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순란 글방
지리산 휴천재 일기
2023년 3월 14일 화요일. 맑음
사는 일은 좀 복잡하다. 매일매일 할 일도 많지만 그 바쁜 중에 안 했어도 되는 일을 만들어내고 나면 좀 속상하다. 지난 금요일 서울에 오는 길로 치과에 들렀는데, 2년 전에 임플란트 한 이가 중간에 본드가 떨어져 이 뚜껑을 붙이려 서울까지 달려온 길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뚜껑을 쉽게 다시 열고 고치려 강력하게 붙이지 않아 일이 그렇게 됐다’는 의사의 설명. 본드로 이를 붙였지만 이상하게 약간 미끌어지는 기분이 들더라 했더니 ‘이가 약간 높았던 것 같다’라는 해명
다름 아닌 바로 그 이가 쑤시고 아파 임파선까지 부어 금요일 의사를 찾은 길이었고, 의사는 임플란트가 뼈에 박힌 부분이 약간 화농한 것 같다며 그 나사를 빼고는 깨끗이 긁어내고 다른 나사를 박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때와 달리 약(소염진통제)을 처방해 주지 않았고 나도 무심코 그냥 돌아왔다. 그러자, 진통주사가 풀리고 이가 붓고 아프기 시작하는데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이니 별 도리가 없어 견디다 일요일 저녁엔 아무 약봉지나 뒤지다 ‘에드빌’이 눈에 띄어 마구 먹었다.
월요일엔 보스코의 3개월 경과를 보러 보훈병원엘 갔다. 혈액에도 X레이에도 이상 없단다. 뒤이어 수면 중 무호흡 때문에 양압기를 쓰는 문제도, 석 달 전 수면검사를 받은 결과를 두고도, 계속해서 양압기를 써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아무튼 은평성모병원에서 보훈병원으로 바꾸는데는 성공하여 상경하면 단 하루에 같은 병원에서 두 증상을 다 진단 받고 약타고를 할 수 있게 됐다. 양압기는 죽을 때까지 써야지 "이제 그만 써도 된다"는 진단은 좀처럼 기대하지 말라는 새 의사의 말.
뒤이어 난곡 우정치과로 달려갔다. 늙고 나니 정말 두 사람의 상경 길은 병원 순례가 되고 말아(함양읍내 나오는 벽촌 할매 할배들도 마찬가지다) 비참한 느낌을 주고 젊은 세대에게는 참 미안하기도 하다. 치과의는 ‘깜빡하고 약 처방을 잊었다’더니 금요일 박아 넣었던 나사를 아예 빼냈다, 고름이 나온다며! 의사가 미안하다며 실수를 인정하는 말에 나도 할 말이 없어 ‘괜찮아요. 견딜 만했구요. 누구나 실수는 하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니까요.’라며 의사를 위로해주고 약 처방을 받고 나왔다.
오늘은 보스코의 책 출판 일로 ‘한길사’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었지만 그쪽에서 코로나 격리로 담주로 미뤄졌다. 함양에 내려가서 감자도 심어야 하고 밭고랑에는 부직포도 깔아야 하고, 예냉고 설치 보조(함양 가서 생전 처음 받는 관공서 혜택)도 나왔으니 그 일도 해야 하고... 여러 일들이 와르르 한 줄로 늘어선다.
돈쟌까를로가 사주신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는 안주인만큼이나 삭고 색이 바랬고...
서울집 마당도 내 손을 기다리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마당 전체를 헤집고 다니는 시누대 파내는 일이 급선무여서 그제는 내가 집 앞의 시누대 소탕, 오늘은 들어오는 서쪽 마당을 보스코가 소탕하고 나도 거들어야 했다. 너무 무성해진 맥문동도 거의 뽑아냈다. 그제는 비가 와서 파내기가 좀 덜 힘들다. 으아리와 교묘하게 뿌리를 엉키며 뻗은 대나무를 뽑는 일은 내가 맡았다. 그 가느다랗게 마른 으아리 줄기를 뽑지 않으려면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그 밖에 서류 문제로도 은행도 들락거리다 보니 점심에는 칼국수를 사다 먹고, 저녁으로는 햄버거를 사다 샐러드들 곁들여 저녁을 해치웠다. 어제 보스코의 정기검사 결과가 아주 좋다 해서 주부가 좀 해이해진 면도 있다.
우리가 자주 못 올라오고, 지난 집사 레아가 사진 찍느라 강원도에 많이 가 있다 보니 처치 곤란한 쓰레기를 담 넘어 우리 마당에 버리는 뺑덕어미 소행도 보인다. 옛날엔 이웃 아짐을 현행범으로 잡아내 잘 관리가 됐는데, 이 만년반장에 대한 기억이 좀 흐릿해진 듯해서 동네 기율을 잡아야 할까 부다.
그 집중교육이라야 우선 만난 음식을 장만하여 아짐들을 불러다 함께 먹으며 ‘빵기네가 남이 아니다’라는 걸 일깨우고, 남의 집으로 던진 쓰레기가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했던 물건이었나를 상기시키고, 그런 일로 욕먹으면 조상과 본인과 후손 ‘무려 3대가 재수 없다’는 미신을 주입시키는 방식을 쓰곤 했다.
엊그제 비 오고 바람 불고 갑자기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자 활짝 폈던 산수유가 움츠러들었더니 날씨가 풀리자 다시 밝아졌다. 게으름을 피우던 까치 한 쌍도 집앞으로 높다랗게 올려다 보이는 갈나무에 부지런히 잔가지를 물어다 작년에 지었던 집을 보수하고 있다. 나도 집수리로 그것들과 같은 신세.
아래층 큰방에 새 집사가 들어와야 하는데 전등도 두 군데나 불이 나가 ‘두남전기’에서 등을 사오고 보스코가 사다리를 놓고 전선을 검사하고 전등을 갈아 끼우고, 그 방에 너절했던 전선과 컴퓨터 선들을 정리하고, 몇 대째 집사들이 쓰던 커튼도 걷어서 오늘 빨래했다. 벽지도 사람을 불러 다시 해야겠다. 단독주택에 사는 ‘보람’에 의당히 손 가는 일이 따른다. 더구나 한 집에 47년째 살고 있으니...
2층 테라스 방수가 문제인지 아래층방 벽에 얼룩이 완연하다. 30년 넘게 연탄을 때느라 바람벽도 삭아내려 손 봐야 하고, 지붕도 새서 서재 천정에 얼룩이 진다. 상철 지붕이라도 할까 했더니 휴천재와 서울집을 고쳤던 차사장이 반대다.
상철 지붕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고, 비 오면 시끄럽고, 무엇보다 보기에 안 좋단다(그 집 '작은사장' 지우는 동남아에 가서 아파트를 신축 중이란다. 멀리도 진출했다). 합판으로 덮고 그 위에 아스팔트 싱글을 다시 하면 앞으로 지붕이 20년 동안은 끄떡 없으리란다. “교수님네가 죽으면 걱정도 따라 갈 테니 그다음 뒷일은 염려하실 필요 없어요.”라는 훈계도 내려준다. 우리가 늙긴 늙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