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6일 토요일, 흐리다 비 뿌리다

 

사람들은 그를 “황선생”이라고 불렀다. 허우대가 좋은 미남이었고 전직 교사로 퇴직했다는 노신사였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젊은 나이에 예쁘디예뻐 “남자 품안에 쏙 들어올” 체구의 여인이 함께 이 마을에 들어와 식당집 반지하에 세 들어 살더란다.

 

어제 집들이를 한 김용환씨 집에서 동네 남자들이 주고받던 얘기, 내가 언젠가 어렴풋하게 들었던, 문정리에 있었던 어느 “가난한 사랑 얘기” 한 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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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주변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찾아하면서 생계를 꾸려갔다. 미인인데다 자동차 운전 솜씨도 뛰어난 여자였다. 그런데 가까운 백연마을에 남자의 고모 되는 사람이 살아서 금방 소문이 나고 손가락질이 뒤따랐다. 그 남자에게 “첩질을 한다”는 손가락질이었는데 남자도 아내를 버리고, 여자도 남편을 버리고 애정의 도피를 이 지리산 자락으로 왔다는 소문이었다.

 

그러다 문상마을에서 백연으로 가는 산허리길에 터를 장만하였다. 보스코와 내가 둘이서 곧잘 산보를 하던 길, 한의원 원장님댁(대전에서 “공심재”를 하던 분으로 문상마을 밖에 단아한 별장을 지어 남겼다)을 지나서 산허리를 몇 굽이 돌면 나타나는 공터가 그 자리다. 땅을 사고 터를 닦아 지리산 정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집터를 만들고, 연못을 파고, 입구에는 커다란 바위를 세워 당호를 새기게 준비된 곳이다.

 

바로 황선생이 그 터를 마련하고 우선 창고를 짓고 그 한켠을 비닐로 막고서 둘이 살면서 집지을 준비를 했다. 농사지을 차량들과 모든 도구가 갖추어져 있었고 지금도 그 설비가 그대로 버려져 있다. 우리가 산보를 갈 적마다 호기심으로 들여다 본 비닐막 안은 간이냉장고와 석유곤로와 소박한 찬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하얗게 먼지를 뒤집어 쓰고서....

 

그러던 어느 날 도회지에 갔던 남자가 돌아오니 사랑하는 여인이 그 비닐막 안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여인을 땅에 묻고서 남자는 그 모든 시설과 차량과 땅을 그대로 놓아둔 채 훌쩍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곡절 끝에 집과 토지는 결국 그 아랫집 돼지막 주인에게 경락으로 돌아갔단다.

 

보스코의 말마따나 "모든 사랑은 눈이 부시다."  모든 것을 걸고 사랑의 도피를 해 본 사람들만 아마도 그 광휘를 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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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며 산다는 건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보다,

더 큰

삶에의 의미를 지니리라.

 

(중략)

 

어디에서든 우리는 만날 수 있고

어떤 모습으로든

우리는 잊혀질 수 있다

사랑으로 죽어간 목숨조차

용서할 수 있으리라

 

서정윤 시인의 “의미”라는 시구가  생각나는 산보길이었다. 사랑은 모두 무죄하다. 특히 당사자가 죽어버린 후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기까지 사랑했던 여인을 땅에 묻고 떠나간 남자, 일흔이 다 된 나이에 삶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을 그 사랑을 지리산 자락에 묻고 떠나 지금은 어디서 구름처럼 흐르며 살아가는지.... 그 사나이의 무거운 가슴이 와 닿는다.

 

낮에는 함양에 나가 액정이 나간 자동차 네비게이션 수리를 부탁하고, 보스코의 책상에서 망가진 삼성 프린터의 A/S를 신청하고, 양사장한테 들러서 그 집 연장통에 묻어 간 우리 보쉬 드릴 키를 찾아왔다. 뭐가 망가지려면 이렇게 기기들이 단체로 고장이 나는지,심란하다.

 

미국이 신용평가에 한 등급 내려가 가느다란 신음을 하자 한국 경제는 벌써 열이 펄펄 끓고 숨이 넘어가는 단말마를 맞듯이 뉴스마다 호들갑을 떠는 세태가 짜증스러워 뭔가 재미난 것을 찾아 저녁에 빵기네와 스카이프를 했다.

 

     저 두 생명이 "뽀로로" 화면에 저토록 열중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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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는 여름방학을 맞아 유치원엘 못가 몸살을 하는 중인데 다행히 다음 주부터는 개학을 한다니 친구들을 만날 기대에 부풀어 있다. 시우는 우리가 보는 카메라 앞에서도 빨빨 기어 다니고 “바이바이” 하면서 우리한테 손도 흔들 줄 알아 우리가 탄성을 질렀고 그것을 본 큰손주는 예의 그 “다리 찢기”를 해 보이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시선을 끌고...

 

Video call snapshot 8.png    “그래, 너희야말로 우리의 기쁨이고 재산이다.” 우리 인생의 제일 큰 투자요 열매인 두 손주를 화면으로나마 보고나니 답답하고 서글프던 마음에 소낙비 뒤 햇살처럼 밝고 따스한 온기를 되돌려주었다. 모든 주식이 곤두박질쳐도 사랑의 주식은 언제나 원가를 보존하는 게 하느님의 경제정책이다. 

 

낮에는 더워서 못하고 밤을 도와 다용도실에 내려가 누룽지 튀김을 한통 해 갖고 올라왔다. 보스코가 그걸 보고 환하게 웃는 얼굴이라니! 마치 시아가 내 눈앞에 선 듯하다. 11시가 다 되어 소파에 앉아서 일기를 쓰고 있는 나한테 “나 퇴근해.”라면서 서재를 나가는 그의 옆구리에는 누룽지 튀김통이 마치 퇴근 가방처럼 들려 있었다. 어쩌면 사람이 저렇게 귀여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