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7일 화요일. 맑은 봄날씨


수도관에 쓸 방한용품을 사러 화계에 가는 길. 종일 집에 있을 드물댁에게 바람이라도 쐬게 해주려고 전화를 했더니 ", 지금 마을회관에 와 있소."라는 아줌마의 들뜬 목소리. 한참 맘고생을 하면서 주눅 들어 지내다 다시 마을 공동체에 끼었다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실컷 놀다 와요.' 하고서 어제 저녁 늦게 그미 집으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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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찌거니 동호댁이 데리러 왔드만. 회관에 갔더니 면에서 쌀이랑 반찬값 다 나오는데 으째 꼼짝 않고 집에만 쳐박혀 있었냐고들 야단이드만. 그래 점심 먹고 설거지해 주고 저녁 쌀 씼거 놨드만 구장 마누래(젤로 젊은)가 저녁 해서 저녁까지 먹고 지금 막 돌아왔고마.' 그동안 따돌림 받는다는 소외감에 속이 무척 상했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인정하고 받아들여 주어선지 시들던 초목에 단비 내린듯 생기 있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드물댁이 마을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건 그동안 착하디착한 맘씨로 누구집 일이라도 거들어온 심성을 사람들이 인정했다는 표지고, 또한 가밀라 아줌마처럼 소외된 이웃을 끌어안고 불러들이는 분이 있어서다. 


"세동댁은 회관에서 화투 치다가 소장댁과 싸웠제. 그래 가동댁이 다시는 회관에 나오지 말라고 쫓아내서 몬 오게 되써." 자기는 복권 되었다며 그 집단에서 오늘 제외된 사람에 대한 느낌까지 전한다. 윤가가 나오지 말라면 나아무개도 안아무개도 못 나오는 판세가 이 조그만 동네 판세 딱 그 수준 같다. 


보스코가 한길사에 그레이트북으로 넘어갈 고백록의 해제를 다시 쓰고 (경세원 출판사 판본에 실었던) 학술용 각주를 대폭 줄이느라 한 달 가까이 작업하다 탈이 났다. 오랜 시간을 바닥 의자에 기대 앉아 머리를 숙이고 글을 다듬었으니 '거북이 목' 통증으로 나타날 수밖에. 나이 들어 쇠약해지는 것이야 막을 길이 없지만 몸 어디에 통증을 느끼는 일은 좀처럼 없던 일이라 걱정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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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 주는 허브크림 마사지와 진통제 복용으로 해결이 안 돼서 어제 읍내 '통증 클리닉'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했다. 의사는 크게 걱정할 것 없다며 주사를 놓아주었다. 나도 임플란트 한 이가 아파 치과에 들렀는데 치아 문제가 아니고 감기 때문인 것 같다는 진단이 나오기에 약국에서 감기약만 지어왔다. '특별히 나쁜 데 없어요.'라는 의사 말 만으로도 절반은 나은 기분이다. "여보, 올해는 우리 제발 아프지 말자구요." 라며 둘이서 손가락 걸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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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댁이 메밀을 뜨거운 물에 씻어 건져 놓았다며 방아깐에 빻으러 가잔다. 드물댁 혼자 물을 짜내기엔 힘들 것 같아 내려가니 부엌이 물바다. 손에 뭔가 잔뜩 묻히고 하는 일은 옆에서 돕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 둘이 자루에 부어 주물러 물을 짜서 두 솥에 담아 한솥씩 나눠 들고 집으로 올라왔다. 집에 와서 내가 쑨 메밀묵이 여덟 모!


며칠간 묵밥묵국수묵김치무침 등묵요리로 정월에 낀 혈관을 청소해낼 생각이다요즘이야 못 먹어 걸리는 병보다 너무 먹어 걸리는 병이 더 많으니...


소담정이 요즘 손목도 아프고 심한 노화를 느껴 몹시 우울하다기에 점심에 올라오라 해서 함께 묵국수를 먹었다. 늙을수록 혼자 있다는 게 큰 짐이다. 그래서 동네 아짐들도 혼자 사는 너른 집들 두고 마을 회관의 그 비좁은 방에 시루 속 콩나물처럼 모여 앉아 서로 온기를 느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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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 뜨는 시간부터 휴천재 복도와 거실이 온통 긴기아난향기로 가득하다. 여름이면 밖으로 나간 꽃들이 겨울까지 놓여있는 화분자리가 일정하다. 긴기아난은 데크 밑 반그늘에 두고 봄 여름 가을을 지낸다. 열흘에 한 번 씩 물을 준다. 11월말까지 바깥에 두어 초겨울 추위를 맞보게 하고, 집안에 들여도 벽돌방에서 추위를 견뎌내야 꽃대가 올라온다. 6개의 화분이 있는데 번갈아 더운 거실로 들여 꽃과 향기를 순차적으로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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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후 소담정이랑 셋이서 세동까지 산보를 했다. 입춘이 엊그제였다지만 어느 새 봄날씨처럼 포근해졌다.  덜 녹은 어름 사이로 청동오리가 물결을 가르며 떼지어 가니 봄이 오긴 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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