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326일 일요일. 맑음


금요일 이를 하러 치과에 가는 일은, 병원 가는 길이 다 그렇겠지만, 유난히 싫다. 맨 안쪽 아랫니라 입이 찢어져라 벌리다 보면 입술마저 찢어진다. 윗니가 내려 올까 봐 의치를 해서 끼워주더니 5개월 후에 새 이를 해 주겠단다. 옛날 같으면 이가 빠진 채로 합죽이가 되던지, 잘해봤자 틀니가 전부였는데, 세상이 좋아져서 자기 이빨과 비슷한 가짜 이를 심고, 보스코처럼 보기에 형편없는 이도 뺄 것 빼서 가지런히 개조시켜주자 인간다운 품위를 찾았노라고 좋아하니 정말 세상 많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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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기억에 남긴 할머니 얘기는 이가 홀랑 빠진 합죽이 입으로 겨울철이면 늘 모지랑(달챙이) 숟가락으로 생고구마를 긁어 드시던 모습이었단다. 6.25 전이니 보스코 나이 여섯 살쯤, 할머니 연세가 예순 쯤이셨으리. 그러니 내가 지금 70이 훨씬 넘어서도 이를 놓고 타박 하는 일은 복에 겨운 얘기겠다.


집안 도배는 위아래 층과 두 계단까지 꼬박 사흘 걸렸다. 살림을 꺼내고 드러내고 가구들을 밀어내고, 도배가 끝난 뒤 다시 제자리를 찾아 밀어 붙이고, 정리를 하고, 방바닥이며 층계며 계단 손잡이며 유리창까지 곳곳에 범벅으로 묻은 풀을 말끔히 걸레질로 닦아내는 일은 끔찍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전업주부' 전순란이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한 '가사노동 초과수당'은 누가 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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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에 들면 팔다리가 쑤시죠, 허리는 끓어지게 아프죠, 손가락 마디마다 손목마다 퉁퉁 부었죠, "아아, 성염한테 시집와서 완전히 망가져버린 내 청춘"을 원망해본들 들어줄 사람도 없죠. '이렇게 일하다가 그냥 팍 죽어버리라'는 얘기겠다, '저 좋아서!'라는 반응밖에 내 주변에선 안 나올 테니....


도배하는 사람을 시켜도 구석구석 따라다니며 주인이 잔소리를 해야 하고, 빼먹은 자리는 스스로 찾아서 발라야 한다. ‘빵기네집도배를 한 게 30년 전이니 앞으로 30년 후에는 남은 사람들 몫이겠다. 아래층 커튼도 (세든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으니) 주인이 다 빨아서 오늘 다시 걸어 준다. 보스코가 핀을 박아 올려 걸고나니 새로 도배한 벽과 어울려 집안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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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는 영심씨가 인사차 들렀다, 보스코 수술 후에도 못 찾아봤다고. 부지런히 점심을 해서 함께 먹고서 그니는 상가에 간다고 떠났다. 30여년 전, 자기를 키워주신 친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뒷동산에 핀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고 있던 그미를 만난 게 우리의 첫 대면이었다. 군대에 끌려가서 행방불명된 아버지의 유복녀로 태어났고, 친할머니가 엄마를 다른 데로 시집보내고서 할머니 손에서 큰 터라, 그미의 할머니 사랑은 지극했다. 할머니가 뒷울 장독대 옆으로 잔뜩 심어놓고 코스모스 꽃을 즐기셨다는 말을 듣고서 내가 처음 본 그미를 싣고 가평으로 코스모스 꽃구경을 떠난 게 우리의 첫 인연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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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미의 외아들 상훈이가 빵기 빵고랑 형제처럼 지냈고, 우리들은 이웃에서 새벽 한 시에도 잠이 안 오면 솔받공원으로 내려가 보행을 하곤 했지... 내가 하는 짓이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늘 까르르 웃는 그 웃음소리가 좋아 외로운 그미를 위해 나는 늘 바보 같은 장난을 치곤 했었지.... 시아버지도 시어머니도 그 집에서 돌아가셨는데 그미가 팔고 떠난 집은 헐리고 집터만 둘리공원 곁에 횡댕그레 남았지만 집 뒤 언덕엔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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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복음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78

오늘 일요일 9시 미사에 갔다. 어린이 미사가 토요일로 바뀌며 좀 아쉽기는 해도 신부님의 사려 깊고 따뜻한 강론 말씀이 좋다. ‘나자로의 죽음과 부활에서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때만 하느님은 약속을 지키신단다. 희망을 버리면 절망으로 직행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인생이다. 예수님 오셨는데도 사랑하시던 마리아가 코빼기도 안 보인 것은 삐져서("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였다는 신부님 설명은 보스코도 미처 못 생각하던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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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분에 내 친구 한국염이 찾아왔다. 집 고치느라 고생한 친구에 대한 위로차 한 방문이다. 어제 과로로 온몸이 나른했지만 좀 걸으면 오히려 회복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친구를 따라 나섰다. 뒷산에 개나리와 진달래도 친구랑 같이 봐야 더 곱다


두어 시간 걷는 동안에 오빠랑 호천이가 전화를 했다. 5월말이나 6월초에 아버지 이장을 하려는데 돌아가셨을 때 안 왔으니 이번에는 참석하란다. 84년에 로마에서 유학하고 있을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비행기 값이 없을 우리 사정을 생각하여 장례가 다 끝난 뒤에 우리에게 부고를 알려왔다. 그때는 모두 그렇게 가난했었지.


빵고 신부가 집 고치느라 수고하시는 부모님 잠깐 뵙는다고 다녀갔다. 서둘러 저녁을 챙기며 스스로 묻는다. “나는 왜 가까운 사람일수록 늘 허기져 보일까?” 저녁을 먹고서 둘리공원에 올라가 수리한 집 지붕을 내려다보고서 아들은 자기 집으로’ 떠났. 바로 저 아래 저 집에서 잉태되어 저 집에서 태어났고 저 집에서 고3까지 자랐지만, 그래, 나이 마흔넷의 지금은 자기가 평생을 살기로 한 그곳 수도원이 자기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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