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21일 목요일. 흐림


깊은 밤 비 내리는 소리는 잠 안 올 때 다독여주던 엄마의 손길 같다. 빗소리와 함께 열린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흘러 들어온다. 얼마 후 한기를 느끼며 이불을 끌어다 덮는다. 서울 우이동의 한여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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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기가 사는 제네바는 여름 날씨가 25~28도 정도여서 여름이라도 더위를 타는 일 없고 선풍기도 각 집에 1대 정도가 전부다. 물론 에어컨이 있는 집은 찾아보기 힘들다.그런데 올해는 39도  40도라면 한국으로 피서 잘 왔단다.로마 간 첫해(1981)에 서울을 생각하여 선풍기를 사려고 시내를 헤맸지만 찾을 수가 없었고 그런 물건을 찾아다니며 설명을 하는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 했다.


우리 유학시절엔 에어컨 있는 차를 구경도 못했고 무더우면 창문을 여는 게 고작이었다. 바람은 바람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분 좋게 달렸다. 유럽의 여름은 건기여서 습도가 없고 도시에선 석조건물이 주를 이루고 현대에 건축한 아파트라도 건물 벽이 워낙 두꺼워 그늘이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 유럽은 섭씨 40도를 넘고 산불이 사방에서 일어나 핫스팟이니 불의 대륙이니 하는 말이 전세계를 놀라게 한다. (그러다 보니 큰아들네 한국방문이 피서가 되었달까?)  며칠 전 유엔 사무총장이 기후위기를 놓고 인류가 "집단행동이냐 집단자살이냐" 갈림길에 있다고 경고했지만 귀담아듣는 사람들이 없다. 인류의 집단적 이기심은 얼마든지 집단자살을 택하고도 남을 게다. (핵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당사국들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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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수요일 오전에는 한일병원 신경과에 갔다. 주변에서 보스코 나이의 어르신들이 뇌경색이나 뇌졸증으로 고생을 하는 일이 잦아져 보스코의 '건강 염려증'도 진정시키고 은근한 내 걱정도 덜 겸 아침 일찍 의사의 진찰을 받았고, 오늘 오후 늦게 MR검사 일정까지 잡았다


병원에서 오랜만에 한신 선배 언니를 만났다. 목사 사모로 평생 남편 목사를 하늘같이 섬기며 살아온 분이다. 형부도 내가 아주 좋아하던 분이었는데 내 얼굴을 전혀 못 알아보았다. 형부의 소변검사를 도우려 언니가 한 시간 넘게 남편에게 물을 먹이며 기다리는 모습이 나와 흡사하다


뇌경색 위험을 예상한 김원장님이 한 달 전 보스코에게 '물 많이 마시는 게 최선의 예방'이라는 처방을 내려 나와 보스코는 한 달 넘게 '물과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물 마시기를 정말 어려워하는 남편에게 '물 마셔요, !'을 하루에 백번쯤 반복하는 아내. 밥 먹기 싫은 아기가 종일 입에 물고 있듯이 내 독촉을 받을 적마다 입에 물 한 모금을 머금고 버티면서 하루 종일 '물고문'을 당한다는 표정을 짓는 남편의 실랑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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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다시 그 언니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언니는 아직도 검사실 앞에 빈 물병을 들고 난감하게 앉아 있었다. 물 한 병을 다 먹이고 소변이 나오나 싶어 컵을 들려 남편(91세)을 화장실에 들여보냈는데, 소변을 컵에 받더니 변기에 싹 비우고 컵은 깨끗이 헹궈서 엎어놓고 나가더란다. 사태를 눈치채고 뒤따라 나온 젊은이가 언니에게 얘기해주어 알았단다. 그동안 형부 병수발에 얼마나 힘들었으면 언니가 급성 신우염으로 2주간 입원했다가 엊그제 퇴원했노라는 하소연! 그 의미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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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정형외과에 가서 내 엄지에 박은 두 개의 철심을 두 달만에 뽑았다. 주치의는 펜치끝으로 바늘을 잡더니 순식간에 뽑아내고서 드레싱을 해주었다. 손가락뼈 끝마디가 중간마디에 붙기 시작은 했지만 앞으로 두 달이 지나야 다 붙는다며 그 기간을 무사히 보내면 남은 여생 엄지손가락 사용이 나름대로 가능할 거란다. 금요일에 다시 소독하고 나서 지리산에 내려가도 좋단다. 나이 먹는 탓인지 시골 사는 탓인지 우리 부부의 서울행은 언제나 병원순례가 되고 만다.


오늘 점심은 일산에 가서 보스코 동창 종수씨 내외와 함께 했다. 특별하지 않고 소박한 밥상이어서 더 맛있었다. 김치나 된장국이 오랜 세월 먹어도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처럼 종수씨 아내 우선엄마는 우리가 만난 7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도 변한 게 없다. 말투며 마음 씀씀이가 환하고, 사랑스런 표정에 남편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우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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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전 종수씨가 당한 커다란 교통사고를 돌이켜보자면 그때 남편을 저승 문턱에서 되찾아온 게 아내의 간곡한 정성임을 내가 잘 안다. 그 사고의 후유증으로 3급 장애가 된 남편을 요양보호사로서 보살피는 지금도 '남편이 살아 있어 오로지 행복하다'는 우선엄마의 밝은 표정에는 내가 늘 감복한다. (보스코의 만약을 위해 나도 10여년 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놓은 것도 그 때 경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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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와서 손주들이 이것저것 별미를 맛보는 재미가 톡톡한가 보다. 어제 점심은 지인이 정성으로 시켜 보낸 통닭, 오늘 점심은 중국집에서 배달온 탕수육과 짬짜면, 보스코의 MRI 촬영(1810)을 끝내고 귀가하며 손주들 저녁으로 김밥을 사왔더니 아범은 떡볶이와 순대를 사 들고 들어와 우리가 불량식품이라 부르는 잔칫상이 차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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