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8일 목요일. 맑음
노인회 회장이던 구장이 세상을 버리고 새로 노인회 회장을 맡은 된장공장 주인은 그동안 노인회 회비가 너무 많이 쌓였다고 좀 써야 한다며 복날을 전후해 마을 할매들에게 대접을 잘 한단다. 요즘 날마다 마천으로 유림으로 다니며 동네 할매들에게 음식을 사주는데 마천 중국집에 그렇게 메뉴가 많아도 얼굴 아는 짜장면이나 우동이 식탁에 오르는 전부라는 드물댁.
유림에 있는 한식당에 가더라도 물냉면이나 비빔냉면 둘 중 하나지 칼국수 콩국수는 도전을 못한다며 “우리가 왜 이리 못났는지 모르겄서.”라는 드물댁의 한탄. “맛이 어짤지 몰라 먹어보던 것만 똑같이 시켜. 늘 우동을 먹는데 다른 음식은 속에 안 맞을까봐서.” 이 동네에서 태어나 이 동네에서 늙어 이 동네에서 죽어가는 안노인들에게 입에 선 음식을 먹어보는 일마저 일종의 ‘모험’인가 본데 드물댁도 때로 뭔가 모험을 해보고 싶은가 보다.
우리집 식구들도 음식점엘 가면 두 부류로 나뉜다, 더구나 외국에 가면. 나는 생전 보도듣도 못한 음식을 시켜서 다 먹어본다. ‘사람이 만들고 딴 사람도 먹으니 먹고 죽진 않겠지?’ 하는 믿음, 과연 이건 어떤 맛일까 하는 호기심이다. 보스코는 음식점에 가서 메뉴 고르는 일마저 귀찮은지 언제나 내게 위임하고 마는데 자기에게 익숙한 걸 먹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얼른 뱉어 버리고 나는 꿀꺽 삼킨다. 우리 아이 둘은 이 점에서 둘 다 나를 닮아 음식에도 모험심이 많고 실생활에도 별반 다르지 않아 궁금한 일에 두려움이 없다. 손주 중 시아는 할아버지를, 시우는 나를 닮아 공평하다.
이층 전부와 아래층 식당채도 하루 한번 밀걸레질로 깨끗이 닦고 며칠에 한번은 바닥을 기면서 물걸레질을 해야, 그래서 맨발로 다니는 내 발바닥에 먼지 하나 안 밟혀야 내 맘에 든다. 낼이면 시아네가 몇해 만에 휴천재를 찾아오는 날이어서 어젠 더 깔끔하게 집안을 쓸고 닦았다. 올가을 고등학교 들어가는 큰손주 시아가 휴천재에 처음 왔던 세 살 적 ‘극성 함무이’를 흉내내어 방방이, 마루마루 종이 걸레를 밀고 다니는 놀이를 하곤 했는데 제네바 돌아가서도 같은 놀이를 하면서 ‘아이구, 지더러워!’ ‘아이 지더러워!‘를 연발하고 다녔다는데...
2008년의 큰손주 사진과 오늘 경주에서 찍어보낸 작은손주 사진
요즘은 기온이 좀 떨어진 저녁 시간에 산보를 한다. 송전길을 들어갔다 빈 차로 나가는 군내버스 막차 기사와 우리는 심심하던 차에 손을 흔들어 서로에게 격려를 한다. 길가의 도라지꽃도 밤에 피는 박꽃도 개울가에 핀 개똥해바라기도 심심해서 반가이 웃는다.
오늘 아침 일찍 보스코가 뒤꼍 대나무 밭에서 마지막 남은 산죽을 쳐내고서 몸이 지쳤는지 숨을 헐떡인다. 심장병 환자한테 이 무더위에 일을 시키다니! 내 손이 빨리 나아 차라리 내가 낫을 휘둘러야지 그의 힘들어 하는 모습에 오히려 나한테 심정지가 오겠다. 저녁에는 지난번 뒤꼍에 베어서 버려둔 대나무를 태웠다. 보스코가 토막 내고 내가 불사르고...
오늘 점심에는 중촌댁(93세)의 조카(대구에서 교수를 한단다)가 동네 아짐들과 아재들에게 아구찜을 대접하는 잔치를 했다. 문청초등학교를 다니다 서울로 유학을 간 인텔리지만 괴로운 서울 생활을 방학이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견디어냈단다. 함양땅에 버스가 닿으면 가슴이 벌렁거렸고 지금 마을회관 아래 있던 미나리깡에서 '동인아!' 부르면 달려 나오던 친구의 뜨거운 마중이 도시생활의 고됨을 치유해 주더란다.
미국 유학을 한 그 사람의 교향 예찬을 듣노라니 나 역시 이리도 사랑받는 문정리에 산다는데 자긍심이 느껴진다. 중촌댁은 흰밥에 뜨거운 물만 부어 겨우 몇 숟가락 뜨면서도 당신 조카의 대견한 마을 어르신 대접에 으쓱하셨다.
만화영화 '코코'에서처럼 산 사람들이 기억해주지 않으면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도 사라져 버리듯이, 고향도 그곳을 사랑하는 이가 하나라도 있는 한 고향이 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대개 부모님이, 중촌댁처럼 고령이더라도 엄마가 계시기 때문이다. 아니, 엄마가 고향이다, 심지어 뒷동산에 잠들어 계시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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