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25일 목요일.


비랄 것도 없는 비가 후두둑 감잎 위에 떨어진다. 서울집 단감나무는 작년에는 겨우 너댓 개의 감을 달았는데 올해는 제법 많이 열려 가는 가지들이 휘도록 늘어졌다. 늘어진 가지 밑으로 지나가다보면 아직은 땡감이 이마에 탁탁 부딪친다. 저 나무는 전에 2층집 높이만큼 큰 나무였다. 어느 해 겨울 눈이 많이 내렸는데 우리집 살던 집사가 길을 낸다고 쓸어낸 눈을 모아 감나무 밑에 쌓아 두어 30년 넘은 나무가 얼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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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에서는 원래 단감이 안 되는데 그래도 목숨을 부지하며 해마다 엄청나게 많은 담감을 열어 우리 동네 사람들의 입맛을 즐겁게 해주었는데... 그런데 그해 여름, 아쉬워하던 주인 마음을 알았던지 작은 가지 세 개가 등걸에서 올라왔다. 그 중 두 개는 부러지고 가지 하나가 목숨을 부지해 지금은 이층 테라스 높이로 어엿한 감나무가 되었다. 올 가을 단감을 따 동네사람들과 나눠먹고 나면 옆으로 쳐진 가지는 잘라주고 나무를 세워야겠다. 그러나 소문대로 집이 헐리고 아파트가 지어진다면 이런 계획은 굴삭기의 바가지에 짓이겨질 것이다. 모든 게 허망하고 허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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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가 지나면 모기 주둥이가 비뚫어진다"는 속담대로 날씨가 갑자기 시원해져 긴 바지를 입고 어깨도 덮어야 한다. 완연히 가을 날씨다. 그리고 우리 삶에도 가을의 서늘한 한기가 몰려온다. 엊그제 빵고신부가 수련동기 조남철 신부의 부친상을 모시고 돌아왔는데 다른 수련동기로 미국에 가 있는 이정은 신부의 모친이 어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았다


그 집에서는 사흘 지나 미국에서 외아들이 돌아오는 이번 토요일부터 장례에 들어간단다. 평상시 지병이 있었던 분들이지만 죽음이 파도처럼 연달아 밀려오면 산 사람들도 그 파도에 휩쓸려 휘청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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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보훈병원에 보스코의 심장 정기검진을 가는 날. 의사가 병을 아는 순간 우리는 모두 환자다. 예전에도 다 그렇게 살았을 텐데 어디에 무슨 이상이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기가 꺾이고 일손을 놓고 자기의 아픈 곳에만 정신을 온통 쏟게 된다. 그리고 인생은 본래 "죽음에 붙여진 유한자"였고 목숨의 실타래가 무한정 풀어지는 존재가 아님을 문득 깨달으며 갑자기 모든 사람, 모든 순간이 소중해진다.  


무릎이 아파 물리치료를 거듭 받다보니 무릎 정도 아프다는 건 엄살 같아 어서 지리산에 내려가 농사나 지어야겠다. 드물댁에게 전화를 하니 동네 사람 모두가 무를 심어 우리 밭에도 자기가 무를 심었단다. 그새 떡잎이 두 장 나왔고, 오늘은 우리 몫 농협 배추가 배달되었더란다. 다들 배추 심느라 바쁜데 다음 주 내가 내려와서 심어도 늦지는 않단다. 내 말투를 흉내내 “보고자프니께 빨리오세요~~라는 그미의 인사에도 어서 지리산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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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를 읽었다. '할머니 화가' 모지스는 1860년에 태어나 12세부터 15세까지 식모살이를 했다. (내가 어렸던 196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시골 초등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이 어느 날 눈에 안 보이면 '가난한 살림에 한 입이라도 덜겠다'고 딸들은 도회지에 식모로 보내고 아들들은 공장으로 보냈다.) 


그리고 같은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일꾼 토마스와 결혼을 했다그때부터 몸이 부서져라 안 하는 일 없어 나무하고, 소 키워 젖 짜고, 버터 만들어 내다 팔고, 일 년 쓸 비누 만들고, 단풍나무에서 시럽과 설탕을 만들고, 옷감을 짜서 옷 만들기, 수놓기,...그 끝없는 일을 한 여자가 도맡아야 했다. 가히 초인적이었다.


애는 열 쯤 낳아 다섯은 죽고 다섯을 건지는 게 보통이었고 형제나 이웃도 하찮은 병으로들 쉽게 죽었다. 남동생 죠의 아내 애드가가 결핵에 걸려 죽을 때 누이들은 그미가 남긴 아이들을 당연히 데려다 키웠고 결혼식까지 치러 떠나보내는 게 너무 당연했다.

남편 토마스가 눈보라가 거세게 불어오던 날 나무를 하러 산에 갔다가 돌아와서는 "갑자기 어두워졌소."라는 한 마디로 생을 마감할 때도 "그 순간 내가 토마스를 잃었다는 걸 알았다."라며 덤덤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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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세까지 모든 허드렛일을 다하고 관절염으로 자수 놓는 바늘을 꿰기 힘들어지자 그미는 붓을 들었다80세에는 개인전을 하고 90세가 되자 유명한 화가가 되어 있었다. 이 책은 92세의 나이로 출간한 자서전이다. 101세에 죽기까지 1600여 점의 그림을 남겼다


내 나이 72세는 모지스 할머니에 비하면 어린애다. "그림을 안 그렸으면 닭을 키웠을 꺼야." 라는 할머니의 말씀은 '무엇이든 일을 하고 있는 한 늙지 않는다.'는 교훈을 남긴다. 세상을 감동시키는 이 할머니의 그림은 어디서 힘이 나올까


가난하고 불행한 세상에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할머니의 그림을 바라보는 몇 분만이라도 '행복한 세상에 대한 기억'이 용케 전해온다는 점이다. 책을 덮으며 다짐한다. "우리 늙었다 생각지 말자, 아프다 주저앉지 말자. 바로 지금이 무엇이라도 시작할 제일 이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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