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16일 화요일. 맑음


815일은 광복절이어서 휴일이지만 성당에서는 성모님이 하늘에 오르셨다는 '성모 승천대축일'이다. 신부님 강론대로라면, ‘예수 승천Ascensio(곧 예수님이 당신 알아서 하늘로 올라가신’) 날이고, ‘성모 승천Assumptio(아들이 엄마를 하늘로 들어올리신’) 날이라는데 아무튼 성모님 축일이 일년에 열댓번일 정도로 구교에서는 성모님의 위상이 대단하다.


Tiziano '성모승천'(퍼온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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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승천 대축일 보스코 복음묵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47

그래서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도 모두 국경일로 쉬는 것을 보면 그들 문화에 이 축일이 뿌리 깊이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어디서든 휴일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어서성당엔 가지도 않는 사람들(구교를 마리아교라고 폄하하는 개신교까지)도 가톨릭 축일은 똑같이 즐긴다. 하긴 불교신자가 아닌 우리도 '부처님 오신 날'을 공휴일로 즐기니까.


물론 우리 부부는 가톨릭신자로서 의무 삼아, 이 나라에 8.15 해방을 주신 섭리에도 감사드릴 겸 어제 9시 미사에 참례했다. 주임신부 강론 대신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의 '성모승천 대축일 메시지'가 낭독되었다. 우리 신앙인은 남북으로, 동서로, 진보와 보수로 갈라진 겨레에게 신앙의 다리’, ‘사랑의 다리’, ‘통합의 다리가 되자는 호소여서 (정진석, 염수정 두 전임과는 색깔이 달라) 마음이 놓인다. 사회적 양심을 일깨우지 못하는 그리스도교는 있으나 마나 할 뿐더러 오늘 광화문 도심 집회처럼 민족과 겨레를 하나로 이어주는 다리를 부수기도 한다는 우려가 담긴 메시지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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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있을 때는 언제 비가 좀 내리려나 먼 산에 걸린 구름만 보고 마냥 기다렸다. 행여 새벽에 나뭇가지에 이는 바람 소리에 빗님인가 마음 설래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깊은 잠 속에서는 비가 내리면 더 깊이 잠속으로 평안히 잦아들곤 했다. 그런 정성에도 그렇게 인색하던 비가 서울에서는 하늘 욕조에 구멍이 난 듯 허구한 날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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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기네가 떠난 지 사흘이 지났어도 빨래를 싸놓고는 해 나기만 기다렸다. 어제 오후에 우이천변으로 산보를 나갔는데 강변산책로 철책에 쏟아진 물이 끌어다 놓은 갈대줄기와 쓰레기들이 지리산 송문교에 널린 참깨단처럼 사열하고 있었다


오늘 드디어 번쩍 찾아온 햇님에, 굽굽한 집안 곳곳을 창을 열어 해님을 불러들였다. 빨래는 물론 침대며 옷장서랍까지 모두 뒤집어 장마로 곰팡이 냄새가 나는 옷들도 통풍을 시켰다. 빨래 해 넌 수건이나 홑이불이 빠삭빠삭 마르는 소리가 들리는데 바람도 한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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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한신여동문회회장 유목사의 전화가 왔다. “언니, 김정희 언니가 돌아가셨다는데 전해 들은 소식 혹시 있어요? 아무리 전화를 해도 안 받는데 언니네집과 가까우니 한번 가보세요.” ‘? 얼마 전 보스코 진찰 땜에 한일병원 갔을 때 형부 목사님과 함께 온 언니를 만나 멀쩡하게 환담을 나눴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이쁜 치매로 말 한마디 없던 남편 목사님 시중은 누가 들라고 ?' 세상에! 죽었다는 소문은 정작 정희언니인데 우린 어떡하다 ‘그럼 형부는 어떡하라고?’라는 걱정부터 하나? 여자는 죽을 권리도 없담!


내가 전화를 여러 번 해도 언니는 전화를 안 받았다. “그래, 죽은 사람이 전화를 받을 수는 없지. 하지만 아직은 가족이라도 전화를 받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가슴이 철렁 해서 그집 딸 방원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그 전화를 받아야 할 방원장은 운전 중이었고 죽었다는 정희언니가 전화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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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뜸 하던 첫마디. “언니, 안 죽고 뭐해요?” “???” “언니, 죽었다더니 어떻게 전활 받아요?” (그래, 여기가 저승이다, 어쩔래? 목사 사모로 평생 남편 받들어 살며 오매불망하던 그 천당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내 말에도 언니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고 내 자초지종 설명에 당신이 살아있다는 실존적인 사실에 신이 나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얼떨결에 요상한 인사를 건넨 나는 정신이 들어 '생전에 부고 받았으니 정말정말 오래 사시겠다'는 치하로 얼버무려야 했다. 실은 요즘 둔촌동 아들네 집으로 이사를 하느라 바빴고 오늘 쌍문동 집에 못 챙겨간 짐 가지러 딸네 차를 타고 오는 중이란다


나를 이모라 부르는 방원장을 본지도 오래됐고 궁금하여 4.19탑 근방에서 점심이나 같이 하자는 약속이 이뤄졌다. 커다란 유치원 원장으로 있는 큰딸은 누가 봐도 그 집 세간 밑천이었고 오늘도 자기 마지막 휴가 날을 부모님 이삿짐 나르는 일로 효도 중이다.


20대의 꽃다운 아가씨가 어느 새 29, 27세 두 아들의 엄마가 됐고 본인도 이젠 60 고개를 내다보는 나이였다. 내가 늙은 건 안 보이면서도 세월의 달려가는 꼬리를 붙들고 헐레벌떡 뒤쫓는 내 모습도 보인다. 오늘은 언니의 살아 있는 부고때문에 웃었지만 머지않아 내가 죽었다는 말이 나올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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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왼쪽 무릎이 아픈 게 오른손 엄지 수술의 여파 같았다. 수지침 이론에서는 오른손 엄지 관절은 왼다리의 무릎에 해당한다. 즉 왼다리 무릎을 수술한 셈이려니 하고 이층 테라스에 앉아 북한산 노을을 바라보며 엄지 관절에 세 장 뜸을 열심히 떴다. 그 덕분인지 어제 성당 갈 땐 걷기도 힘들던 다리가 오늘은 별 어려움 없이 걸었다. 암벽등반가인 우리 집사 레아가 자기 경험대로 까치발로 서기30번씩 다섯 번을 해보라기에 그것도 따라하고 있다.


귀요미미루는 대전 정하상 교육관에서 피정 지도 중에 (지난 토요일에 국민tv’를 보았다는) 함양 서경방송과 녹화를 위해 산청으로 내려갔고,  MBC와도 녹화를 뜨게 되었다고 들떠 있다. 그미의 이런 활동이 그미의 팔보효소보급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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