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1일 일요일. 맑음
산에 사는 낭만(퍼온 사진)
농사지은 배추로 절인 배추를 해서 파느라 병곡 사는 정옥씨 어깨 인대가 다 망가졌단다. 함양 통증크리닉에서 치료를 받다가 차도가 없자 진주 세란병원에 가서 MRI를 찍어보라는 진료의뢰서를 받고 간다기에 나도 따라가기로 했다.
얼마 전까지 죽도록 아프던 다리가 '꼬맹이'가 마련해준 '저스트연고'(노간주, 백리향, 악마의 발톱 등등의 허브에서 추출했다는)로 두 달 간 마사지한 덕분에 통증은 가셨다. 그래도 밤에 일어나면 다리가 꺾인다든가 스텝이 꼬이는 일이 남아있어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 동안 함양 의사도, 서울 정형외과의도, 한일병원 의사도 나더러 MRI 촬영을 받아보라는 권고가 있었다.
금요일 9시 15분 생초 시외버스터미널 주차장에서 만나 내 차를 세우고 엽이아빠 차로 10시에 '세란병원'에 도착했다. X-Ray를 찍고 상태를 본 담당의가 역시 심각하다며 MRI를 찍어야 한단다. 그러려면 당장 입원을 해서 상태를 보고 촬영을 해서 결과를 상의하잔다.
정옥씨를 입원시키고 귀가하는 엽이아빠 차로 나는 일단 생초로 돌아가 금계우체국에 맡겨 부쳐 달랬던 크리스마스 카드를 모두 되찾아 제네바에 있는 빵기에게 EMS로 보냈다. 제네바에서 유럽의 지인들에게 부쳐 달라는 말이다. 카드 주소에 한국에서는 우편이 직접 안 가는 국가가 꽤 많았다, 더구나 코로나로. 보스코는 성탄 때면 연례인사를 해외 지인들과 카드로 나누곤 한다. 80년대부터 사귄 친구들, 바티칸 인사들, 우리와 같은 시기에 교황청에 대사로 근무하던 지인들이다. 금년에도 40여명.
엊그제 8일은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축일이자 우리 며느리(마리아)의 생일이었다. 아범의 국제적인 구호활동을 말없이 떠받쳐주며 두 손주를 키우는 인내와 살림 솜씨가 놀라운 며느리를 점지해 주셔서 성모님께 감사드린다. 나처럼 개신교에 있다 구교로 옮겨온 신자들에게는 가톨릭의 '성모 신심'이 놀랍기만 하고, 여성신학에 관심있는 신학도에게는 모든 종교 바탕에 새겨진 모성적 요소가 부각되어서 좋다.
작은아들의 성탄선물
입원해야 하기에 내 차로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1997년 여름, 방곡의 폭포에 물놀이 갔다가 폭포에서 떨어져 앓기 시작한 무릎 통증을 이젠 끝내기로 작심하고 병원에 입원해서 진단을 받기로 작정했다. 11시에 촬영한 MRI 검사결과를 세시에 알려주는 의사는 딱하다는 표정으로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았다.
“왼쪽 무릎의 삼각인대 두 부분이 다 끊어져 흔적이 없다. 연골도 아예 닳아져 뼈가 닿아 있는 상태다. 그래도 본인은 통증이 없다는데 믿기지 않는다. 기적이면 몰라도.” 그런데 내게 의심스러운 것은 ‘인대가 없는데도 사람이 걸을 수 있는가?’ ‘연골이 닳아져 뼈들이 맞붙어 있는데도 통증 없이 걸을 수 있는가?’였다.
휴천재 마루의 겨울 화단
아무튼 의사는 당장 수술하고 보자는데 나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없어진 인대 대신 무릎 가까이에 무슨 근육이 다리를 잡아 주는 듯하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무릎이 죽도록 아파지면, 그때 와서 수술받을 게요.' 라고 했다. 25년간 아프다 말다 이렇게 살아왔으니, 앞으로 25년이라고 아프다 말다 못 견딜 일 없다는 배짱이다.
