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2일 목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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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빵고신부 생일. 집을 떠났으니 내가 챙길 수는 없고 미역국이나 먹었냐?’ 물으니 그런 것 챙겨 먹는 사람 수도원에는 하나도 없어요.’ 모든 잡다한 세상사에서 자유로워진 모습이 보기 좋다. '어머니 저를 낳아 주시고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깍듯한 인사만 멋쩍게 들었다.


빵기, 빵고, 두 아이는 아주 어려서부터 아들이라기보다 친하고 믿음직한 친구였다. 가난한 유학생을 아빠로 둔 아이들이었기에(여섯 살, 두 살 적에 우리가 로마로 떠났다), 어려서부터 집안의 상황이나 재정상태 등을 애들에게 이야기해주고 동의를 얻어 함께 근검절약하는 시기를 헤쳐 나갔다.


요즘은 무를 심어도 무청만 잘라다 팔고 무는 버리는 농사법이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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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에서 내가 뭘 과하게 산다 싶으면 '돈 그렇게 써도 되겠어요?' 묻고, 자기들이 갖고 싶은 장난감이나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다음에 아빠 돈 많이 벌면 사 주세요.'라거나 '다음에 내가 돈 많이 벌면 사 드릴 께요.'라면서 욕심을 가릴 줄 알았다.


유난스러운 사춘기도 없었고, 반항기도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이들의 생각이나 결정이 우리들과 거의 같은 수준이었고(집안 대소사 결정에는 네 식구가 다 한 표씩이었다) 속 깊고 넉넉한 심성은 우리를 자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느님께 좋은 아이들을 배급 받은행운으로 생각했다.


화산댁 삽살이네(떠돌이개한테 먹이를 양보하던) 집에 새 식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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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네나 그렇지만 동네에 고약한 사람도 있지만 착한 사람들이 더 많다. 사나운 사람들과 말을 섞기 싫어 입을 닫고 있을 뿐. 이번에 드물댁이 노인 일자리를 놓치자 동호댁이 사람들 앞에서 자기더러 일 년 금방 가. 꺽정 말라구.” 다독이더니 마을 아짐들 다 모인 자리에서 누구든지 드물댁 불러다 일 시키면, 반나절이면 2만원 주고, 하루면 5만원 챙겨주소. 그래야 드물댁 약도 사먹고 머리도 뽂제.”라고 단도리를 하더란다.


어제 오후에는 드물댁한테 전화를 했더니 자기가 우리 집으로 놀러 오겠단다. 오전에는 거문골댁네 가서 놀고 오후엔 우리 집 와서 두어 시간 놀다 갔는데, 얼굴이 훨씬 밝아졌다. “낼모렌 함양장 같이 가서 메밀을 두어 되 팔아다 묵을 또 쑤자고 웃으며 내려갔다. 내 마음도 한결 가볍다.


오늘은 함양 장날. 드물댁이 봄옷같은 얇은 옷을 입고 올라왔다. 봄 꽃나들이 가는 처녀 차림이. 감기 걸리면 어쩌냐고, 얼른 가서 두꺼운 옷 입고 오라고 내려보냈다. ‘얼룩덜룩한 옷은 많은데 고것들은 싫어.’ 하더니 늘 입던 검정 잠바를 걸쳤다.


정월 대보름 장이라 온통 나물들. 그러나 시골에서 집집이 나름대로 나물을 마련했을 나이의 할매들이 장꾼으로 모인지라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다. 나는 자연유정란 세 줄과 메밀 두 되를 샀다. 어제 산나물을 원 없이 산 터라서 콩나물과 시골 할매들이 해온 손두부한 모만 샀다.


드물댁은 행여 나를 놓칠까 봐 내 뒤에 꼭 붙어 다녔다. 방송에 나왔다고 써 붙인 즉석어묵 집에서 떡꽂이어묵을 하나씩 물고서 장구경을 했다. '쩌 문어 쫌 보소 살아있고마!' 그미는 장거리의 모든 물건을 신기하고 재미있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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꽂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한 접 짜리 덩어리를 보니 본당신부님 생각이 난다. 그분이 함양에 처음 부임하셨을 무렵, 미사 끝난 공지사항 시간에 곶감 좀 그만 갖고 오이소. 나 고기도 생선도 좋아해요.”하시던 생각이 났다. 우리 집에 오셨을 때 할매들 서운케 왜 그런 말씀을 하셨냐고 물었더니 "장에 나가보니 곶감이 엄청 비싸더라구요. 팔아서 생활해야 하는데 신부 준다고 그걸 가져오는 신자들 미안해서 그랬어요." 장터에 매달린 곶감에 신부님 착한 맘씨도 정답게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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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댁이랑 큰 슈퍼에 들러 라면도 사고 두유도 샀다. 점심은 뭘 먹겠느냐 물었다. '돼지국밥, 짜장면과 탕수육, 비빔밥, 칼국수???' 보쌈을 먹겠단다. 한참이나 설명을 하는데 '상추 싸는 쌈 말고 거, 뜨건 물에 종이 적셔 싸 먹는 밥!'이란다. 언젠가 샤브향에서 월남쌈을 함께 먹었는데, 그걸 순수하게 보쌈이라니 그미는 우리말 애용가다


아래층 사는 진이네가 강건너집 공사를 하면서 오늘은 불도저를 휴천재 마당으로 끌어와 감동 옆 빈 터를 긁어냈다. 휴천재 마당은 잔디밭으로 복원하고 공터에 자갈을 깔아서 진이네 주차장으로 삼으라는 보스코 제안에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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