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13일 화요일. 흐림


추석인데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섭섭하지도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보스코는 밤새 가슴에 오는 압통으로 잠을 못 이루다 아침 식사 후에 한 시간 가량 자고 점심 후에 한 시간 쯤 다시 자곤 한다. 흔들의자에 앉는 자세가 재일 편하다며 양팔을 웅크린 채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잠든 그에게 얇은 담요를 목까지 끌어 덮어주고 곁에 앉아 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는 여러 해 전부터 유난히 숨이 짧아 할딱거린다는 느낌을 주어왔는데, 그가 아파서 그의 숨결이 그랬으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밤에 잘 때 무호흡이 심하다며 밤새 양압기 착용을 처방한 은평성모병원 담당의는 지난 3년반 석달마다 찾아가 양압기 처방을 다시 받게 하면서도 한번도 보스코의 흉부 엑스레이를 찍지 않았다.


[크기변환]20220912_141731.jpg


더군다나 작년에 필립스 양압기를 전세계적으로 리콜하고 보스코가 쓰던 기기마저 회수해가면서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 회사 양압기에서 발암물질이 나올 수 있다는 이유였는데 담당의 편에서 양압기의 취약성에 대해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으려니와, 작년초 양압기 리콜 때에 발암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보스코의 흉부 엑스레이 촬영도 지시하지 않았다.


평생 술담배도 안 했고 공기 좋은 지리산 그 청정지역에서 수십년 살아온 그가 폐암이라니 주변에서는 대부분 의아해 했었다. 지난 봄 건강보험 정기 검진을 맡았던 우이동 서울연합봄의원원장이 엑스레이를 보여주며 의심스럽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고 지난 8월 보훈병원 흉부외과 검진에서 발견되고 서둘러 수술해 줘서 다행이다.


[크기변환]Screenshot_20220913-180142_Facebook(1).jpg


보스코가 아파 누우면 내가 제일 화급히 찾는 분이 우리 어머님이다. 어쩐지 그분이라면 중1짜리 큰아들에게 모든 동생들을 맡기고 눈을 감으시면서 오냐, 내가 하늘나라에서 지켜주마.” 다짐하신 것 같다. 지난 50년 결혼생활 중 무슨 외적인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나는 어머니, 당신이 알아서 챙겨주세요!” 라고 떼쓰듯 매달려 왔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96

과연 보스코의 외사촌(막내외삼촌의 막내아들)이 3년 전 보스코의 심장을 고쳤고 이번에도 폐수술을 맡아준 사실로 미루어 어머님이 당신 친정 사람들을 시켜 우리를 보살피신다는 확신은 여전히 품을 만하다. (심지어 보는 사람들 가운데는 우리 시어머님 사정을 전혀 모르고서도 "그 집 큰며느리 시어머니가 무척 애지중지하셔!"라는 점괴를 전해준 두 동서나 , 해마다 섬으로 돌며 아낙들 신수를 봐주었노라는 문정 잉구 모친처럼 "당신, 시어머니가  어지간히 당신 끼고 도는 거 알아?"하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크기변환]20220912_161607.jpg


어제는 추석의 대체 휴일로 추석연휴 마지막 날. 큰딸 이엘리와 꼬맹이 엄엘리가 집까지 찾아왔다. 힘없이 쳐져 있던 보스코의 얼굴에 생기가 확 돈다. 때마침 우리 식구가 한데 모인 그  자리에 주치의의 전화가 왔다. “전이 현상 없다!” 그 소식에서 모두 환성을 올렸다. 멀리서 날마다 화상통화로 아이들과 아들 며느리의 얼굴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효성을 다하던 큰아들도, 하루에도 몇번씩 나에게 전화해서 아빠의 근황을 묻던 빵고신부도 이 소식에 모두 희색이 돌았다


[크기변환]Screenshot_20220913-180237_Facebook.jpg


멀리 로마에서 가르치거나 공부하는 살레시오 수녀님들도 추석맞이로 한데 모임 자리에서 보스코에게 육성메시지와 사진을 보내오면서 쾌유를 빌어주었다딸 넷이 하루도 빠짐없이 안부를 묻고 있으니 "관심받고 있는 한 아프지 말아야지결심하고 이젠 그만 툭툭 털고 일어나서 화답을 보낼 차례다.


오늘은 내 무릎이 아파 박순용정형외과에 갔다. 명절연휴 뒤라서 환자도 많다. 무릎에는 내가 그렇게 기피하는 비싼 주사를 한 방 맞아야 했다, 보스코를 병구완하려면 나는 아플 자격이 없으니까. 오후에는 보스코 주치의의 권유대로, 솔밭의 서울봄연합의원에 가서 영양주사를 맞게 했다. 그가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는 시각, 나는 비가 한두 방울 지는 솔밭공원을 거닐었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4078 

한때 그렇게 열정적으로 이 솔밭을 지켜내려고 함께 애쓰던 친구 김말람 생각이 많이 났다. 60을 겨우 넘기고 먼 길을 떠난 친구, 그 별에서도 환경운동 하느라 애쓰고 있을까? 사람들은 가고 우리가 싸워 이룬 업적들은 잊혀져도 그 혜택을 누리는 후손들이 행복하다는 것만으로도 하느님 옆에서 흐뭇한 웃음을 지으리라 본다. 사회운동 함께 하다 먼저 떠난 친구들이 유난히 보고 싶다.


[크기변환]Screenshot_20220913-180155_Facebook.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