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일 목요일. 맑음


20141에 아래층 사는 진이네가 휴천재에 붙여 짓고서 생업으로 삼던 '송지건강원'(개소주와 흑염소)을 접으면서 그 공장시설도 철거했다. 로마에서 돌아와 5년 가까이는 내가 그 건물 뒤에 붙어 있던 옹색한 창고를 부엌으로 쓰면서 끼니마다 음식을 쟁반에 담아 2층으로 배달해오던 중이었다. 그때만 해도 60대 초반 나이에 힘도 좋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음식배달을 했다.


그러다 진이네 건강원이 닫히자 우리가 창고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식당채를 들였다. 본건물 끝에 있던 화장실까지 합하면 14평이니 훗날 살레시안들이 와서 쓴다 해도 괜찮은 공간이었고, 이 공사 후 휴천재 손님도 한결 늘었다.


2014년 1월 휴천재 식당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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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이라는 신참 대목에게 일을 맡겼는데, 대목으로서는 자기가 처음 맡아 짓는 집이어서 정성을 다했다. 그의 재주와 솜씨가 모자라는 부분은 그를 대목으로 키운 선배 목수 둘이 와서 도왔다. 합으로 세 목수가 약 한 달도 못돼 목조주택을 뚝딱 지어냈다. 전기 공사만 빼고 미장, 하수구, 도배까지 셋이서 해냈으니 일 없는 정월에나 가능한 공사, 그야말로 서비스 공사였다. 지금도 휴천재 전체에서 가장 따뜻한 공간이다.


그 무렵 진안 부귀면 최종수 신부님께 주물 난로를 하나 선물 받아 설치했는데, 여름에 50만원 어치 참나무 한 차 들여놓으면 충분했다. 처음 2년은 별문제가 없었는데, 3년째 되는 겨울엔 연통으로 연기가 안 나가 불을 붙이거나 끌 적마다 주부인 내가 '곰을 잡아야' 했다


이듬 해 난로를 철거하고 보니 L자로 꺾인 굴뚝이 송진으로 꽉 막혀 있어 목조건물 식당채를 홀랑 태워 먹을 뻔했다. 이웃 도정의 지인 작업장도, 한남 마을 어느 주택도 송진에 막힌 굴뚝이 화재를 일으켜 소방차가 동원된 사건을 본 터라 폼 나는 벽난로를 미련 없이 뜯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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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원 어치나 되는 참나무가 남았다. 비 안 맞게 감동 밑에 쌓여 5년 가까이 지났다. 며칠 전 거창에 사는 한신 후배가 난방을 나무로 한다기에 그 나무를 가져가라 했다. 8년이나 마르면서도 벌레먹지 않아 단단한 참나무가 1톤트럭 두 대는 됐다. 같은 북상면에는 거창고등학교 제자가 살고 있어 날라다 주겠다며 어제 와서 한 차 실어 갔고, 다음 주 월요일에 나머지를 실어가기로 했다. 땔감을 얻어 즐거운 후배는 그새 남 주지 마세요.”를 당부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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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오랜만에 산보를 나갔다. 한남 마을 환경운동가 최상두씨가 엄천강에 빠져 죽은 늑대를 건져올려 와룡대윗편 병담에 놓아두었다는 패북을 띄운 참이라 근방을 이쪽저쪽 둘러 보았지만 흔적도 안 보였다. 모든 일에 궁금혀 궁금혀를 달고 사는 우리 두 노친네가 어정거리자 살아나 도망갔나? 휴천강 깊은 물에 목숨을 던진 생물이 어디 늑대 하나 뿐이겠는가? "부디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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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은 느티나무 독서회 모임 날. 2022년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을 받은, 문경민 작가의 훌훌을 읽고 모였다. 어린 나이에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바로 그 사고로 남편과 아이를 잃은 집으로 입양된 소녀 유리의 이야기. 그 집에는 암에 걸린 노인(시아버지)도 살았는데, 여자는 둘을 남겨 놓고 집을 나가 다른 남자와 재혼한다. 양엄마의 재혼으로 얻은 아이 연우가 그 집으로 들어오며,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그 집 그 상황을 훌훌 떠나겠다는 유리의 계획이 물거품이 될 상황. 과연 주인공은 모든 걸 털고 훌훌 떠나갈 수 있을까? 인간적인 정이나 도리에 주저앉고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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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모임에 나온 주부들은 토론을 했다. 누구는 작가의 잔인한 플로트 설정을 성토하고, 누구는 가엾은 유리를 동정하고, 누구는 다리에서 엄마를 밀어 죽게 한 연우의 상처를 동정했다. 이어서 각자 자기의 삶에서 훌훌 떠나고 싶었던 순간과 기회에 대해 가슴 아픈 대화를 세 시간 가량 나누었다. 감정이 이입되어 함께 울기도 하고, 그런 순간이 다시 온다면 전혀 다른 선택을 했으리라는 장담도 했는데, 허스토리로 상처를 풀어가는 여성들의 특유한 테라피 자리이기도 했.


20여년전 바티칸에서 함께 근무한 슬로바키아 대사 다그마르(여)가 보내온 

성탄카드가 오늘 도착했다. 마리아의 어린 예수의 방바닥 걸레질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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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라는 땅에서 아버지라는 공포의 절대 군주에 폭력에서 자유로운 여인은 없다.’ ‘김일성과 아버지가 죽었을 때 아, 저 사람들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을 뿐이다.’ ‘나는 어떤 폭력을 두려워했나 뒤돌아보며 언어 폭력과 물리적 폭력으로 인해 파괴된' 가정과 부부간, 부모자녀간 인간관계가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 돌아보았다


서울여성의전화가 운영하는 매 맞는 여성의 쉼터를 서울집 옆에 데려다 놓고서 돌보며 나도 오래전에 오래 동안 가정폭력의 파괴적 결과를 확인한 바 있다. 가정의 기둥인 아내요 엄마인 여인들이 아무 때라도 '훌훌' 털고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을 굴뚝같이 피워 올리는 폭력 가장들! 남성들이여여성을 적으로 만들지 말지니너희는 평생 동지를 잃을 것이니라.”는 교훈이 슬픈 여운으로 가슴에 맴도는 밤길을 운전하여 집에 돌아왔다. 밤 10시! 늑대의 남겨진 짝이 어슬렁거릴 산길 이젠 무서움도 사라져버릴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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