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312일 일요일비오고 바람차고...


10일 금요일 새벽. 무려 석 달 만에 오는 서울길. 가져올 것이 많았다. 겨울 난 무는 달디 달아 딸들에게 줘 깎뚜기도 담고 무 국도 끓이고 무말랭이에 무차까지 해먹으라 하고 싶지만, '요새 세상에 누가 그걸 일일이 만드나?' 고개를 흔들면 할 말 없겠다


나로서도 갈수록 농사를 줄여야 하는 명분이기도 하다. 슈퍼나 시장에서 완제품을 사서 먹는 걸 더 좋아하고 저 귀찮은 일 할 시간에 '좀 더 건설적인 일'을 하겠다는 생각들인가 본데 전업주부 말고는 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과연 뭐가 보다 건설적인지도, 과연 건설적이긴 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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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에 잉구가 전화로 물색해준 동호마을 점빵에 가서 (작은아들 단식 후 보식에 쓰일) 고로쇠 물을 싣고, 고개를 넘고 대포마을 지나, 함양 톨게이트를 통과해서, 대진고속도로를 탔다


재작년에 한 임플란트 치아가 염증을 일으켰는지 거의 달 반 고생을 하다 더 못 견뎌 이번 상경 길에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 치과다. 우정치과에서 찍은 오토파노라마에서 세어보니, 정확히 위아랫니 절반은 수리하거나 임플란트한 치아고 절반만 성한 내 이빨이다. 보스코가 패물을 안 사줘선지 몰라도 내 가진 패물은 전부 내 입속에 보관중이다. (그렇담 내 입이 '보물함'이네.) 


의사는 "임플란트 뿌리에 염증이 있어 그러네요." 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먼저 한 임플란트 나사를 빼내고 소독을 하더니 일주일 후에 새것으로 갈아 끼워준다는 어투가 이 정도의 치통은 '보통 있는 일'인가 보다. 거금을 들여서 한 이가 이런 배신을 때릴 때는 의사 잘못인지 내 잘못인지 항용 일어나는 일인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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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와 가까운 살레시오 수도회 관구관에 가서 빵고신부에게 고로쇠물을 전달하고 우이동으로 곧장 돌아왔다. 큰아들은 터키 지진 현장에 파견되어 수 주 동안 급한 일을 처리하고 내일 제네바로 돌아간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도 멀리서 그저 마음 뿐인데 큰아들이라도 찾아가 구호 활동을 하고서 돌아가니 맘이 좀 놓인다. 작은아들은 몇 주 전 수도회 차원에서 터키 지진 피해자 돕기 모금 활동을 했고 그 바람에 나도 덩달아 내 지인들과 딸들을 닦달했다, 돈 내라고! 


