗)를 받고서 앞 산 양지로 옮겨 누웠다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93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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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스.선생 부부를 못 보았고 비도 내리는 날이어서 친구보러 도정으로 올라갔다. 그 집도 어제 부산에서 와서 특별한 찬은 없지만 보고 싶으니 점심을 함께 먹잔다. 두 집이 연합하여 차린 밥상에다 후식으로 내가 구워간 스콘과 커피를 곁들이니 수랏상이 안 부럽다.


어떻게든 보스코를 걸리겠다는 일념으로 음식을 배냥에 지우고 올라 갔는데, 올 때는 그 집 작은 딸 나래가 생산한 수제 맥주가 배낭에 담겨 내려왔다. 오늘 작은아들 보러간다는 내 자랑질에 수제맥주 좋아하는 아들 주라고 챙겨준 캔. 길가엔 층층나무, 오동나무가 꽃을 피우고 고사리가 귀여운 주먹을 내밀고 비에 젖는 머언 지리산은 눈이 파랗게 물들도록 짙푸르다. 문상 널따란 밭에 아들 며느리랑 고추를 심는 강씨네 아짐, 가랑비를 맞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산나물 삶는 잉구 오메 말고는 나른한 빗속에 마을 인적이 끊긴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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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주일복음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64

주일 아침 공소예절을 치르고 점심을 좀 일찍 먹고 서울행. 보스코에게 먹을 것을 다 챙겨 놓고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꺼내 먹어야 할지 일일이 현장학습을 시킨다. 함양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버스를 탔다. 운전을 안 하니 4시간 동안 꼬박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강변역에서 전철로 관구관에 가 새로 산 내 핸폰에 정보를 옮기기 시작했으나 여의치 않아 다음에 마저하기로 하고 우이동 집으로 떠났다. 아들을 보고 헤어져 돌아오는 길은 늘 허전키도 섭섭키도 아쉽기도 해서 자식은 그냥 가슴에만 담아두는 게 제일 안도감이 든다는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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