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2일 화요일. 겨울비


보스코가 휴천재 마당과 텃밭 그리고 올라오는 길가의 스러진 꽃대와 말라버린 호박덩쿨을 어제 오후에 말끔히 걷어냈다. 이제 적극적인 겨울맞이가 시작됐다. 가을의 마지막 꽃 국화와 금송화만 된서리에도 당당히 버티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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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무는 부사 사과처럼 서리를 몇 번 맞으며 견뎌내야 맛이 달아진다. 허연 무 한 뿌리를 쑥 뽑아 깎아 먹어 보니 배보다 더 달고 사각사각 입안에서 녹는다. 우리 텃밭과 잉구네 텃밭에선 아직도 토마토가 가을걷이로 풍성하다. 이 기분으로 힘들어도 농사를 짓는다. 지천에 깔려 있는 감나무마다 붉은 감이 가을꽃으로 피어 있건만 따는 사람이 없어 까마귀도 까치도 좋은 먹잇감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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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나 감 안 먹었다!" 카메라: "네 부리에 묻은 건 뭐게?" 까마귀: "깜빡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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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점심 먹고 드물댁을 데리고 읍내 병원엘 갔다. 그날도 병원은 역시 싸전판. 서울 대형병원 로비보다 좁은 공간에 진료실 세 개, 접수실, 응급실, 검사실, 대기실 모두 들어앉아 있으니 행세께나 하는 사람들이라면 눈살을 찌푸릴 수준. 그러나 시골 읍에는 걸맞아서 늙거나 가난한 농사꾼들이 위화감을 안 느끼는 건 긍정적인 면이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을 운운하는 가톨릭 종합병원들의 저 으리으리한 시설을 보면 오히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드물댁의 검사결과는 예상대로 아무 이상이 없었다. 치매 걸리지 말라고 뇌영양제만 처방해 주었다. 이제는 누구도 그미에게 치매라는 말을 꺼낼 수 없게 된 게 이번 검사의 성과라면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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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진료를 기다리던 도중에 내게 전화가 왔다. 자기가 내 차를 박았으니 빨리 와보란다주차선 안에 얌전히 잘 세워 놓은 내 차를, 마악 운전을 배우고 새 1톤 트럭을 마악 산 아줌마가 운전 미숙으로 내가 마악 산 아반테 하이브리드 운전석 앞머리와 옆, 그리고 헤트라이트를 사정없이 긁고 찢어놓았다! 아직 ‘사랑 땜도 안 했는데! 한번 고치면 어쩔 수 없는 헌 차인데! 속이 많이 상했지만 별말을 못 했다.


경상도남자 다운 운전자의 남편이 얼마나 아내를 윽박 지르고 소리 지르는지 여자는 주눅이 들어 벌벌 떨고만 있었다. 오히려 피해자인 내가 소리 지르지 말라!, ‘그렇게 잘났으면 당신이 운전하지 왜 여자를 시켰냐?, ‘어차피 운전하다 보면 박기도 하고 박히기도 한다!, ‘그거야 고치면 되는 거고 인사 사고만 안 나면 그걸로 감사하게 생각하라!, ‘아줌마, 쫄지 말고 힘내요!라고 소리 지르고 격려를 해주고 내 차를 그냥 끌고 돌아왔다. '남자루 태어난 게 벼슬인' 땅의 그 남자 오랜만에 '기찬 여자' 하나 만났을 게다. 


우리 차를 본 보스코는 공주처럼 모시더니 이젠 그냥 차로 보이겠네?’라고 놀린다. 자기를 싣고 다니느라 사고를 당했다며 미안해서 쩔쩔매는 드물댁에게도 차가 저리된 건 박은 사람 잘못이지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다독여 줘야 했다. 보험으로 해결해 준다니 맘 편히 끌고 다니다 천천히 고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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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여동문회 연말 총회는 오랫동안 창덕궁 가까이 사는 안상님 언니 집에서 가졌다. 언니가 힘들어지자 우이동 우리집에서 한번 했더니 너무 멀고 교통이 불편하다며 교회기관 사무실에서 모임을 가져왔다. 늘 언니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컸는데 언니가 몸이 불편하시다고 해 이번엔 한신 선후배 모임의 아우 동문들이 언니 집 가까이 있는 식당에서 언니들을 모신단다. 나도 볼 일이 있고 언니와 아우들도 볼 겸, 서울 나들이를 떠났다, 오랜 만에 버스로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88532


보스코는 새벽부터 나를 먹여 보낸다고 부산하게 아침상을 차린다. 나오는 길에 장 보러 가는 동네 아짐 셋을 읍내 장터에 내려드리고, 내 차는 시외버스 가까운 주차장에 세우고, 예매해둔 지리산함양고속버스를 탔다. 새 차여서 아무데나 주차하기 꺼렸는데 한번 긁히자 안달하던 마음을 내려놓았나 보다. 별것도 아닌 것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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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담을 끼고 오르노라니 때도 모르고 철쭉이 피었다. 꿀벌도 요즘의 푹한 날씨에 철을 모르고 나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온도가 내려가면 낙엽처럼 날개를 접고 (150일 사는 겨울벌이 40여일만에)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다고 지리산 이웃 사는 벌치기의 눈먼 걱정이 크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가 4년을 못 넘긴다던 아인슈타인의 경고도 인류에게도 정치가들에게도 소귀에 경읽기.


대선배 안상님 언니도 이문우 언니도 함께 하셔서 만남이 반가웠다아우동문들로는 한국염, 전순란, 문화령, 조생구, 유영님, 김정희, 지미혜, 한선희, 유근숙이 모였다. 한신 기숙사 한솥밥을 먹으며 지내던 한 캠퍼스의 젊은 날들이 어우러져서 멋진 그림으로 완성된 시간이다


'아직 살아줘서 고맙고 함께해 줘서 더 고맙다.'는 인사(선후배 가릴 것 없이 우리 나이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를 나누며 헤어졌다. 휴천재의 무 배추를 가지러 올 겸,  큰딸 이엘리 차로 밤늦게 빗속에 함께 내려왔다. 보스코가 혼자 점심 차려 먹고 목을 빼고 기다렸을 휴천재에 도착하니 밤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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