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15일 목요일. 흐림


그가 큰맘 먹고 산보를 가잔다. 대풍이네집 쪽으로 도는 건 한두 번 했는데, ‘완성빌라 다동을 지나 봉수네 집터에 높이 지어진 연립 밑으로 약초원길로 내려가서 되돌아오잔다. 가다 보니 완성빌라 다동은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 현재 건물을 헐고 5층으로 재건축한다고 천막을 두르고 철거를 시작하고 있다.


그 골목길부터 우이경전철 다니는 우이천까지를 오세훈씨가 대단지 모아주택단지로 건축 해준다고 공약했다고, 심지어 아파트촌이 결재났다고 소문났는데 정작 주민들은 각자도생 중인 것 같고 같은 구역 여기저기에 연립주택들을 신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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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도 한참 공공주택 3080’을 한다고 헌집을 주면 두꺼비가 새집을 공짜로 지어준다며 온 주민들이 들떠서 동의했고, (이런 사업일수록 신중을 기하자는) 일부 주민들에게는 가난한 서민들 모처럼 아파트꿈을 망친다며 온갖 협박과 욕설을 퍼부었는데 대통령 바뀌자마자 빵반죽 꺼지듯 조용해지고 말았다. 나이 먹은 주민들은 내 생전 들어가 살지도 못하고 아파트 지어서 입주하려고 쌩돈 마련하다 인생망치겠다는 우려를 꺼내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가 살고 있는 한, 내 집이 5억 가든 10억 가든, 집 팔아 까먹을 일 아니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정권까지 철부지 집단에 넘어가게 만든 아파트 가격상승에 모든 것을 걸던 강남부자들은 요즘 아파트가격 하락에 어떤 심경일까? 인간의 욕심이 언제나 화를 부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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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대 약초원쪽 담에는 나팔꽃과 자잘한 꽃들이 철망을 타고 기어오르면서 가을이 오기 전 한 낯 더위에 열매를 영그느라 분투중이다. 씀바귀꽃에는 파린지 벌인지 정체모를 벌레가 꽃가루를 양발에 뭉쳐가면서 가을걷이를 한다


오랜 병을 앓고 나면 세상이 너무 밝아 눈부시듯, 나팔꽃 울타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보스코의 눈에도 시린 기색이 역력하다. 아이들은 한번 앓을 적마다 훌쩍 자라고 노인들은 한번 앓을 적마다 부쩍 꺾인다.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면 새벽 한두 시 경 깨어 그가 몸을 뒤튼다. 그 시각에 신체의 통각이 가장 섬세하게 머리를 드는 것 같다. 다시 잠이 들어도 간간이 헛소린지 신음인지 모를 말 마디가 그의 입술에서 튀어나온다. 팔순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저 '엄마'라는 소리는 원초적인 부름 같아서 그의 등을 토닥이면 다시 편안한 얼굴로 돌아간다. 모든 사내는 아내의 품에서 숨을 거두며 엄마를 느낄 때 행복해 지려니 짐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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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대: 친정 부모님 약혼사진과 우리 부부 중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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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두 번째 격리 기간 중 보스코와 격리하느라 1,2층을 오르내리며 무릎이 더 망가졌는지 몹시 절둑거려 오늘은 '서울봄연합의원'에 가서 보스코랑 영양제를 같이 맞고 무릎에 연골주사도 맞았다. 보스코의 입원 수술과 퇴원 돌봄으로 보름 넘게 밤잠을 설쳐선지 내 몰골을 보고 엊그제 큰딸이 탄식했다. “전에는 어무이도 내 또래라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완죤 할머니네.” 한 집에 우환이 생기면 모든 일상이 사라지면서 우리가 누렸던 건강한 나날이 얼마나 고마운 은혜였던가를 새삼 느낀다.


서광빌라가동앞에 동네 아짐들 대여섯이 담소하다 나를 보고서 지리산 농사는 어찌되었나?” 묻는다. 그렇게나 정성들이던 농사일을 지난 한 달 내가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게 놀랍다. 거기 앉아 있던 미장원아줌마가 나를 쳐다보며 알듯말듯하다는 표정이다.요즘 주간보호 치매유치원 수강중이라는 주변 얘기다. 수십 년을 가까이 지낸 이웃이 뿌연 백지로 가려지는 기억의 저편이 본인에게는 얼마나 답답할까? “나 빵기 엄마예요.” 라고 하자 맞아, 빵기엄마였군.” 한다. 좀 어색했는지 아이고, 여전히 날씬하고 예쁘네.”라고 덕담을 보탠다. 그런 답답한 심경을 이웃에 사시는 임보 시인은 차라리 해탈(解脫)’이라고 이름 지었다.


보스코가 짬짬이  '아우구스티누스 작업'을 다시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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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내 속이 텅 비어간다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

보았던 고장의 산하들이 있었던 자리가 휑하니 비어간다.
이러다가 본의 아니게 해탈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염불도 모르는 내가 어떻게 탈속하여 생불이 되려는 모양인가?
절도 없는데 이 부처를 어디에 모신단 말인가?
참 답답 하다
.(임보 시인의 해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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