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3일 일요일. 맑음


금요일 1111. 언제부턴가 노인들마저 '빼빼데인가 뭔가' 하면서 읍에서 그 과자를 사다 나눠 먹는다. 대처에 사는 자손들이 택배로 사보내기도 한다. 올해는 이장이 마을 방송으로 휴천면이 공설운동장에서 전통놀이로 면민들을 모시니 빠지지 마시고 참석하시라, 맛난 간식과 술과 점심도 준비했다, ‘굴렁쇄돌리기’, ‘제기차기’, ‘자치기’, ‘닭싸움’, ‘사방치기같은 전통놀이를 하니 많이들 경기에 참석하시라고 공지했다. 추수가 끝난 뒤의 여흥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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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통놀이에 나설 만한 남정네가 마을마다 몇이나 되겠으며(우리 '문하마을'엔 보스코 포함 넷), 서너 명 있다 해도 굴렁쇠를 돌릴 체력인가? 두 다리로 걷기도 힘든 노인들이 한 다리로 서서 제기를 차거나 '닭싸움'을 과연 하겠는가? '늙어가는 농촌'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보스코는 아예 관심이 없고 (동네 아짐들에게 새댁’[새대기]이라는 애칭을 듣는 터라) '숯꾸지'(문하, 문상 마을의 옛 이름) 아짐들과의 유대를 위해서 나라도 점심에 맞추어 부지런히 공설운동장으로 갔다. 그런데 한 시도 안 됐는데 낮밥(비빔밥)을 챙겨 먹은 아짐들 모다 집으로 돌아갔고, 하릴없는 할배 몇이 막걸리에 눈이 풀리고 다리도 풀린 채 오늘 행사에 창하러 불려와 요란한 차림과 화장을 한 새악시 노래를 들으며 술병을 기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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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끝나가는 파장이라 점심도 못 얻어먹나 보다 하고 돌아서는데 '차보살'이 반갑게 나를 맞는다. 지난 몇 해에 그미가 '보살님'에서 '스님'으로 바뀌었고 여승으로 산지 한참 되었노란다. 그 스님은 중생제도(衆生濟度)의 첫걸음으로 나같은 중생이 곯은 배로 돌아가지 않게 귀빈을 위해 따로 챙겨 놓았을 지짐과 고기, 떡과 묵을 한 상 차려주었다. 덕분에 배곯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사람이 밥이다.

"차보살"의 신선한 삶 : 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57820


돌아오는 길에, 엄천강변에 새로 생긴 카페가 오늘 개업한다고 들어 들여다보았다. 첫 마수로 아메리카노 한 잔(4,500원)을 팔아주었다. 동호마을 엄천식당 둘째아들이 주인이란다. 요즘 외지로 나갔다 아들이 빈손으로 돌아오면 부모는 마을 앞에 카페를 내서 자리를 잡아둔다. 바로 이웃 주유소도 식당을 개조하여 카페를 만들어 막내아들에게 일자리를 차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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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유림에서 마천까지 한 길에 신식 카페가 열 집 가까이 된다. 지방도에 오리마다 카페 한 군데라니...  밥집도 아니고 다방인데, 4500원 내고 그 쓴물을 먹을 마을 할매들이 몇이나 될까, 그것이 알고 싶다. 지리산을 오가는 관광객 차량들을 염두에 두고 열었겠지만...


어제 토요일엔 담양에 있는 '성삼의 딸들' 수녀회 창립 10주년 기념 미사에 초대 받아 갔다. 수녀님들의 새 공동체를 광주대교구 수도회로 인가해 주셨던 김희중 대주교님이 기념 미사를 집전하셨고, 아무것도 없는 빈손에서 시작하며 구체적으로 도와주셨던, 가장 가까운 은인들 몇 부부가 소박한 점심을 함께 했다. 어떤 분은 수녀원을 건축할 때 도와주었고어떤 분은 법적인 조언을어떤 분은 수녀님들이 된장을 생산하도록 거들고어떤 분은 가까이에서 수녀님들의 먹거리를 돕고 있단다우리 부부는 평소의 친분 땜에 깎두기로 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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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무수한 수도회가 생겨났다 사라지곤 했지만, 하느님은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신다니, 창립자 국수녀님의 20여년 노력이 아름답고 풍성한 영성으로 결실 맺으리라 믿는다. 하느님의 사업일수록 악마가 꼬리를 들이미는 일이 다반사여서 이래저래 시련을 헤쳐나가는 중. '삼위일체 하느님'을 수호자로 모셨으니 성삼께서 저렇게 예쁜 당신의 딸들을 굶어 죽게 버려두지는 않으시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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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065

오늘은 연중 제33주일. 공소예절에는 우리집 1,2층 식구 4명이 전부였다. 함양본당 주임 신부님도 5명 이상이 안 나오면 매달 셋째주일 공소미사에 안 오시겠다 했다니 머잖아 공소 예절도 모이는 교우 다섯 이하면 그만 두고 읍내 성당 미사에 가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교회력의 한 해가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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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엔 간만에 미루가 휴천재에 놀러 왔다.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고 산청으로 공장을 옮기고 그미에게 지워진 일이 서너 배로 늘었는데 늘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고맙다. 본인 말대로, 몸이야 힘들지만 지리산이라는 대자연이 주는 위로와 평화가 그 모든 고생을 덮고 남는단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진짜 오너로서의 자질이다. 기특하게도 작은아들 안셀모가 '팔보효소' 가업을 잇겠다고 내려와 있어 남다르다.


'귀요미'만 보면 입이 벌어지는 보스코가 오늘 저녁식사 후에는 내 망가진 손을 가엽게 여겨 마늘도 까주었다. '가사를 돌보는 틈틈이' 대교부 아우구스티누스를 번역하는 학자로서의 소명이라나?


홋이불 빨 적마다 보스코가 함께 당겨 접어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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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를 수술해서 마늘을 못 까는 아내를 대신해서 '가사를 돌보는 틈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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