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11일 일요일. 맑음


오늘 일요일 밤 12시로 나의 '코로나 자가 격리'가 끝난다. 몸 상태를 점검하자면 아무렇지도 않는 '무증상'이다. 아무래도 그날 검사 중에 앞사람이나 뒷사람과 검사결과가 뒤바뀐듯하다. 목이 약간 간질하고 기침이 나오는 건 겨울이면 건조 하거나 먼지가 목을 건드리면 늘 하던 것이니 꼭 코로나의 행패로 단정지을 순 없다. 열도, 몸살도 없고 입맛도 정상이고 냄새도 잘 맡는다하지만 나의 코로나 확진 덕분에 보스코가 퇴원해서 집에 있는 동안 곁에서 착실히 돌보는 일에  올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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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수술 후 처음 며칠은 수술 후유증인지 머릿속의 회로가 고장 났는지, 모든 음식이 달게 느껴져 구역질 난다며 음식을 거의 못 먹었다. 그러다 퇴원하자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오늘부터는 입속전체가 단맛에서 쓴맛으로 바뀌었단다(그래도 단맛 보다는 낫다나). 큰 병을 치르거나 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모든 것이 쓰다."거나 "입맛 없어 도저히 못 먹겠다."는 탄식을 하는데 일단 공통된 쓴맛으로 돌아온 것 같다. 내 보기에 그의 위장 하나는 정말 튼튼해서 2~3주 지나면 그의 미각이 정상으로, 하루 다섯 끼를 뚝딱 해치우는 입맛으로 돌아오리라 본다


연인간 사별의 상처도 처음엔 세상 끝난 듯이 몸부림치지만 세월의 너그러운 손길에 잊혀지고 치유되지 않던가? 하물며 내 몸속에서 나쁜 걸 도려낸 참이니 처음엔 유기체 전체가 충격 받고 놀랐겠지만 시간이 가면서 몸은 스스로 치유를 하고, (위장을 들어내도 12지장이 위 노릇을 하듯이, 잘라낸 기관도 다른 기관이 대신하게 적응하면서 사람은 살아가게 창조주께 설계되어 있다보스코도 간간이 이층 테라스를 오가는 걸음으로 운동을 대신하더니 오늘은 동네를 반바퀴 돌고 왔다. 식사 양이 차츰 느니까 힘들지 않다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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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말에는 우리 며늘아기 지선이의 외할머니 초상이 있었다. 문상 전화를 드리니 사부인께서는 당신 모친께 대한 깊은 애정을 들려주셨다. 큰집 아이들 여덟, 당신 자식들 일곱을 한꺼번에 거두어 키우신 헌신, 99세의 평생을 두고 마지막 한 달 전까지도 일기를 쓰시던 지성, 돈독한 가톨릭 신앙.... 신앙도 살림도 집안을 건사하는 아량도 대개 모계혈통으로 내려오는 법이니 우리 며느리의 대지 같이 든든한 맘씨가 외할머니에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심성임을 다시 알겠다. 


어제의 추석 명절은 그야말로 수십 년 만에 단둘이서 오붓하게 보냈다. 둘 다 상대방의 현존만으로 풍족할 대로 풍족하니 누가 오지 않는다고 외로울 틈이 없다. 큰 명절인데도 엄마의 자가격리 때문에 '본가방문'을 못 온 빵고신부가 걸려 미안해 했더니 "엄마, 관구관 식구 중에 3분에 2는 집에 안 가고 함께 지내니 그런 염려는 접으세요." 한다. 출가(出家)를 했으니 수도원이 자기 집이 된 게 오래 전부터다. 그리고 늙으신 어머니나마 모친이 살아계셔야 본가가 아직도 집이다. 


보스코에게 차려준 추석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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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휴천재에서 시댁 3형제의 추석을 지내던 풍습이 맏이 보스코의 수술로 수십년 만에 중단되었다. 각자가 아들 며늘 손주들과 추석을 쇘다. 광주 방림동 어머니의 산소 성묘도 찬성이 서방님네 가족이 대표로 했다. 우리 친정 식구들은 호천네 집에 모여 조상님을 위한 예배와 식사를 하고, 아버지 산소에 가서 성묘한 사진을 내게 보내왔다. 가을에는 가족납골묘를 만들어 유무상통 '하늘문'에 계시는 엄마를 모셔 와서 아버지와 합장 해드리겠단다. 그러고 나면 2002년부터 20년을 계신 미리내 유무상통 실버타운의 흔적은 우리한테서도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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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찾아갈 때 이승도 저승도 마음의 끈으로 이어지는 법. 한때 일어난 생생한 사건들이 까마득히 묻혀져 갈 때, 미련이 많아선지, 나는 묵직한 아픔을 느낀다. 엄마가 80을 막 넘겼을 때 미리내에서 그토록 활기차고 자존감 넘치던 모습, 해가 갈수록 점차 시들어가던 얼굴들, 매사에 빙그레 웃기만 하고 좋다싫다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시던 의존과 의탁의 시간! 그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고 평안한 얼굴로 마지막 숨을 거두어 떠나시던 뒷모습까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상옥씨가 오랜만에 추석 인사차 전화를 했다. 당뇨여서 백신접종을 안 했는데 코로나에 걸렸고, 백신접종을 안 했다고 이곳저곳에서 구박을 받느라 심한 고생을 했단다. 그런데 그미가 전해준 너무너무 슬픈 이야기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80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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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의 친구 김복덕 체칠리아씨가 지난 3월 말기폐암으로 발견되어 수술도 못하고 3개월은 치료하다, 나머지 3개월은 병상에서 지내다, 8월 말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고, 보스코가 수술받던 91일에 장례미사를 했단다. 이렇게 91일은 내 기억에서 잊히지 않을 날이 되었다. '복덕(福德)'이라는 이름 그대로 순박하고 따스하고 사랑스런 그녀와 마지막 걸었던 인사동과 북촌길 사진을 다시 보면서 "잘 가시오친구. 그곳에도 북촌길이 있을 테니 함께 다시 걸어봅시다." 빌었다.


보스코의 금주 주일복음 단상 :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084

오늘은 주일이지만 나는 격리로, 보스코는 와병으로 성당 미사에 못 나갔다. 연중 주간들이 끝나가는 계절이고 서울집 마당의 단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단감도 인생과 한 해의 가을걷이가 멀지 않음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서울집 맞은편 담벼락에서 익어가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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