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31일 화요일. 맑음


어제는 봉재언니 생일이고 오늘은 보스코의 영명축일. 미루 총무가 '은빛나래' 축하모임을 주선했으니 작년 1224일에 만난 지 한달만이다. 원지에서 만나 점심으로 추어탕을 함께 먹고 봉재언니네 집에서 다과를 하기로했다. 언니가 살던 집이 겨울나기에 부실하던 터에 데크를 새로 깔고, 바깥벽을 송판으로 덧대고, 창문과 문틀을 좋은창호로 바꾸고 방안 도배를 새로 한 터여서 어제 집들이를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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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나래모임에는 세분의 임오생(1942년생) ‘어르신이 있다. 작년 2022년에 세 노인 다, 보스코 말마따나, ‘인생 막차 티켓을 예약했다. 어제 82세 생일을 맞은 봉재언니는 모르는 새에 뇌경색이 두 번 지나갔었고 세 번 째 온 뇌경색을 아침 일찍 식사하러 온 동생 신부님이 발견하여 즉시 진주 경상대병원 응급실로 모셔갔다. 빨리 손 쓴 덕분에 언니는 쉽게 회복했지만 오래 전부터 귀가 잘 안 들리기도 했고 말수도 없던 분이라 이젠 모든 모임에서 여간해선 언니 말소리를 못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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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세 번째 설암 수술을 연초에 받은 남해형부는 어제도 재담가로서 재미진 이야기로 끊임없이 일행을 웃겼다. 수술마다 혀를 조금씩 잘라냈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게 말수가 안 줄었으며, 모임 올 적마다 큰딸한테서 아빠, 제발 말 좀 적게 하세요라는 경고를 받았노라고 하지만 그분의 구수한 이야기가 없다면 우리 모임은 정말 심심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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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에 폐를 도려낸 보스코는 언니만큼 말이 없어 형부한테 놀림 당하는 대상이지만 웃기만 하고 반응이 없으니 놀려도 별 재미가 없을 게다. 세 노인보다 스무살은 어린 미루와 이사야지만 하이얀 은빛 머리칼로 당당히 은빛나래단에 동승했다. 귀요미미루의 재롱이 없으면 우리의 노년과 귀촌 생활이 얼마나 심심 했을지 상상이 안 간다.


남해에서 해풍과 추위를 견디며 실하게 자란 다디단 시금치를 형부가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가져다 줬다. ‘남해형부는 모임에 올 적마다 남해바다 특산물을 선물로 가져다 준다. 바다가 오염되어 가까운 앞바다 낚시를 못하게 되자 생선에서 시금치로 종목이 바뀌어 아쉽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남해 시금치를 다듬어 데쳐서 네 뭉치로 나눠 냉동실에 넣었다. 손님이 오면 이탈리아식 시금치 요리를 내놓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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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침부터 보스코의 지인들에게서 축하 전화와 메시지가 이어졌다. 고마운 일이다, 그만큼 그가 안 잊히고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뜻이니. 보스코 본인의 말을 빌리면, 우리가 하느님께 총애 받는 표식(‘은총이라고 부른다)은 선하고 따뜻한 분들에게 둘러 싸여 사랑 받고 보살핌 받는 것으로 나타난단다. 그만큼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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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엔 소담정 도메니카와 동의보감촌 산청각에 가서 단골 메뉴 육회비빔밥을 먹으며 보스코의 영명을 축하해 줬다. 내 남편 보스코가 얼마나 착하고 좋은 남자인지에 관해 평소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던  소담정이 내린 소견인 즉, “대한민국 여자들이 죄다 남자들 윽박질에 기를 못 펴고 사는데, 딱 예외인 여자가 하나 있으니, 그게 전순란!”이란다. “자존감을 얼마나 빵빵하게 키워줬던지(남편이?) 누가 뭐래도 거칠게 하나도 없는 여자”라나? 우리 부부 중 어느 편을 칭찬하는 말인지 도대체 분간이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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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우리 셋은 마을 입구 송문교에 차를 세워두고 세동마을까지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세동마을 길갓집 주모 할매와 동네 아짐들이 다 모여 지난 봄부터 뜯어 말린 나물들을 삶아서 우려서 말끔히 씻어 담으며 낼모레 함양장에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담 일요일이 대보름! 취나물, 산나물, 뽕잎나물, 다래순, 고구마줄기, 고사리, 아주까리... 거기 있는 나물들 만으로도 보름 밥상은 그득하겠다. 산나물 마니아를 자처하는 도메니카는 나물을 보는 것 만으로도 흥분하더니 상주 식구들을 위해서 한 아름 산다. 나도 덩달아 나물을 샀고, 식구 많은 딸이 생각나서 조금 챙겼다.


보스코는 명절과 축제를 즐기는 사람이다. 나에게 장가온 담에는 정월 대보름에도 찰밥이나 오곡밥에 열두 가지 나물을 해마다 차려주니까 좋단다. 부부는 같이 맞는 명절만 아니고 가난하고 서럽던 어렸을 적에 못 누린 추억도 위로받고 함께 복원해야 하는 운명공동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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