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0, 맑음


큰아들이 한국에 오면 제네바에 가져갈 물건들이 매일 택배로 도착한다. 그런데 택배가 오면 왔다는 기별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아무 소리 없이 대문 앞에 놓고 가니 밤을 새운 물건을 아침에 만나기도 한다. 정말 한국 사람들의 양심지수가 높아진 건지, 살만해져서 남의 것은 거들떠보지 않는지, 골목마다 깔려있는 CCTV 덕분인지, 결과적으로 택배온 상품이 손 타지 않고 그 자리에 놓여 있다가 주인의 손에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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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보스코 수술 후 달포 만에 검진을 받으러 보훈병원에 갔다. 주치의는 수술경과가 좋고 폐에 물도 많이 빠졌지만 아직도 심호흡을 열심히 해야 폐가 다 마른단다. 잘라낸 폐의 조각사진은 어제 사다먹은 순대 속 허파 같아서 어깨가 움찔했다. 그래도 임파선 20곳을 검사했는데 아무 이상 없다는 말은 고마워 진단결과를 가까운 지인들에게 알려주었다.


오늘 아침에 빵기와 보스코가 서로의 명의가 바뀐 핸드폰을 바로 잡으러 SKT센터에 갔다. 이름이 뒤바뀌니 여러 일로 인증받는 일이나 본인 확인을 요구할 때 여간 불편하지 않다. 실생활에 편리할 줄만 알았던 기계가 족쇄가 되는 게 도무지 맘에 안 든다. 앞으로 저런 기계에 얼마나 매이게 되고 이번 카카오 화재처럼 얼마나 큰일을 치러야 할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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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레시오회 선교사로 와서(1964) 젊은 날을 보냈고 한국 살레시오회 관구장(1978~84)을 역임하고 로마 살레시오회 최고평의원과 부총장(1984~2003)까지 하시다 당신 조국 벨기에 겐트 교구의 교구장(2004~2018)으로 계셨던 윤선규 주교님(Luc van Looy)이 5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셨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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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과는 인연이 깊은 은인. 1979년 보스코와 찬성이 서방님이 남산 안기부에 끌려 갔을 적에 한국 주교님들의 항의 서명을 받아내어 김재규 안기부장이 보스코 형제를 석방시키게 해주셨다.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보스코의 울분이 극도에 달하자 그에게 로마유학을 주선한 분도 윤신부님이었고, 로마 유학 기간(1981~1986)에 독일주교회의 미씨오(Missio) 장학감을 받게 주선해 준 것도 그분이었다


1997~98년 보스코의 안식년 기간에 로마 카타콤바에 우리 살집을 마련해 주신 것도 그분이니 보스코보다 한 살 많은 친구면서도 평생의 은인. 심지어 빵기의 파리 유학생활까지 주선해 주셨고 10년전 우리 작은아들 빵고의 사제서품을 주례하셨으니 우리 집안은 대를 이어 그분의 은혜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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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커다란 키와 아코디온 연주는 살레시안을 아는 모든 교우들이 기억하고 있다. 한국을 떠나신지 수십년 되는데도 완벽한 우리말을 구사하여 우리를 놀라게 했다(그분은 청년시절 한국 선교사로 오자마자 외국인 한국어웅변대회에서 우승한 분이기도 하다).


오늘 빵고신부가 있는 관구관으로 윤주교님과 인사를 나누러 갔었고,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때 빵기의 굿네이버스현지 활동을 도와준 체코인 현명한 신부님(1996~ 2002 한국 살레시오회 관구장)도 와 계셔서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나누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 부부는 인간관계를 통하여 하느님 구원의 역사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피부로 체험했다.


5년전 윤주교님 한국 방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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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살레시오 관구관에서 윤주교님, 현신부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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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경세원을 방문하여 몇 가지를 의논했다. 보스코의 라틴어 교재 라틴어 첫걸음고급 라틴어, 라틴어 번역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단테의 제정론(帝政論), 피코의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을 출판했으며, 무엇보다도 보스코의 은퇴기념논문집 사랑만이 진리를 깨닫게 한다』(2007)를 출판해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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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젊은 엄마들과 함께 드리는 로사리오 (고통의 신비 4) 

"모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어라!"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79847

다섯 시에는 탄현 하늘나라 공원묘지에 가서 오늘 37년 기일을 맞으신 친정아버지께 성묘를 드렸다. 우리 4남매 부부가 아버지가 누워계신 무덤가에서 찬송과 기도로 아버지를 기억하고 아버지는 묘역에 가득 떨어뜨리신 밤알로 우리에게 화답하시는 평화로운 성묘였다. 아버지를 기리며 형제간 친목을 도모하는 저녁식사 시간에는 우리 어린 시절을 파노라마처럼 추억하는 흐뭇한 즐거움을 가졌다. 보스코의 무난한 수술결과를 우리 가족이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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