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7일 화요일. 맑음


일요일 저녁 공소미사 가는 나를 보겠다며 드물댁이 자기 집 툇마루문을 열고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 820분에 데리러 올 테니까 핸폰에서 '여덜씨~'하면 날 기다리고 있으라고, 사람 하는 일이니 너무 걱정 말라고 이르고는 미사엘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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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820분에 그 집 앞에서 부르니 기다리라더니 화장실엘 간다. 그미는 긴장하면 5분 간격으로 화장실을 드나든다. 8시부터 열 번도 더 화장실을 다녀왔단다. 그미를 이렇게 긴장시키는 공공근로가 그미에게는 과거시험만큼이나 커 보인다. 우리가 면사무소에 도착하는 그 시간에 군내 버스가 막 도착하여 20여 명 족히 될 (’노인일자리에 차출된) 공공근로 할매들을 쏟아낸다. 밀차를 밀거나 걷기도 힘든데 비칠거리며 차에서 내리는 모습들이라니...


반장 말로는, 드물댁에게 작년 12월에 각자가 공공근로 연장신청을 직접 하라고 일렀는데, ’말귀를 못 알아 들었다면서 반장도 미안해 한다. 빈 자리가 생겨도 기다리는 예비자 명단이 30명도 넘어 거기에로 넘어가니 올해는 포기하란다. 내 차에 다시 올라타고 돌아오며 눈이 벌개져 풀 죽은 그 모습엔 위로도 못하겠다. 조금 챙겨주지 않은 동네 이웃들이 원망스럽다.


먹이가 떨어진 텃새 철새들이 부풀기 시작한 매화 봉오리들을 따먹고 배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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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미를 자기집에 내려주고 '암만해도 안 되겠다' 싶어 면사무소로 다시 돌아가 담당직원에 통사정을 하고 왔다. 드물댁에 대한 내 걱정은, 그미가 하릴없이 지내다 맥이 떨어져서 치매라도 덜컥 걸릴까 하는 점이다. 시골 안노인들 치매는 혼자 사는 우울증에서 주로 온다.


그래도 엊저녁 간식을 들고 위문차 방문했더니 그미 사정을 걱정하던 화산댁이 호박 죽 먹으러 오라 해서 갔다 왔다며 마음이 많이 풀려 있었다. 화산댁의 저녁초대에 자기 단짝 친구 검은굴댁도 데려오라 해서 함께 다녀왔단다


목포 칭고 리따에게 선물받았던 극세사이불을 '독거노인용'이라는 명분을 붙여 그미에게 갖다 주고, 방바닥에 깔고 둘이 발을 묻고서 한 시간이나 '이바구'를 하고 왔다. '하룻밤 따숩게 자고 나면' 속상했던 기억이 많이 엷어지리라. 반달이 졸고 있는 어두운 밤길도 마음속에 반짝이는 별들로 더는 어둡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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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10시 반. 후배 표선생이 지난번 남겨두고 간 장작을 마저 가지러 왔다. 제자 전성부(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자기 이름만 들면 '성부聖父', 그것도 '전능하신 성부'를 되내면서 놀린단다)씨는 거창 북상면에 귀촌한 사람이고, 부인 아침 먹여 직장 보내고, 노모 밥 챙겨드리고, 설거지까지 하고서, 오는 길이란다. 귀촌하며 저렇게 완죤 해방된 남성이 된 진정한 남성의 모습이다.


어제 만든 애플파이와 모닝 커피를 내놓았더니 간식을 하고 부지런히 '선생님네 겨울 나실 땔감'을 챙겨가는 장정, 표선생이 처음 발령 받아 부임했을 때 까까머리 고3이던 모범학생이 타관에 나갔다 귀촌한 중늙은이로 여기 서 있다. 학생을 키운 보람에 흠뻑 빠진 후배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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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구씨가 군청에서 발주 받은 마지막 일로 바쁜 중에 손수 깎아 만든 곶감을 설선물로 가져 왔다. 요즘 통 얼굴을 볼 수도 없었는데, 그런 중에도 이웃을 챙기는 저 남정의 고운 마음은 '천심이 깃든 따순 둥지'. 거기에 깃들인 우정이 이 동네에 우리 발목을 잡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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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외여인터' 신년 총회에 화상으로 참석했다. 줌 화상회의로 그 먼 서울 길을 오르내리지 않아서 좋다. 정권이 바뀌고 시장이 바뀌며 어려운 사람들 돌보는 정부 지원이 대폭 깎였음에도, 굴하지 않는 실무자들이 고맙기만 하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곁에 넘쳐 나는데 서민 지원이나 의료 혜택은 폐지하다시피 하고 부자들 감세와 강남아파트 층고제한 페지등, 그들을 위한 일로  열을 올리는 정권이라니... 외국 나갈 적마다 저 사람이 저지르는 '외교참사'를 보고 있자니, 그래도 5년 외교관 생활을 해 본 보스코는 열불이 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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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네는 모처럼 겨울 눈이 많이 내린 알프스를 주말에 다녀와 사진을 보냈다. 어렸을 적에 자라면서 보고 배운 탓인지 제네바 아들네집에는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제네바 다녀온 활동가들 치고 빵기네에 초대 받아가지 않은 사람이 없다니 그 많은 손님을 말없이 치르는 며느리가 고맙기만 하다. 시할머니까지 모시던 대갓집, 일년에 열두 번 넘게 제사를 지내던 집안에서 온 며느리라 손님 무서운 줄을 모르나 보다. 두 손주의 급우들도 참 자주 놀러 오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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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봉에 있는 자기 농막에 볼일이 있어 온 길에 점심이나 하자는 윤희씨 연락이 왔다. 산청에 함께 가서 점심을 먹고 미루네 매장 가까운 아모르(AMOR)’라는 까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고개만 들어도 보일듯한데, 부르면 당장 달려왔을 귀요미’(보스코가 '데꼬들어온 딸' 셋째를 부르는 이름)가 없으니 허전하다. 미루는 그 시간, 백 살 넘은 시엄니를 요양원으로 찾아가 효도를 하고 있었다.작은 시간도 알뜰하게 쪼개 쓰는 모습에 늘 감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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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에서 오래 살았던 윤희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김원장님은 왜 남원에 아파트를 언니한테 권하실까? 남원도 도회지여서 답답 하기는 마찬가지예요.' 자기 생각엔 우리 부부 중 하나가 남을 때까진 이곳을 못 떠날 것 같단다. 전주 가서 살아보니 더 그렇더란다. 우리가 서울 갔다가 지리산에 돌아올 때마다 느끼는 바도 그렇다. 그미는 사람 마음을 살피고 어루만지는데 각별한 재주를 타고났다. 드디어 막내아들까지 둥지에서 떠내밀어 자기 세계를 만들게 하는 드물게 슬기로운 엄마이기도 하다. 짧은 머리의 사랑스런 그녀에게서는 갓 딴 상큼한 레몬향이 물씬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