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14일 일요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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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은 3년만에 고국에 와서 한 달 휴가를 보낸 빵기네 가족이 집에서 지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치과와 안과에 가서 검진과 치료를 받고 시내에 가서 애들이 하고 싶은 걸 하겠다"며 네 식구가 외출했는데 '애들 하고 싶은 것'이 뭘까 궁금했다. 애들은 노원에 있는 어느 큰 서점에 가서 맘에 드는 책을 실컷 둘러보고 읽어보는 게 재미있었는지 오후 3시까지 서점에 머물렀단다. 아범이 오든 어멈이 오든 시아네가 왔다 돌아가는 짐은 언제나 책이 제일 많고 책가방이 제일 무겁다. 


뭐에 한번 빠지면 정신없는 작은손주 때문에 식구들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서야 식당에 가서 돈까스를 허겁지겁 먹었단다. 그러다 보니 저녁식사는 일식당에 예약해서 할아버지 팔순을 (늦게나마) 기념하는 잔치가 있었는데 작은애는 우동을 시켜놓고서도 한 젓가락도 안 먹어 이 함무이의 속이 탔다. 다행히 큰녀석 시아가 눈치껏 동생 것을 먹어주며 위기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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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주는 퍽 사이가 좋다. 작은애는 형을 믿고 의지하며 큰애는 동생을 알뜰하게 거둔다. 동생이 맘에 안 들거나 성가시게 해도 견뎌내는 모습이 담에 결혼생활도 무던히 할 성격이다. 그 심성이 꼭 며느릴 닮았다. 저 두 생명을 낳아준 며느리가 고맙고 고맙다. 


빵기와 빵고가 어렸을 때도 무척이나 사이가 좋았다. 빵고는 지 형에게 '아유! 이쁜 내새끼'여서 끌어안고 뽀뽀해주고 두 마리 강아지처럼 둘이 어울렸! 80년대에 이탈리아 오스티아 아파트에서 살 적에 윗집 시모네와 걔의 형 막시가 심하게 다툴 때마다 애들 엄마 카르멜라가 나더러 "너희 한국 애들은 형제간에 절대 안 싸우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라고 물으면 "이탈리아에 와서 의지할 게 단둘이어서."라고 대답해주었다. 지금까지도 여전한 형제간 우애는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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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고신부가 금요일 저녁 늦게 집에 왔다. 이튿날 새벽 7시에 외국에서 도착하는 관구 손님을 인천공항에서 픽업할 겸, 토요일 새벽 4시에 형네 식구와 짐을 공항까지 실어다 주겠다고 왔다. 빵기는 미안해하면서도 이민가는 짐만큼이나 많은 짐보따리들을 군말 없이 공항까지 실어다 줄 동생에게 고마워했다. 타인에게도 그렇지만 형이나 조카의 일이라면 지극 정성을 다하는 작은아들의 심성은 보스코에게서 왔다.


새벽 4시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는 말에 보스코는 밤새 한 시간 간격으로 잠을 깨어 시계를 보더니만 3시에 일어나 애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빵기가 실수로 시계알람을 430분으로 맞춰 놓았는데, 아빠가 아니었으면 곤란했을 거란다. 보스코가 '애비가 해줄만한 일이 고것 정도'라고 쑥스러워하는 모습도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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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범은 책이나 옷이든 가방은 간밤에 이미 차에 실어 놓고, 새벽 세시 반에 냉동, 냉장실에 넣어 두었던 음식을 아이스박스에 챙긴다. 오이소박이를 너무 많이 했다고 투덜거리는 아들과 한 가지라도 더 싸 보내려는 내 싸움에서 며느리가 내 손을 들어주었다. 


바르샤바를 거쳐 거쳐 제네바에 도착한 손주들의 영상통화에는 아침밥상에 함무이가 싸 준 오이소박이가 올랐고 시우는 김치 국물까지 밥에 싹싹 비벼 먹는 사진을 보내와 함무이를 기쁘게 한다. 특히 작은손주 식성은 한국 토종의 입맛이다. "시우야, 담주에 아빠 한국에 다시 출장 올 때 또 담가 보낼게 많이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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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새벽 어스름에 시아네가 떠나고 오전에 내가 다니던 정형외과에 가서 몇해만에 다시 통증이 돌아온 왼 무릎을 치료 받고 와서는 오후 3시부터 낮잠을 잤다. 낮잠이라곤 도시 모르는 내가 너무 곯아떨어져 있으니까 보스코가 침실을 수시로 들여다본다. 넷플릭스 보라고 태블릿도 갖다 주고 책도 갖다 주는데 다 귀찮았다. 내쳐 오늘 아침까지 실컷 잤으니 장장 15시간을 비몽사몽으로 보내고 나자 허리가 아플 정도였다. 


https://youtu.be/V3_WfNXtlf8

우리 셋째딸 귀요미 미루가 국민-티비’(K-tv)가 진행하는 "청산에 살어리랏다" 프로그램에 부부로 출연했다산청에 귀농하여 살아온 얘기가 조리 있게 촬영되고 편집되어 토요일 11시에 40여분 방영되었다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던 2014년 보스코가 예수회 제병영 신부와 출연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로운 교회상을 소개한 채널이기도 하다


보스코의 연중 제20주일 복음단상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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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기도 후에 티벳요가를 하고 9시 어린이 미사를 갔다. 어린이 및 학생 미사는 늘 우리에게 미소를 안겨준다. 초딩이 되기 전부터 어린이 석에서 악다구리로 성가를 노래하던 아이가 어느덧 복사가 되고 미사 후에는 찬양율동으로 우리를 즐겁게 한다. 이번에 새로 등장한 성가대석의 여자 악다구리’(?)의 노래도 귀가 좀 따갑지만 참을만하다. 아이들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고 신앙공동체의 새싹이어서 우리의 행복이다.

미사 후 집에 돌아올 때는 이미 어느 정도 정상을 되찾았는데, 마당에 베어 놓은 풀을 치우고 흙을 만지자 정신이 번쩍 들고 정상을 회복하게 되었다모든 일은 찰라로 왔다 순식간으로 갔고 바닷가 물이 빠졌다 돌아온 것처럼 흔적이 없다. 우리가 왔다 간 이 지구별에도 우리의 흔적은 물결처럼 철썩 일었다 자취없이 사라지리라. ~ 이 아름다운 시간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 다닐 것인가! 부부든 피붙이든 벗이든 이 사회와 역사든  "사랑한 시간만 영원으로 도금(鍍金)된다"고 어느 현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앞집 담장 위의 호박 덩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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