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13일 목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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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만에 돌아온 휴천재! 어제 아침 눈을 뜨니 앞산 와불산이 노오란 너울을 쓴 채 다가온다. 그 너울이 송아가루일까? 미세 먼지일까그래도 산산산, 산을 보니 너무 좋다


아침을 먹고서 보스코가 설거지를 하면 내가 집안을 정리하겠다고 제안하니까, 자기는 내려가 감동 내부를 정리하여 내일 예냉고를 설치하게 자리를 치우겠단다. 남자는 역시 부엌일보다 바깥 일에 더 자존감을 갖나 보다. 나도 부지런히 밥상을 치우고 '감동 치우기 청소'에 합류했다.


휴천재 옆에는 진이네가 곶감을 만들던 감동이 20여년 전에 세워졌다. 몇 해 전부터는 블루베리 농사에 몰두하느라 곶감 농사는 그만두고서 위아래층 두 집이 앞다투어 물건만 갖다 쌓았지 정리정돈이나 청소를 해본 기억이 없으니 그 무질서란 상상을 초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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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냉고 짓기에 앞서 20년간 쌓인 것들을 싹 쓰레기로 처리하겠다는 생각에 기쁘기까지 하다머릿수건을 두르고, 토시에 장갑을 끼고 완전무장으로 나섰다. 그곳 물건에 지난 20년간 쌓인 먼지가 과학적으로 측량하더라도 실히 2 센티가 넘는다. 빗자루 바람이 일자 조용히 가라앉았던 먼지가 일제히 몸을 털고 일어나자 앞산 송아가루나 미세먼지와는 견줄 수도 없이 뿌옇다. 마스크 안까지 들숨에 까매졌다.


버릴 물건이 절반 이상인데 내가 버리고 나면 보스코가 다시 주워 들인다. ‘딸이 버린 물건 어미가 주워 들이고 어미가 버리면 시어머니가 다시 주워 들이는 풍경이랄까? 보스코가 아까워서 챙겨 놓으면 나는 말없이 기다리다 그의 눈길이 딴 데로 가는 순간 날쌔게 쓰레기 봉지에 감춰 넣어야 했다. 9시 이전에 시작한 일이 오후 2시 반까지 이어졌다.


허기져 더 이상 일을 못할 즈음에야 작업이 대충 끝나고, 점심을 먹고 나서 보스코는 일손을 놓고 쉬러 올라가고 나는 오후에 모처럼 틈을 낸 진이엄마를 꾀어 쓰레기를 분리수거했다. 진이엄마는 기민한 '일 머리'가 있어 그미와 함께 하면 나도 바빠진다.


진이네 1톤 트럭에 하나 가득 실린 감동의 쓰레기는 그렇게 해서 목현 쓰레기장으로 가서 우리와의 오래고 질긴 관계를 정리했다. "속시원하다!"는 감탄사는 이런 때를 위해 만들어졌다


오후 5시까지 감동 정리가 끝나자 나는 휴천재 마당으로 마실 나온 화초 마가렛, 꽃부추, 무스카리, 수선화를 삽으로 캐서 화분으로 옮겨 심고, 많이 남은 마가렛은 휴천재로 올라오는 한길가에 심었다. 7시가 지나 어둑해져서야 첫날의 노동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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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아홉 시 경 감동에 예냉고(냉동실 1, 냉장실 2)를 설치하러 트럭 두 대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거창에 있는 '신라냉동'이라는 중소업체지만 아랫집 진이네와는 긴 인연으로 믿을만한 곳이란다. 사장과 직원 하나, 그리고 인력시장에서 데려왔다는 우즈베크스탄 사람 이렇게 셋이서 공사를 시작했다. 젊은 사장은 연예계 조연출을 하다가 딸이 셋이나 태어나자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부친이 하던 냉장고 설치업을 이어 받았단다. 우즈베크스탄인은 점심을 먹으며 보스코가 말을 걸자 고국의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다. 한국에 온 지 7년 째란다. 일행은 하루 종일 일하고도 내일 오전 나절의 작업 분량을 남기고 5시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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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느티나무독서회모임이 있어 함양읍으로 나갔다. 봄철농사로 다들 바쁜 계절이라 겨우 세 명이 모여 오붓한 시간을 갖고서, 한국 현대 미술사의 획을 그은 인물들(김한기, 이중섭, 박수근, 이응로, 장욱진, 김창열, 나혜석)미술관을 기웃거리는, 미술관 읽는 시간(정우철, 쌤앤파커스 2022)을 나누었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외국 작가의 작품은 관심을 갖고 값비싼 유럽 여행을 불사하면서도 우리나라 화가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못 가졌고 아는 게 별로 없음을 뉘우치며 앞으로는 시간 내서 차례차례 방문해 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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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화가들의 삶이 거의 다 애잔하지만 그들의 가난한 사랑이 기다란 여운을 남긴다. 한 예로, 마사코 한 여인을 품은 이중섭의 애절한 사랑(“너는 한없이 귀여웁고 탐스럽구나. 내 기어코 훌륭한 일을 쌓고 쌓어 너를 행복케 하마), 재산이라고는 붓과 팔레트뿐이지만 행복하게 해드릴 테니, 훌륭한 화가의 아내가 되어 달라는 청혼(“다음에 만나면 당신에게 답례로 별들이 눈을 감고 숨을 죽일 때까지 깊고 긴긴 키스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해드리지요. 지금 나는 당신을 얼마만큼 정신없이 사랑하고 있는가요.!”)이 절절했다. 사상가든 문학가든 미술가든 옆에서 고생하며 위대한 재능을 발휘하게 북돋은 여인들의 말없는 헌신이 늘 우리를 눈물겹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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