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18일 화요일. 흐림


월요일 아침. 손님이 오시는 날이면 더 일찍 눈을 뜬다. 어젯밤 피자 반죽을 해서 상온에서 서서히 부풀게 했으니 새벽녘에 두번째 반죽을 하면 점심쯤엔 알맞게 부풀어 피자 하기에 알맞다. 말하자면 16시간 동안 저온숙성을 시키는 셈이다.


그날 손님은 휴천재 2층엔 올라오지도 않겠지만 습관적으로 청소를 하고 내려가 피자에 토핑할 채소와 그 밖의 재료를 챙겨 큰 쟁반에 썰어놓는다. 치즈도 서너 가지를 섞어 맛을 내게 준비한다. 반죽을 나눠 휴지시키고 밀어서 다시 휴지를 해야 팬에서 오그라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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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들은 11시가 넘어 도착하여 즉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현장인 텃밭으로 직행한다. 휴천재 신선초가 보들보들 잎을 세운 터이지만 최근에 가끔 비가 내려 잡초가 수북히 돋았고 무성한 잡초 틈에서 해를 덜 받은 신선초는 그만큼 연해서 장아찌 재료로는 나쁘지 않단다. 수도자들은 매사에 낙관적이서 좋다. 


그동안 나는 열심히 피자를 준비했는데, 재료가 마땅치 않아 애호박에 멸치 살을 찢어 올려 치즈를 뿌려 구웠더니 맛이 괜찮았다. 호박꽃 피자에 멸치젓 올리는 건 보았어도 호박 피자에 멸치젓은 처음이었지만 보스코도 별미라고 칭찬한다.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피곤했지만 다들 즐겨 드니 힘들어도 집에서 점심 준비를 한 건 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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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저온창고 경비지불 땜에 면사무소와 농협엘 간다니까 수녀님들이 남호리 신선초밭도 살피고, 장아찌용 신선초가 휴천재와 남호리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보겠다고 따라나섰다. 남호리는 경사가 심하고 구불구불한 길인데 언덕받이에서 바퀴가 돌에 튀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차가 기운다. 펑크, 그것도 타이어가 아예 찢어진! 우리 밭에 차를 대고서 내려 보니 운전자 뒷바퀴가 완전히 주저앉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요즘 나온 차엔 스페어타이어가 없다! 보험회사의 서비스가 워낙 좋아서 레커차가 즉시 달려오고, 연비의 문제로 타이어를 늘 싣고 다니지 않는다나? 나만 몰랐던 사실이다. 보험회사가 보낸 레커차가 왔어도 구불구불 언덕길이라 펑크난 바퀴로 내가 살살 내려와서야 레커차에 견인 시킬 수 있었다. 수녀님 두 분은 착하게도 레커차 기사가 문정리까지 모셔다 드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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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커차 기사는 자기가 아는 타이어 매장에 우리 아반테를 데려갔는데, 그곳 직원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손을 앞으로 모으고 90도 각도로 환영 인사를 하는 품이, 더구나 20대 안팎의 젊은이들이 그러니 무슨 '조직원들' 같았고, 바퀴를 갈고 내가 떠날 때도 일렬로 늘어서서 꼭 같은 자세로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합창한다


너무 우습고 재미있어 나도 차에서 내려 두 손을 앞으로 뻗어 모으고 고개를 깊이 숙여 "감싸함다!"라고 큰소리로 인사를 해 주었다요즘 용산에서 출퇴근하는 윤가가 저런 인사를 받을 게다, 검찰정권의 생리로 보아서. 더구나 현정권에는 스페어타이어는 물론 브레이크마저 없는 것처럼 보여 국민들이 어지간히 불안할 게다. 아무튼 우리 차 펑크 땜에 월요일 저녁 마산에서 열린 사제단의 시국기도회에는 못 갔지만(하신부님에게 우리 부부가 참석하겠다고 약속까지하고서도) 우리 셋째 딸 미루네 부부가 다녀와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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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화요일 오후 2시에 함양 '두레마을'에서 '지리산종교연대' 모임을 가졌다. 금년 하반기 종교간의 대화 마당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단이 "종교의 차별과 혐오의 역사"를 정해와서 오늘 채택하였다. 종교인들이 유난히 독선적이어서 이 민감한 주제만 꺼내도 반감을 표하는 자들이 많아 진지한 토론이 되겠다. 우리 종교연대는 지리산이라는 큰 품이 차별과 혐오를 넘어서게 만들고 회원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키워가려는 자세가 있어 이런 모임이 가능하다.


종교에서도 대중이 의견을 함께하기가 얼마나 어려우면, 불교에서마저, "대중이 합의하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우스개가 있단다. 다만 외국에서처럼 서로 다른 종교가 전쟁으로까지 치닫지 않고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한국의 사정은 그래도 뿌듯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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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열 목사님이 우리 둘에게 야광꽃을 한아름씩 꺾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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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두레마을'은 김호열 목사님이 20년째 관리하고 꾸며가면서 잘 정리되고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다. 오늘 우리 종교연대에 모임과 간식을 마련해 준 것도 고마웠다. 회합에서 신구교, 불교와 원불교 회원들이 신변 얘기를 가감 없이 주고받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휴천재 '저온냉장고' 설치가 완료되고, 버릴 것은 버리고 남은 것은 냉장실과 냉동실에 정리하고, 감동의 시멘트 바닥까지 걸레질하고 나니 내일부턴 마당 잔디밭과 텃밭이 우리를 기다린다. 귀요미 미루는 나더러 "피곤할 대로 피곤하신 듯하니 제발 한 이틀 쉬세요." 라고 하지만 "전순란 승질에 그리 될 것 같지 않다"는 것이 '성나중씨'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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