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4일 화요일. 비온 뒤 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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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2022에서 1973을 빼면 얼마지?” “49. 그런데 왜?” “그러면 내년이 50이겠네?” 103일이 무슨 날인지 기억도 못하는 사람에게 빼기 셈본을 가르쳐도 답이 안 나온다. “우리 내일 변산반도 갈까요? 하기야 당신이 아직 회복이 안되어 그건 안 되겠네.” 저 여자가 왜 셈본을 하나 한참 갸우뚱하던 보스코가 무릎을 친다. "맞아, 당신 결혼기념일이구나!" 이번이 50주년 금혼식이었더라면 참으로 난감했으리라는 그의 표정이 토끼 용궁에 갔다온 안도감을 담고 있다. (부안 변산반도는 우리 가난한 부부가 그곳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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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 신부님들이 차려주신 은혼식 잔치 (1998.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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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신랑이던 성염과는 아무 상관 없는 전순란의 결혼기념일이라니! 아아, 저렇게 무딘 남자와 50여 년을 살아왔으니 결혼기념일을 축하받을 틈이 있었겠는가! 딱 한번 있었다. 로마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1998103, 산칼리스토 카타콤바에 사무소(CNOS-FAP: 비정규 중등학교 교육을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기관)를 둔 살레시오 신부님들이 프라스카티의 멋진 식당에 데리고 가서  우리 결혼 은경축을 축하해주셨다. 아침 축하 미사까지 곁들여서! 오스티아 사는 도메니코와 카르멜라 부부와 로마에 다니러 왔던 우리 가족 치과주치의 곽선생 자매까지 초대한 잔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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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결혼 49주년을 겨우 남편에게 깨우쳐준 결과 103일에는 막내딸 꼬맹이네부부도 왔으니까 서해안 변산반도에 함께 놀러가자는 여행계획이 짜졌다. 그런데 엽렵한 세째딸 미루가 102일과 3일의 전국 고속도로가 온통 시뻘건 주차장을 이루고 있으니 다리 아픈 어무이’가 부안까지 오가는 운전도 무리고, 수술 회복 중인 아부이도 무리한 여행이니 뱀사골이나 가서 살살 걷다 맛난 것이나 잡숫고 오세요라고 교통정리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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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밤 늦게까지 환담하느라 늦잠을 자고 어제(3) 아침을 걸게 먹고는 느긋하게 11시가 다 되어 두 부부가 집을 나섰다. 뱀사골은 휴천재에서 차로 20분 거리. 뱀사골에 도착하여 교우가 하는 뱀사골식당에 점심(능이버섯 토종닭)을 주문하고서 골짜기를 걸었다. 하이힐 신고서도 갈 수 있고 휠체어로도 갈 수 있는 데크 길을 걸어 요룡대까지 산행을 하였다(평소라면 '천년송' 있는 '와운마을'까지 간다)


연휴엔 사람들이 고속도로에 몰려 시간을 보내는지 지리산 속은 의외로 한가했다. 마악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갈나무들, 바닥이 검푸르게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 뼛속까지 마알간 물고기들, 수다스런 새소리를 들으면서 나랑 꼬맹이는 할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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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꼬맹이엄엘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나를 너무 닮았다고 깜짝깜짝 놀란다. 아침상에서 계란 먹는다며 죽염을 너무 많이 퍼 놓은 아부이 접시에서 죽염을 도로 퍼가는 짓이라든가, 아부이 안경 더럽다고 벗겨서 닦아준다거나, 자기 동네에서 쓰레기 함부로 버리던 통장을 찾아내 혼내준 얘기라든가... 엄엘리의 언행을 보고 있으면 정말 나랑 비슷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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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이엘리, ‘순둥이오드리 될뻔, ‘귀요미미루, ‘꼬맹이엄엘리 이렇게 넷에게서 나를 닮은 모습이 골고루 나누어져 나타나 눈에 띨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기쁨! 우리 다섯이 진짜보다 더 진짜인 모녀지간임이 확인되곤 한다.


뱀사골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 꼬맹이네는 휴천재 텃밭의 채소를 뜯어 시골 이바지로 챙겨 평택에 사무실을 둔 남편 조서방 숙소로 떠났다. 소중한 연휴를 아부이 병문안으로 내려와 쉬지도 못하고 돌아간 그들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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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부터 비가 내렸다. 서울엔 그제부터 장마비처럼 내렸다는데, 휴천재에는 마당에 잔디는 다 말라버리고 밭에 채소도 목말라 헐떡이는던 참에 내리니 약비. 텃밭의 무배추는 물론이고 누렇게 떠가던 부추가 파란색을 되찾았다. 이번 비가 내리고 난 뒤 기온이 급강하한다 니 열대식물인 부감비와 포인세티아는 금주 중에 집안에 들여놓아야겠다.


저녁에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해서 학교 앞에 내놓고 왔다. 비닐, 유리병, 플라스틱, 스티로폼, ... 모아 놓은 봉지만도 한 차 된다. 휴천재 한 집의 쓰레기가 이리 많으니 참 버리면서도 미안하고 답답하다. 다이옥신이 나오니 쓰레기를 태우지 말라는 방송이 끊이지 않건만 주민들은 플라스틱까지 모조리 태워버린다


하나밖에 없는 지구 살리기를 생각하며 가을꽃으로 익어가는 감들이 집집마다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길을 산보하면서 '인류가 싹 사라져야만 지구의 몸살도 끝날 듯하다'는 환경운동가들의 탄식과 지구 살리기에 바치는 그들의 헌신에 오로지 감사할 따름이다.


로사리오 성월이다. 보스코의 묵상(젊은 엄마들과 함께 드리는 로사리오)을 

한 꼭지씩 실어본다. 첫 꼭지는 “눈들이 비단 안개에 둘리울 때”(환희의 신비 1)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7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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