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6일 화요일 맑음
9월 5일 새벽 몸에다 갖가지 줄과 통을 스크루지 영감처럼 주렁주렁 단 보스코가 하루 종일 지쳐 보호자용 침대에서 쪽잠을 자던 나를 깨운다. 지난 열흘간 금식과 약물처리로 변을 못 봐 어제 간호사가 좌약을 넣게 하고 물약을 먹게 했는데도 반응이 없던 대장이 한밤중에 한순간 폭발을 했나보다. 탈진한 그를 우선 샤워실에 데려가서 씻기고 새 입원복을 입혀 침대에 눕혔다. 다들 고단한 단잠에 빠져있어 아무도 기색을 못 차려서 우리 80 영감의 체면을 살렸다. 며칠 전 우리 맞은편 환자에게 일어났던 똑같은 사건이다. 입원실과 화장실 바닥을 청소하고 나니 나도 땀을 흠뻑 흘렸고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였다.
중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라 밤이면 깊이들 자고 있다. 우리 방 파월용사는 자기의 수술이나 치료비의 10%밖에 안 낸다고 자랑한다. 보훈병원이니까 국방이나 해외파병을 다녀온 분들에게 잘 해 드리는 건 당연하다. 엊그제도 (입원실을 나가) ‘박근혜지지’ 시위에도 다녀왔노라는 자랑도 서슴지 않는다. 새벽 5시면 일어나 세수를 하고 3:7로 머리를 빗고 모포와 이불을 각 지게 접어 한 켠에 쌓는다. 태그끼 아재답게 지하에 내려가 ㅈㅅ일보를 사다가 근엄한 표정으로 완독한다. 신념에 찬 모습이다.
안성에서 벼농사와 포도농사를 짓는다는 파월농부는 동맥류 수술로 20일을 입원을 하고 있자니 농사걱정으로 머리가 한 짐이다. 안 사람이 쪽파를 심었다는데 그것도 못 미덥고 태풍이 오는데 논물도 빼야 하고 포도 수확도 끝내야 한다며 걱정으로 몸을 뒤척인다. 휴천재 텃밭에도 드물댁이 배추를 심긴 했지만. 배는 진이네가 따 놓았은데 과일이 너무 잘고 물까치가 입질한 게 많은데다 가을우기로 단맛이 안 들었더란다. 이젠 주변에서 보스코의 배농사를 만류하며 봄에 배꽃이나 보라고 타이른다.
늘 그렇듯 사내 다섯이 한 군데 모이면 생인손 손가락 하나가 짚인다. 멀리 전라도에서 왔다는데 한 승질하여 간병인을 여럿 갈아 치워 지금은 곁에 아무도 없다. 환우 중 나이가 제일 젊은이로 우리 막내 동생과 같은 60대 초반인데 살아가야 할 날이 창창하거늘 신장투석에, 심한 당뇨에, 무릎까지 다리를 잘랐고 낼모래는 심장수술을 하러 대기중이란다.
‘어찌까이!’ 우리 방에 그가 입주한 첫날밤 새벽 2시 간호사를 불러 충전기를 찾아 달라자 ‘이런 일로 절 불렀어요?’라는 퉁명스러운 말에 냅다 소리를 지르기에, 내가 “여기 자는 사람도 있습니다.”라고 했더니 조용해졌다. 아침에 내가 말을 걸어 “충전은 해야 하는데 충전기를 못 찾아 얼마나 애가 탔어요?” 했더니 머쓱해한다. 충혈된 눈에 꺼벙한 머리, 도막난 다리... 너무 가엾어 다리를 만져주며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힘들었어요?”고 말을 건네자 핑 눈물이 돌며 “고마워요, 누나.”라고 나를 부른다. 참 많이 외로웠구나, 많이 힘들었구나, 하느님이 보시기에 우리도 다 저런 모습이겠지....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당신의 마음으로 받아드리게 해 주소서’ 비는 길밖에.
밤이면 그는 ‘섬망증의 현상’으로 밤새 잠꼬대를 하는데 마취와 수술의 후유증으로 보인다. 엊저녁에는 “저기 다섯, 이리와!”라던 그의 고함에, 남편에게 쥐어 살던 맞은편 침대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예, 여기 있어요!”라며 똑바로 일어서는 대답에 잠이 깨어 있던 나로서는 슬픈 쓴 웃음을 지어야 했다. 남편을 군대 고참으로 모시고 살아온 여인의 모습이었다.
사람이 올 리 없고 차분히 샤위마저 하고 나오는데 태풍으로 낮아진 기온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 담요 한 장으로 머리까지 덮었지만 추위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문제는 새벽에 혈압을 재러온 간호사에게 목이 아프고 감기 기운라니까 “간병인 구해 놓고 당장 집에 가 PCR검사 결과를 갖고 다시 오세요.” 란다. 큰일이다. 저 무거우 분비물통과 피 고이는 팩과 주렁주렁 달린 주사 줄을 끌고 여기저기를 오갈 보스코를 두고는 못 간다.
병원측에서도 매일 “X병동, 코드불루!”라는 암호를 외치며 코로나 확산 방지와 싸우는 판이어서 확진을 받으면 누구나 적으로 간주되는 분위기다. 폐암수술환자들이 들어찬 병동에서, 더구나 평균연령이 월남전참전용사급이어서 코로나는 큰 타격이다. 우선 지하 세븐일레븐에 내려가 간이 테스터를 사서 찍어보니 음성이다. 그걸 간호사에게 보여주고 병원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겠으며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병실밖에 안 나가겠다고 했다.
다행히 우리 주치의는 오늘 보스코 몸에 붙은 모든 호스들을 떼어내고 소독하고 수술 자국을 정성껏 소독하게 해 준 다음 우리 둘을 퇴원시켜 주었다. 빵고 신부가 마지막 컴퓨터 입력까지 완료하여 보훈병원 지하에 주차시켜 놓은 새 차 아반테에다 보스코와 퇴원가방들을 싣고 동부간선도로를 달려 맑게 갠 도봉산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오니 이만한 스위트홈이 세상이 없다. 보스코가 열흘만에 기운과 표정을 되찾았다.
진단과 수술과 퇴원까지 두 주 안에 이루어졌으니 얼마나 신속한 치병인가! 사람의 장기를 자르고 수리하고 꿰매고 고쳐서 가장과 직장과 자연에로 되돌려보내주는 의료인들에게 깊은 경탄과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