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4일 화요일. 흐린 뒤 밤비
차사장이 전화를 했다. ‘칠하는 아저씨들이 왔는데 대문을 안 열어 준다. 빨리 열어달라.’ 아침 7시 30분. 이 사람들은 이 시간에 작업현장에 출근하는 움직이는 아침형 인간들이다. 물론 팔순 노인 보스코는 어젯밤 2시에 일어나 책상을 덥히고 있었고, 나는 5시에 일어나 3층 다락에 올라가 한바탕 일을 하고 내려와 아침기도를 하는 중이었다.
'빵기네집' 다락방
주말에 집안을 대청소하고 3층 다락도 깔끔하게 정리하여 온통 새집으로 단장하고 끝낸 듯 싶었지만 안팎으로 칠을 하는 마지막 단장이 남아 있었다. 30년만의 대공사로 집을 다 손질했지만 마지막 치장이 더 오래 걸린다. 도배하는 일은 여자 화장 같아 그제까지 도배가 끝난 집안은 환하게 아름다웠고, 어제 오늘 안팎으로 칠을 한 집은 사나이의 기품을 살리는 치장 같다. 지붕 씌우고, 테라스 다시 깔고, 페인트 칠하고 도배해준 저 모든 공인(工人)들이 거의 한 달 걸려 수고한 작품이라 '고맙고로!'
어제 온 칠 아저씨는 30년 전부터 빵기네집 공사때 마다 단골로 왔던 분이다. 같이 온 두명도 6, 70대 ‘어르신들’.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거친 일 안해요. 컴퓨터나 운전하고 몸이 아닌, 머리 쓰는 일만 찾아요.” 고등학교 나온 자녀들을 모조리 대학 보내 가르쳤으니 고급인력으로 편입되어 노동 현장에 젊은 세대가 나올 리 없다는 탄식이기도 하다. (15년 이탈리아 생활에서 그곳 젊은이들에게 대학진학 의사를 물으면 “내가 미쳤어요, 대학 가게?”라는 대답이 흔했는데. 대학등록금이 무료에 가까운 나라에서 말이다!)
골목길과 보일러실 창고도 칠하고
시골에서도 우리 세대가 끝나면 모든 전답이 묵정밭 묵정논이 될 거라고 걱정들이다. 몸으로 움직이는 노동이 인간 정신까지도 건강하게 한다는 생각은 우리 세대까지만 일까? 육체노동자들의 연령이 높아져만 가고 젊은이들이 안 보이는 게 시골에 아이들 소리가 안 들리는 일 만큼이나 불안하다.
내일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월요일은 집밖을 칠하고 오늘은 집안을 칠하겠단다. 일꾼들은 30분간 점심을 하고 4시에 정확하게 퇴근한다. 예전 같으면 ‘해지기 전 빨리 끝내자’며 ‘오야지’가 채근하면 어둑해질 때까지 잔업이 이어지곤 해서 하루에 10시간도 일했는데 이젠 주 5일 근무에 40시간 노동법이 정착된 듯하다. 참 다행이다.
최대 주 52시간이라는 노동환경 개선을 불만스러워 하며 기업가들이 주 80.5시간까지 근로자를 부리게 만들겠다는 윤가의 호언장담에 노동자들의 코웃음은 안 봐도 알겠다. 내 '가사노동'을 헤아려보면 주 80시간을 넘지만, 주부야 '저 좋아서 하는' 자발 근무요 싫으면 안 할 수 있다지만, 오늘의 경우 세 장정 틈에 끼어 나도 종일 수고한 일일노동자였으나, 내 임금은, 그들에게 점심을 시켜주며 얻어 먹은 '짜장면 한 그릇'으로 퉁쳐졌다. 검찰이랍시고 떵떵거리는 책상 근무와 저녁 술자리로만 세월을 보냈음직한 사람 윤가의 노동관은 자칫 '근로자는 일하다 죽어라!'는 소리처럼 들릴 게다.
일꾼들이 떠나고 둘만 남은 우리 부부는 엊저녁 (봄비에 벚꽃이 떨어지기 전) 달빛에 더 아름다운 벚꽃 길을 걸으며 산보를 했다. ‘아직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만끽하며 사순절 막바지, 우리 대신, 인류 대신 고난의 언덕을 오르시는 분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서울집 칠은 당초 외부만 칠하기로 정했지만, '이번에 칠하면 우리 생전에는 두 번 다시 안 할 듯해서' 내부까지 칠하기로 하여 오늘은 집안을 칠했다. 골목길 담벼락 아랫도리도 칠하고 동쪽 한길 담장을 낀 보일러실 창고도 칠했다. 장정 셋이서 집안을 칠하는데 온종일 걸렸으니 우리 집이 어지간히 넓은가 보다.
주부의 요구가 이것저것 많아지자 일꾼들이 차사장에게 전화를 했던가 보다. 그랬더니 "그 집에선 사모님이 시키는 일은 다 해야 할 꺼요."라고 대답하더라나? 그래도 세 사람은 순순히 또 꼼꼼하게 일을 마무리해주었다. 40년지기여서 지호아빠는 '빵기엄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마님이 법이다'[?]) 사람이다.
장정들이 칠하는 동안 나는 으아리가 기어오를 그물을 엮어주고, 그들이 일을 마치고 떠난 후 화단에 꽃을 심었다. 으아리를 좋아하지만 특히 알프스 마리오(코로나로 세상을 떠난)가 자기 집 뜰에 정성껏 가꾸던 이 꽃을 떠올리게 한다.
10년 전(2012.11.16)에 골목길 초입에 붙였던 '빵기네 집'문패가 너무 바래서 새 문패를 만들러 4.19사거리 간판집엘 갔다. 10년쯤 전이었으면 날짜를 알아내면 같은 모양으로 빠르게 해 줄 수 있다기에 내 '휴천재일기'를 찾아 날짜를 찾아주었더니 간판집 주인이 나를 무척 기특하게 여기고 고마워하며 가격을 왕창 깎아줬다.
예보대로 밤 9시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얼마나 기다리던 봄빈가! 전국이 가믐으로 몸살하고 있다. 드물댁이 내 대신 심은 감자가 싹이나 돋는지 모르겠다. 휴천재 귀가가 늦어진다는 내 전화에 진이엄마의 대답. “성삼일, 부활대축일 서울서 지내시고 편히 쉬었다 오세요. 여기도 왕창 하실 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집 내부에 칠한 페인트 냄새가 지독해 밤새 문이며 창문들을 열어 두고 자야 할 판이지만 귀한 빗소리가 꿈길에 달콤한 벗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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