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30일 일요일. 맑음


봄에 아름다운 유채꽃을 보려면 9월 중에 씨앗을 뿌려야 한다. 걔도 어느 정도 커서 추위를 이겨낼 몸피를 만들어야 눈 속에서도 버티는데, ‘이제사 심어도 될까?’ 망서리다 매해 휴천재 텃밭 가에서 노랗게 봄바람 춤을 추던 그 처녀가 그리워 늦게라도 씨를 뿌렸다. ‘이제는 농사고 뭐고 다 싫어!’라고 선언할 때 보스코가 '두고 봐!' 했는데, 그의 수술이 내게 준 충격에서 벗어나자 차츰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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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해바라기 심었던 자리에 마른 해바라기대를 뽑아내고서 호미로 파고 퇴비를 섞고 흙을 돋아올려 이랑을 만들었다. 씨앗을 뿌렸다. 날씨가 너무 가물어 물뿌리개로 물을 두어 번 뿌려주었다. 봉지에 남은 씨앗은 배나무 옆 가장자리에 마저 뿌렸다. 푸른 잎이 없는 초봄에 우리들의 애물단지 물까치가 푸른 잎을 모조리 따 먹는데도 불쌍한 유채꽃은 변함없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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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 2시에 미루네 공장에서 지리산종교연대모임이 열렸다. 예전에 오신부님이 계실 때는 성심원에서 자주 모임을 주관했는데, 요즘은 주로 실상사에서만 모임을 갖다보니, 사실 가톨릭 신자로 미안하고 염치가 없었다. 고맙게도 우리 미루가 멋진 차담상(茶談床)을 차려 모임을 주관하니 내가 조금은 빚을 던 기분이다.


회원들의 나이가 많아지며 시골살이의 제일 큰 문제가 몸이 망가지니 병원 문제가 제일 심각하다는 얘기에 목사님 한 분의 답이 명답이 나왔다. “부러지거나 고칠 수 있는 병은 병원 가까운 함양이나 진주로 가고 심장이나 뇌 같은 병은 큰 병원이 있는 먼 데로 가야 한다.” 그런데 그숨은 이유가 기막혔다. ‘나이 든 사람 그렇게 먼 길 가다 재수좋게 죽을 수도 있다!’ 회원들의 선각자적 의식은 모두가 웰빙에서 웰다잉(well-dying)’으로 건너가고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 얼굴을 보고 사회와 정치 그리고 환경문제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음에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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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엔 문섐부부의 초대를 받고 곡성엘 갔다. 보스코가 편평상피세포암을 무사히 수술하고 소생한데 대한 두 분의 환영잔치였다. 우리 부부의 지리산 살기에서 문화생활을 보살펴 주는 분들이다. 곡성의 폐교를 손질하여 문화공간으로 만든 미실란이란 곳에서 점심을 먹고 공선옥 작가의 북 토크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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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춥고 더운 우리집,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등을 읽노라면, 가난하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나누다 보면, 우리 모두 가진 것 없는 벌거숭이의 시대를 거쳐 왔음을 알 수 있다. “좋은 시절은 아무리 길어도 짧을 수밖에 없고 짧기 때문에 좋은 것이려니작가 말에 수긍이 간다. ‘에 대한 그미 추억은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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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표랑하던 예멘난민을 푸대접 하던 제주의 기억(특히 개신교 집단의 발광)이 아직도 뚜렷한 우리에게 우리마저 정서적 난민, 정치적 난민, 문화적 난민으로 머물고 있다는 한탄에 공감했다. 공작가는 거침없고 솔직담백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다. “당신은 자주도 이사를 다니던데 까닭이 뭐냐?”는 한 독자의 물음에 내 마음에 정처가 없어서라는 답변이 가슴에 와 닿았다. 작가나 시인이야말로 정처 없는 정신적 방랑자고 그래야 좋은 글이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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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일 아침 공소예절에 토마스2와 우리 부부 딱 3명이 참석했다. 보스코는 그래도 헤드빅 수녀님이 만드신 곳이니 몇 명이라도 공소는 유지해야 한다는 지론이지만, 나는 영성체도 못하는 터에, 20분 거리의 본당으로 합치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단 두세 사람이라도 한데 모여 기도하면 하느님이 들어주신다'는 믿음으로, 토마스2의 선창으로, 셋이서 예절을 올렸다


'세월호 사건'에 안 뒤지는, 젊은이들의 대형 압사 사고가 종일 마음을 무겁게 한다. 서울 이태원이라는 공간과 20대라는 희생자들의 연령대 때문에도 우리가 "문화적 난민"이라던 공작가의 어제 한 마디에 가슴이 아프고, 사태의 수습을 두고 '책임 운운 하지 말라!'는 보수층의 목소리에서는 우리 모두가 "정치적 난민"임을 실감한다.


젊은 보스코의, 젊은 엄마들과 함께 드리는 로사리오(영광의 신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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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간 밀어 놓은 일로 하루가 정신없이 바빴다. 휴천재 입구 아치에 올라간 덩굴장미를 정리하여 능소화가 아치를 차지하게 손질했다. 나는 드물댁이 올라와 토란을 캐고, 텃밭에 물을 주었다


올해는 (보스코의 수술로) 대추 수확 시기를 놓쳐 열매가 모두 땅에 떨어졌다. 쌀푸대에 쓸어 담으니 무려 세 푸대. 보스코가 남호리에 가져가 마른 대추를 흩뿌렸다. 그곳에 대추나무 싹이 나면 대추밭을 만들 꿈에 무수한 대추를 뿌렸으니 몇 개라도 싹 터 오르겠지나는 호도나무와 체리나무, 엄나무, 밤나무를 감아오르는 칡, 나팔꽃, 환삼덩굴을 낫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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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성하지 않은 몸이지만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나니 기분이 좋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해서 처리를 하고 마른 풀과 나뭇가지는 태웠다. 보스코는 오늘도 8시경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숙제로 책을 읽어야 한다. 눈이 반쯤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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