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11일 목요일, 큰비를 맞으며 서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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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밤 우리 밭을 갈아주며 본 잉구씨는 몹시 지쳐 있었다. “사는 게 재미엄서.” 코로나 예방주사를 맞은 직후 근무력증이 온 것 같은데, 인과관계를 누구도 제시할 수 없어 답답하단다. 코로나가 걸렸거나 예방주사를 맞은 후 후유증으로 하는 고생들이 가지가지다. 나는 가슴을 송곳으로 찌르는 고통을 한 동안 느꼈고, 누구는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누구는 입이 써서 입맛을 잃고, 누구는 의욕상실에 걸린다. 100명이 있다면 100가지 괴롬을 듣게 된다. 그만큼 코로나가 요상한 짓을 하며 인류에게 톡톡히 맛을 보여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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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른손을 쓸 수 없어 잉구에게 이랑을 일구고 비닐 멀칭까지 부탁했는데 어제 아침 8시가 넘었는데도 텃밭에는 인기척이 없고 웃동네에서 트랙터 소리만 요란했다. 아마 그가 다른 일을 하고 있거나 큰비 오기 전 자기 밭에서 고추를 수확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12시부터 큰비가 예보되어 텃밭에 가을거리를 심으려면 골을 만들고 멀칭을 해놓아야지 비가 내리면 밭은 곤죽이 되어 다시 갈아야 하기에 보스코에게 우리 둘이서라도 멀칭을 하자고 했다. 그가 안 한다면 나 혼자라도 나설 승질이 분명한지라 순순히 따라나섰다.

그가 하얀 줄을 고춧대에 묶어 양쪽에 댕겨 땅에 꽂아 이랑 간격을 정하고 괭이로 고랑을 만들면서 나더러 흙을 긁어 올려 이랑을 돋우라는데 손가락이 욱신거려 도저히 할 수가 없어 끙끙거리고 있었다. 올해는 김장배추와 무 심기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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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순간 수영씨가 관리기를 갖고 도착했고 뒤이어 잉구씨가 괭이를 어깨에 메고 내려왔다. "어째 혼자 해보실라꼬?" 나는 그게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고 우리 부부는 서둘러 밭에서 철수했다. 얼마나 고맙고 예쁜 사람들인지 점심으로 내가 원기식당에 데려가 '꾀기'를 사주었다


이젠 이 동네 아낙들도 다 할매들이 되어 관리기 가진, 그래도 좀 젊은 아재들이 밭을 만들어 줘야 곡식이나 푸성귀를 심을 수 있다. 퇴비 부대가 20Kg인데 그걸 끌어다 밭에다 펴서 까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나도 언제까지 저 일을 할지 장담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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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은 느티나무독서회모임을했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는 나태주시인의 시집이 이번 도서목록인데 나만 아니라 다른 회원들도 기대에 미치지 않았다고 한탄한다. 많은 사람이 선문답식의 그의 시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인터넷 블로그나 트위터에 자주 오르내리던 시들만 모은 책이라선지 특별히 꽂히는 시가 없다는 게 일동의 촌평이다. 이 시들이 그 시인의 시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에 오히려 고맙다. 다음엔 그의 다른 시집을 더 읽어보면 좋은 글들을 찾을 수 있을까?. 아는 만큼 좋아하고 읽은 만큼 알게 된다는 게 친구들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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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울에 올라오면 5시 30분에 보라매 앞 살레시오 관구관 2층에 세든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자고 약속을 했다. 어젯밤 큰아들이 전화를 걸어 신신당부다. 중부지방에 억수같은 비가 내린다니 '첫째, 집에서 일찍 나와', '둘째, 승질대로 속도 내지 말고 천천히 안전운전하고', '셋째, 장대비가 심하면 휴게소에 들러 쉬기도 하면서' 제발 천천히 안전하게 올라오시라는 구체적인 지침과 하명이 떨어진다. 싫지 않은 잔소리였다.


11시에 집을 나셨는데 덕유산 발치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태풍은 과연 양동이로 쏟아 붓듯이 비를 내렸다. 운전대를 놓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손에 힘을 주는지 두 손 두 발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휴천재는 이번 태풍의 고약한 빗살이 당도하지 않아 절박하지 않았는데 충청도를 지나며 불어난 강물들을 보니 엊그제 TV화면에서 본 서울과 충청도의 난감한 상황을 한눈에 보여준다. 다행히 전국 저수지들이 가뭄으로 애타던 물을 채워 한탄강 저수지들도 수문을 열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기도 했다. 유럽이 곳곳에 가믐이 들고 무더위로 고생하는 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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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넘어 보라매 살레시오 관구관에 도착했고 우리 일곱 식구 모두 하얀 T셔츠와 파란 바지로 갈아입고(큰딸의 귀뜸이었다) 교복 입은 초등학교 동창 모임처럼 사진사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얌전하게 이산가족 상봉기념사진을 찍었다. 작은아들은 수도원에, 큰아들네는 이역만리 떨어져 사니 이 사진이 우리 나이 쯤이면 집집이 사진틀에 걸어 놓은 총천연색 '공식가족사진'이 되겠다. 몇 번 씩 재연하며 사진을 찍는데 진저리를 치는 데는 보스코와 작은손주 시우가 똑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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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서 식구들이 모밀국수와 만두를 함께 먹고 우이동 집으로 돌아오는 길작은아들을 수도원에 떼어놓고(?) 오더라도, 이제 식구가 여섯이니 한 차에 함께 탈 수가 없다. 더구나 소나타 뒷좌석 절반에 이 함무이가 평소대로 짐을 가득 채운 마당에(서울 오가는 소나타는 항상 1톤 트럭으로 변신한다는 게 보스코의 불평). 며느리와 큰손주가 전철로 우이동집으로 떠났다


"우리 며눌아기 우이동집까지 전철로 찾아갈까?" 보스코의 걱정이 태산이다. 큰아들이 어처구니없어 하며 늙으신 아버지를 안심시켜드리는 한 마디. "아빠, 어제도 청담동('친정집')에서 혼자 다녀왔어요. 집 찾아가는 길 배우러 이대(梨大)까지 나왔으니까 본가(또는 '시댁')까지 잘 찾아갈 거에요." "... ..."


큰아들이 우리 차 운전하고 내가 옆에 앉아 잔소릴 실컷하며 돌아오는 길. 뒷자석에 하부이랑 앉은 시우는 자기가 읽은 책들에 꾸며낸 줄거리까지 보태가며 끝도 없이 얘기를 꾸며나간다. 작은 손주가 들려주는 창작동화에 하부이는 혼이 쏘옥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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