서울 오면 제일 먼저 숨막히는 게 천안서부터 서울까지 한없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아파트들이고, 길이란 길을 꽉 메운 자동차의 행렬이고, 신갈만 지나면 막히고 또 막히고 또 막히는 트래픽이다. 그런데도 서울로, 서울로 몰려 드는 사람들이 도통 이해가 안 되고, 나마저 차를 몰고 그 대열에 낀다는 사실이 더 기막히다, 이번은 석 달 만이지만! 10년쯤 지나면 대한민국 국민 70퍼센트 가량이 서울 경기에 몰려 살 거라나? (이탈리아에서 13년 넘게 살았는데 지방에 갔다 만난 사람더러 '로마 가 봤느냐?' 물으면 '내가 거긴 왜 가요?'라거나 '고향 떠나면 죽은 목숨'으로 치는 애향심에 놀라곤 했는데.)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거의 운전대를 잡고 차에서 보내고서 그토록 피곤하니 매일 '탑차'로 전국을 누비며 화물배달로 보내는 우리 막내동생은 어떻게 견딜까전화를 걸어 심심한 위로를 보냈다. 하지만 "누나, 난 재미로 해!"”라는 즉답에는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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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토요일. 아침부터 지난 3개월 내려앉은 집안 먼지를 털고 닦았다. 7대 집사 레아가 짐 싸들고 나간 자리를 살피고, 오후내내 대나무가 점령하여 맥을 못 추는 마당 꽃밭에서 시누대를 낫으로 쳐냈다. 산죽 기세에 그 예쁘던 각시패랭이는 자취를 감췄고 수선화와 튤립도 기를 못 편다. 30여 년 전 저 대나무를 캐다 심은 내 죄가 참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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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점심에는 금산 사는 춘희씨 딸 안젤라가 집을 보러왔다. '서울에서 녹색을 볼 수 있는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었다'는 말도 기특하고 '동네 시장을 지나면서 따스한 전통의 분위기를 느꼈다'는 심성도 각별해서 '우리 식구구나!' 싶었다. 전임자에 따라 전세 500에 계약을 해줬다. 그미는 빵기네집 '8대 집사'가 되겠다. 그간 늘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으니 이번에도 잘되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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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요일 어지간히 가물었던 마당에 새벽부터 봄비가 내린다. 이층 서재 서쪽 창밖으로 노란 산수유 송이마다 빛나는 보석 귀걸이를 달고 봄비를 맞고 있다. 우린 큼직한 우산을 하나씩 쓰고 '영원히 개발되지 않을' 쌍문동 비탈길을 걸어 성당엘 갔다. '완성빌라 다동'도 꿋꿋이 나의 길을 가련다며 신축공사 중이고 성당 가까이 다세대 주택은 그새 6층까지 올렸다. 오세훈 시장이 이 지역 전부를 싸그리 뭉개고 3000세대 30층짜리 '모아주택'을 짓는다는 소문에도 끄떡없다. 난 45년간 살아온 이 동네가 영영 개발되는 일 없길 빈다. 우리 표어는 '이대로 살다 죽을래요!'


우리 집 위의 공원 공사도 완료되어 '쌍문 둘리 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우리가 40여 년 전에 산을 깎고 트럭으로 흙을 사다 부어 공터요 주차장으로  써 왔다. 우리가 사는 '덕성여대후문 3080 신축사업'은 좌절되었고, 주민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모처럼의 아파트 꿈이 좌절되어 의기소침하는 젊은 층과, 이 어려운 시기에 차라리 잘 됐다안심하는 노년층("늙어서 집짓는 거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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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입구에는 변함없는 얼굴의 여성분과 교우가 반가운 미소로 젓갈을 팔고 있었다. 갈치속젓, 명란젓, 창란젓, 씨앗젓(?)... 미사 후 성당 출구에서 교우들에게 젓갈 사려!’ 광고를 하고 계시는 주임신부님에게 미안해서 젓갈은 먹으면 맛은 있는데요보스코처럼 수술한 몸에는 별로 안 좋아요라고 둘러대고 도망쳐 나왔다.


주임신부님 사순제3주 강론은 (전날 저녁에 있었다는 사순특강을 들어) 인간관계의 세 갈래, ‘생선 같은 관계’(조금만 지나면 냄새만 나는), ‘꽃 같은 관계’(활짝 피지만 머잖아 시드는), 그리고 손수건 같은 관계’(구겨지면서도 늘 소용되고 고마운)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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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 전철을 타고 혜화동으로 나갔다. 대학로에서 한신 아우 여동문들을 만나는 날. 철없던 젊은 날 아름답고 티 없던 처녀들이 봄꽃처럼 피어오르던 그 시절의 고운 심성을 그대로 지닌 채로 나이 들어 여기 모였다. 후배 동문들도 우리 학창시절처럼 목회자(여목사)거나 목회자 사모들이어서 주일 오후에 시간을 내기는 여간해서 힘들다 보니 7명이 겨우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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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 추위인지 갑작스런 한파 기습으로 오후 부터 바람이 돌풍으로 불어 젖히고 추위가 귓볼을 얼려도, 우리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은 다숩기만했다.  전순란이 지리산에서 상경하는 날을 다시 만날 일자로 정하고 뿔뿔이 헤어져가는 우리는 언제 만나도 늘 변함없는 그때의 우리다.


오후에 우리 셋째딸, 귀요미 미루가 친정아버지 부고를 알려왔다. 요양병원에 계시다 임종대세를 받고 돌아가셨단다. '임요셉'님의 영혼이 안식을 얻으시도록 저녁기도로 보스코와 위령 성무일도를 바쳤다. 낼 아침이면 빵고신부가 위령미사를 드리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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