그래도 입원한 덕분에 그제 밤은 정옥씨와 여행 온 기분을 내며 침대의 머리가 맞붙은 거리에서 함께 지냈다. 은근히 들떠 맛있는 거라도 사다 둘이서 파티라도 하고 싶은데, 일단 입원하면 코로나로 외부 출입금지란다. 얌전히 책이나 볼 수밖에. 가까운 편의점에서 책 한 권을 빌려왔다.
병원에 입원을 하면 제일 괴로운 게 TV소음. 내가 그 병실에 마지막으로 들어왔으니 바로 TV 밑이 내 자리였다. 왕왕거리는 소리에 미치기 직전, 8시가 되자 개인등까지 다 끄고 자라는 고약한 선참 아줌마. 늘 타인을 배려해 양보와 수긍이 몸에 밴 정옥씨는 얌전히 대답 하고 스탠드를 끄고 두 눈을 질끈 감는다. 행여 시끄러운 선참 아짐한테 내가 한 마디 쏘아 붙여 싸움이라도 날까 전전긍긍하는 정옥씨가 가여워 나도 말없이 불을 끄고 복도로 나와 밤늦게 책을 읽었다. '꿈꾸면, 단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줄거리였다.
새벽 5시 간호원이 혈압과 체온을 재고 나가며 다시 불을 끄자 이번엔 그 선참이 밤새 잤으니 불 그대로 켜두고 가란다. 밤늦게 잠든 터라 나는 졸려서 한마디 하려는데 정옥씨가 눈을 꿈벅거린다. 온 우주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굳게 믿는 사납쟁이 아줌마와 붙으면 아무리 '왕언니'(느티나무 독서회가 내게 붙이는 칭호)라도 얻어터질 것 같았나 보다. 나도 '한 승질 하는' 여자요, '괭이로 이마까라 아줌마'라는 사실을 정옥씨가 아직 모르는 듯하다.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11711
토요일 11시에 퇴원을 해서 정옥씨를 병곡 연서까지 실어다 주고 집에 왔다. 그미의 시어머니(92세)께 인사도 드릴 겸. 병원에서의 하루가 무척 피곤했는지 집에 와서 점심을 먹자마자 낮잠을 잤다. 의사나 간호사들은 어떻게 저런 긴장과 소음을 견딜까? 임실 사는 김원장님이나 문썜이 의사직을 빨리 퇴직한 건 탁월한 선택인 듯하다.
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202
일요일 아침 공소예절은 우리 부부와 토마스 2, 셋이 드렸다. 공소 회장님이 주말마다 바빠 이 양떼들이 적당히 먹이를 찾아서 허기를 채우는 셈이랄까?
주부인 내가 하룻밤 집을 비운 새에 휴천재에 두 가지 변화를 만들어놓고 보스코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잉구씨가 구장 논 방천난 데 떼우면서 커다란 납작바위를 우리 정자 옆에 놓아주고 포클래인으로 자리까지 잡아주었고, 기계가 올라온 길에 보스코는 잉구씨에게 부탁하여, 휴천재에 데크를 놓자 그 밑에서 10여년 그늘살이를 한 치자나무를 캐내 마당 끝 반송들 사이에 옮겨 심은 일이다.
오늘 아침 10시에 휴천재를 떠나 점심도 차 안에서 먹으며 쉬지도 않고 올라왔는데 우이동에 도착하니 3시가 좀 넘었다. 지리산이 멀긴 멀다. 산이 멀어졌는지 내가 늙었는지 이제는 갈수록 운전하는데 힘들어 가능한 한 움직이지 않으려는 꾀가 생긴다.
우이동집은 비워 놓지만 우리가 오래 살았고 아래층 레아가 잘 챙겨서 낯선 기분이 전혀 안 든다. 먼 길 오느라 차 타고 오는 것만으로도 힘이 드는지 보스코는 9시도 안 되어 잠이 들었다. 부부는 일심동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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