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1일 화요일. 맑은 가을 하늘


아침부터 서두른 이불 빨래가 바람결에 오후가 넘어도 잘 마르지를 않는다, 맑은 이 가을날에! "해가 기운이 없어 빨래를 제대로 못 말리네여!"라며 진이엄마가 한탄한다. 하기야 어제 지리산 노고단에는 첫눈이 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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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비가 오는 듯 마는듯 하면서 바람이 심하게 불고 곧 겨울이 일찍 닥치리라는 경고를 날렸다. 그제밤처럼 바람이 3층 계단의 풍경을 심하게 두드리면 아무리 따스운 이불 속에서도 추운 꿈을 꾼다. 고향이 열대거나 아열대인 꽃들이 집 밖에서 떨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한 가득하기 때문이다


보스코는 지금도 아침 저녁 약을 한 주먹 씩 먹지만 눈에 뜨이게 기운을 되찾아가고 책상 앞에서 다시 아우구스티누스와 씨름하며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저녁 산보도 여간해선 거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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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눈을 뜨면서 보스코에게 부엌 창밖에서 여름을 난 포인세티아와 식당 창문 앞 화단의 부감베리아를 들여놓자고 했다. 추위를 타는 포인세티아는 큰 화분 네 개와 작은 화분 세 개인데 여름을 지내며 열심히 자라서 크기가 어섯비슷하다. 화분을 손질하여 해가 안 드는 집안 그늘에 들여놓았다. 열흘 후에 서울에서 돌아와서 해를 보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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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감베리아는 화분이 너무 크고 화분 밑으로 뿌리를 길게 뻗어내려 보스코가 삽으로 화분째 들어 올리고 나는 화분을 흔들어 뽑았다. 휴천재 식당채에 들여놓고 가지를 잡아주었으니 겨울 내내 우리 식당을 화려하게 장식해주리라.


오늘은 보스코와 밀차를 끌고 밭에 내려가 거름흙을 퍼왔다. 10년 전 잉구씨가 소 키울 적에 소똥을 한 트럭 실어다 텃밭 가에 부어 주었고 나는 유림 기름집에서 얻어온 들깻묵과 섞어서 발효시켜 놓은 거름이라서 내 눈에도 맛나 보인다. 휴천재 데크 밑에서 여름을 난 40여개 화분들에 윗쪽의 흙을 걷어내고 새 거름흙으로 채워주고 영양제(유박)를 가장자리에 한 숫갈씩 넣어주는 일이 겨울채비 분갈이에 해당한다.


부감베리아 겨울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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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째 심겨졌다 화분째 뽑혀나와 묵은 흙을 덜어내고 새 거름흙을 덮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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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통해 식당채로 들여 늘어진 가지들을 고춧대로 묶어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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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물만 줘도 식당채 주인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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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꽃이 한창인 히비스커스 두 그루를 아래층 해가 잘 드는 곳으로 들였다. 아무리 '꽃과 나비'라지만 나비가 히비스커스 이파리에 쉬쓸어 놓은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들이 이파리를 거의 다 갉아먹어 앙상한 가지에 붉은 꽃만 피우고 있는 모습은 늙은 여인 빈 젖가슴 같다. 해피블루도 기온이 내려가며 꽃과 앞을 떨어뜨리고 있어 오늘 오후에 집안으로 들였다. 제라늄은 오늘 화분을 손질했지만 영상 5도 쯤에 꽃눈이 생긴다 하니 서울 다녀와서 집안에 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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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구씨가 영수씨랑 휴천재 식당채 옆에 내 새 차의 주차 지붕을 해준다고 쇠기둥을 세우고 콘크리트를 쳤다. 열심히 일하는 장정들이 고마워 마천 '강쇠네집'에 가서 '괴기'를 사줬다. 영수씨네집 지붕이 산다며 고치던 주열씨도 함께 합석했다


영수씨는 부인이 엊그제 테라스에서 넘어져 수술한 허리를 다시 다쳐 진주 혜란병원에 입원했다고 들려준다. 아픈 허리에도 쉴새없이 밭일을 하는 부인에게 내가 "일 좀 그만해요!" 하면 "그럼 일 않고 뭘 하노?"라고 대꾸하곤 했다. 허리가 기역 자로 꺾인 동네 아낙들의 한결 같은 대답이요, 무릎 통증을 탓하며 '지리산 가면 밭일 않겠다!' 다짐하던 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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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밥상에서 소맥 몇 잔에, '여자 없이 사는 일이 얼마나 불편한지' 열변을 토하던 영수씨, 아내 없는 남자에게는 애도를 표하노라면서(지리산에는 '산이 그렇게 좋으면 혼자 가서 사세요!'라는 생이별을 당하고 혼자 사는 사내들이 의외로 많다, 남자들이 더 자연친화적이어설까?) 아내 있는 남자들에게는 "있을 때 잘하라!"'며 한참 낭만주의자 티를 내더니 식당 안사장에게는 "우리 마누래 지금 집에 없어. 알아?"라며 농을 건다. 눈을 동그랗게 뜬 안사장이 "그래서 어쩌라고?" 되받으며 눈을 흘긴다.


하기야 이런 농담이 통하는 까닭이 이 골짝 사는 남녀노소가 모두 문정초등학교를 함께 나온 동문들이어서다. 그곳은 유치원부터 폐교될 무렵 생긴 중학교까지 수십 년 간 한 학년에 한 반만 있었다. 여름 캠프를 해도 유치원부터 중학생까지 뒤섞여 한 그룹 나눠 함께 지내게 하고, 10년 넘게 그렇게 지내다 보면 누나 동생 형 오빠로 다 엮어지는 바람에 자기가 여잔지 남잔지도 잊게 된다.  보스코야 '엄마보다 더 무서운' 엄처시하여서 저런 농짓거리를 엄두도 못 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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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일며 무 뿌리도 굵어지고 배추는 속을 채우며 호박도 담장에 조랑조랑 열려 가을 햇볕을 쬐고 있다. 드물댁이 자기네 한 평 밭에 쪽파랑 심었던 고구마가 뿌리는 단 한 개도 안 달렸는데 줄기는 실해서 까왔다고 봉지를 내민다. 까는 수고에 비해 먹을 게 그렇게 가성비는 좋지 않아 '고구마 줄거리 안 까 먹겠다' 했더니 그미의 투박한 손으로 곱게도 까왔다.


추위를 많이 타는 화분을 집안에 들이고 난 저녁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더 세졌지만 내 등짝에 따뜻한 느낌이 든다. 호박꽂이와 사과를 말려 봉지에 담고, 빵을 구워 식혀서 썰어 가슴에 안고 2층으로 올라오는 마음 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휴천재 이부자리도 오늘 겨울 모드로 갈았으니 잠자리도 한결 포근할 게다. 


보스코가 젊은 엄마들과 함께 드리는 로사리오 (환희의 신비 4)

"하느님의 탈출"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7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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