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9일 일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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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기네집문패를 10년 만에 바꿔 달고 집고치는 일도 끝났으니 마음이 평화롭다. 지붕을 새로 잇고, 테라스를 뜯어내 우레탄 방수를 하고, 건물 안팎 페인트칠을 다시 하고, 방방이 도배를 다시 하고, 일층마루 식탁, 부엌 싱크대, 주워다 썼으므로 성과 이름이 제각기 다른 가구들을 손질하고, 어제는 차사장이 마당 나무들 전지까지 해주었다. 1978년에 사 들어와서 45년간 살아온 집. 우리 평생 첫 집이자 마지막 집. 이번 공사는 30년만의 '우리 생에 마지막 손질'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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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엔 지호아빠가 처갓집 선산에 산소들을 손질해주러 갔다. 처가에도 남자 형제가 있을 텐데, 차사장의 마음 씀씀이가 곱다. 하기야 대학교 1학년 때 첫눈에 반해 (남의 차지가 될까 봐) 서둘러 결혼하여 지금까지 알콩달콩 산다는데  '아내가 이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을 한다'는 속담도 있는데 그 새악시를 위해 뭔들 안 해주겠는가?


그가 산소 가고 없어도 나는 온종일 바빴다. 위아래 층 오르내리며 치우고 정리하고 쓸고 닦고 더 이상 안 쓰는 것은 챙겨서 버리고... 해도 해도 끝이 안 보였다지친 몸으로 저녁마다 '주님 부활 성삼일'을 참석하고 나니 서있기조차 힘들다. 예수님 수난에 맞춰 올 사순절 끝자락은 '극성 전순란의 고난절(苦難節)'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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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금요일 주님 수난기를 봉독한 후 본당신부님 강론은 참으로 절절하였다. '인간이 개인으로나 집단으로 얼마나 못될 수 있는지 깊이 반성하게 된다. 죄 없는 분을 반역죄(反逆罪), 하느님의 아들을 독성죄(瀆聖罪), 인류를 구하러 구세주를 구원받은 인류가 처형하다니... 사람을 도우려 내민 손에 못을 박고, 사람을 사랑하러 돌아다니던 다리에 못을 박고, 사람을, 아이들을 안아주던 가슴을 창으로 찌르고, 가장 혹독하고 수치스러운 십자가형(十字架刑)도 부족하여 발길질에 돌팔매질, 사랑하던 제자들의 몽땅 배신, 유다인들의 저주와 폭언에 수반한 내 개인의 죄악을 뒤돌아보게 된다.' 판공성사를 본 것은 엊저녁 살레시오 관구관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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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전야제인 성토요일 예식은 빵고신부가 있는 영등포 살레시오관구관에 가서 맞았다. 가톨릭 교회의 가장 길고 가장 성대한 예식이다. 큰딸 이엘리도 인천에서 왔고 딸을 만나자 보스코도 신이 났다. 빵고신부가 오르간 반주를 하고, 미사 후엔 청년들에게 파티를 해주느라 부산하게 움직이기에 '신부님은 왜 그렇게 바쁘시냐?' 물었더니 자기는 '관구관 인턴사원'이란다. 살레시안다운 성대한 미사를 드리고 부활 선물로 부활 달걀, 더블버거, 가래떡, 콜라를 받아 배불리 야참을 하고서 우이동으로 돌아왔다.


보스코의 부활주일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72

'빈 무덤에 세워진' 그리스도교, 생로병사의 인생고에 '부활(復活)'이라는 답을 내놓은 종교더구나 여자는 사건의 '증인'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던 고대사회에서 '주님이 살아나셨다'는 여인들의 목격 증언으로 출발한 교회, 그렇게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분이 십자가에 처형 당하는 전대미문의 죽음을 거친 부활사건에 모든 것을 걸다니, 보스코 편에서는 5대째(그의 조부모와 부모, 본인과 형제들, 아들대와 손주대) 믿어오고 내 편에서는 4대째(우린 부모님대부터) 믿어오지만 참 오묘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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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마무리 짓겠다던 공사 뒤처리는 '최권사님'이 전날 약주가 과해서 출근 못 하는 바람에 일요일로 미뤄지고 차사장 혼자서 우리 정원 상록수들을 전지했다. 그의 과감한 손질에 봉두머리 나무들이 의젓한 청년들로 변신했다! 모든 일, 세세한 잔 일까지 자기 집처럼, 자기 작품으로 손 봐주는 차사장의 성정은 실로 고운 심성이다.


30년 전 우리 집 수리 후에도, 우리가 하도 칭찬을 하니까 이기상 교수네도 이민상 원장네도 차사장에게 공사를 부탁하여 대대적으로 집을 손질했다. 방학동 유미옥 선생도 우리 소개로 어린이집을 지었고, 그 집을 모델로 차사장은 용인에도 어린이 집을 두 채 짓고, 수녀님들 공사를 서너 곳 했다는 회고담을 오늘 우리한테 들려주었다


그때마다 차사장에게 일을 맡긴 분들이 내게 무척 고마워했던 기억이 난다. 집이라는 둥지가 개인주택이라면 손 볼 일이 많은데 우리집처럼 차사장 같은 정성으로 돌봄과 손길을 받는다는 건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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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가득 쌓였던 폐기물 깔끔히  치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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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성당 부활대축일 미사를 다녀오니 최권사님이 출근하여 그 특유의 미소로 나를 맞아준다. "어제 왜 일 못 나오셨어요?"라는 내 인사에 "내가 못 나올 땐 못 나올 이유가 있지요."라는 엄숙한 대답이 얼마나 거룩한 시침떼긴지.... 아무튼 자기가 맡은 일은 쉬지 않고 묵묵히 하는 성실한 분이다


마당에 쌓여 있던 산더미 같던 쓰레기는 오늘 최권사님의 노동과 차사장의 마술로 트럭 한 대에 실려 하치장으로 떠났고, 남겨진 최권사님은 나랑 집안을 구석구석 돌며  청소하고 정리했다. '더 이상 쓰레기를 만들지 말자.' '더 이상 쓰레기를 쌓아두지 말자.' 결심을 하고서 보스코가 미련을 못 버리고 남겨 놓은 물건들까지 싸악~ 버렸다. 한번 버리기 시작하니 버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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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서울 '빵기네집'은 가구(家具)들의 양로원 내지 요양병원이다. 아래층 방 붙박이 가구와 이층방 붙박이장과 침대, 그리고 서재의 책꽂이들은 우리가 유학에서 돌아온 1986년에 도림동 돈보스코 센터 목공소 청소년들이 출장 나온 '현장실습' 작품들이다(장선생님 감독하에). 그밖의 크고 작은 탁자들과 가구들은 동네에서 주워다 손질하여 써온 것들이다. 늙은이들이 죽어야 젊은이들이 자리를 잡듯, '응답하라 1988' 가난한 쌍문동에서 새 가구를 들이면 골목에 내버려진 가구들이 우리집으로 고려장(高麗葬)와서 오늘에 이르렀다. 가구도 생명이 있으니 빵기네집에 고마워할 게다.


7대 집사 레아가 3월에 집을 비우고 떠났고, 새 집사는 (빵기네 식구가 여름에 다녀가고 나서) 입주하기로 한 터라 5, 6월 두 달을 집사 없이 비워두기 그래서, 녹지가 보이고 마당 있는 개인 주택에 잠시라도 살아보고 싶다는 김교수가 오늘 간편한 짐을 챙겨 아들이 운전하고 왔다. 다른 사람과 나눠 쓰이면 집도 심심하거나 쓸쓸하지 않아 신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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