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12일 일요일. 흐림


금요일 아침. 요즘은 날씨가 차서 해가 떠오를 때쯤 침실 커튼을 연다. 그런데 커튼을 열자 ~하느님은 온 세상을 놀라운 솜씨로 백설 세계를 만들어 놓으셨다!” 그것도 간밤에 우리 모두 잠든 사이에! 이런 휘황찬란한 백색의 세상을 보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이 좋은 경치를 함께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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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마음이 두가지로 갈라진다. 제발 날씨가 추워 이 은백의 풍경이 좀 더 오래 가길 바라는 마음 하나. 다른 하나는 날씨가 따뜻해 빨리 녹아 평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 입춘이 지났고 서재 창문 앞 매화나무 망울들이 한창 부풀어 오르고 있어 눈이 얼어붙으면 자칫 꽃눈을 부풀리는 과일나무들이 모조리 피해를 볼 수 있다.


마을마다 카톡에 사진을 실어 올려 이 아침의 감격을 나누느라 바쁘다. 눈 사진을 딸들에게 보내고 자랑질을 했더니, 산청 미루는 더 멋진 정경을 보내왔다(산청에서 필봉 고개 하나 너머에 사는 임신부님댁은 눈은 그림자도 안 보인다면서 '여기는 남쪽 나라'라는 문자를 보냈왔다. 더 남쪽 남해바다의 형부는 바다 멀리 산봉우리에 설탕 뿌린 설경으로 답했다.


눈 쌓인 날이면 휴천재 마당에 어느 여자 이름을 새기곤 하는 보스코의 발자국도 보이고. 하지만, 눈 위에 사랑을 새기는 남자를 믿지 마시라! 날씨가 얼마나 푹한지 점심을 먹고 나서는 사방에 눈의 흔적을 찾기가 어려우리 만큼 다 녹아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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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자고 눈 떠보니 후진국된 이 나라 정국에 가슴을 앓는 이들에게는 '촛불시위'로 혁명을 일으켰던 꿈이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그제 아침 짧았던 설경은, 마치 문정권 5년의 기억마저 자취 없이 녹아내리는 절망감을 연상시켜서 하는 말이다. 


요즘처럼 하루 24시간 '이재명'(지난 4년간은 '조국')을 욕하는 확성기 부대가 된 보수언론들, 가정파괴범들의 행태를 연상시키는 검찰, 일제시대 판사들이 내리던 그대로의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 윤정권을 탄생 시킨 일등 공신 안철수의 또 다른 철수 준비 등을 보며, 새벽 두세 시면 눈을 뜨고 잠을 이루지 못해 서재로 가는 우리집 우국지사의 심경도 알 법하다.


미루네 산청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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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부님네 전혀 안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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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부네 남해 약간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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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녹은 산봇길에 나서 윗마을로, 법화산 발치로 돌면서 올려다 본 지리산 상봉은 아직 마고할매의 센 머리 그대로였다. 슬픈 사랑이 깃든 황선생네 뜰에는 마른 갈대만 무성하였다.


독서회를 함께 하던 아우 희정씨가 한 달 여정으로 남미 5개국을 여행하며 여행기를 카톡에 올린다. 볼리비아 우유니의 첫 인상을 척박하고 열악함 그 자체였다고 서술하는데, 문화유적도 서구 식민 세력(스페인)이 원주민 고유 문화에 덧칠한 것이고, 미국이 한 세기를 두고 끊임없이 일으킨 군부 반란과 내란과 학살로 점철시킨 빈곤의 자취가 켜켜이 쌓여 있더란다. 워낙 낙천적인 민족들이라 그만큼이라도 살아남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보듯), 돈과 제국과 그리스도교가 어떤 행악을 남미대륙에 저질렀는지 실감하게 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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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지진으로 수만명이 희생당한 터키의 그 소녀. 일곱 살 쯤 된 소녀가 17시간이나 지진 건물 잔해 속에서 세 살쯤 되는 사내동생을 끌어안고 버티다 구조되었을 때 한 첫 마디. “제 동생 좀 살려주세요. 살려주시면 평생 당신의 종으로 살겠어요.” 가난과 재해와 전쟁에 시달리는 중동 아랍세계의 모든 불행은 제1세계 그리스도교 국가들과 그들에게 얹혀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반민족 토호세력에 있음을 어린 소녀의 저 한 마디가 웅변하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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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에는 보스코 서재 컴퓨터에 대형 모니터가 설치되었다. 고맙게도 이사야가 산청에서 와서 조립해주고 컴퓨터 기본 특강까지 해주고 갔다. 이래저래 이웃 덕분에 산다.


어제 토요일 휴천강으로 산보를 내려가는데, 화산댁 마당에서 하얀 떠돌이개가 그집에서 나온다. 앞다리 오른쪽을 심하게 다쳐 피를 흘리며 세 다리로 절룩거린다. 이번 추위에 다섯 마리 새끼를 낳았다 세 마리는 얼어 죽고 두 마리가 남았단다. 그중 털북숭이 강아지가 화산댁을 졸졸 따라오기에 개 줄로 묶어두고 먹이를 주면서 키우는 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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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미개가 때 되면 찾아와서 젖을 물리고 가며, 엊저녁에는 어디서 났는지 생선 한 토막을 물고 와서 새끼 앞에 놓아 맛나게 먹는 걸 물끄러미 지켜 보더란다. 하느님이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에게 두루 나눠주신 당신의 모성을 새삼 깨닫는다. 옆에 있는 삽살이들도 그 모자를 말없이 바라만 본다니 그 너그러움이 주인 아짐 화산댁을 닮았다. 반려동물도 키우는 주인의 성품을 닮는다.


휴천강 따라 산보를 하면서 보니 전날 내린 눈으로 제법 강물이 불었다. 재작년 여름에 시우가 강태공처럼 곧은 낚시질을 하던 바위 병풍 밑에는 어미가 새끼 오리 세 마리에게 자맥질을 가르치고 있다. 마른 풀숲에서는 개똥지빠귀와 곤줄박이가 풀씨를 찾는지 겨울잠에서 깨어난 벌레를 찾는지 분주하다. 어느새 겨울도 가고, 창밖 매화는 곧 꽃을 터뜨릴 준비에 볼들이 발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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