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17일 일요일, 간간히 비 뿌림


서울에서도 새벽 5시엔 눈이 떠진다, 할일이 있어서. 타잔은 아직 곤히 잠들어 있다. 기사 아내 옆에서 얌전히 차를 타고 다니는 일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닌가 보다. 나로서도 남이 운전하는 차를 조수석에서 타고 다니느니 내가 운전하는 편이 좋다.(내 맘대로 안 돼서?)


서울집에 들어서며 보니 마당의 풀이 얼마나 욱어졌던지 다닐 길도 없을 지경이다. ‘집사레아네는 워낙 자연주의자들이라 저렇게 사는 것을 좋아하겠지만, 나는 나무나 풀도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어야 내 머리도 정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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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새벽에 우선 풀을 뽑고, 길을 점령한 초목을 낫으로 쳐냈다. 도가 넘은 잔디는 잔디 기계로 밀어 말끔하게 했다. 일이 끝나갈 때 쯤 부시시 잠에서 깬 보스코가 이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며 잔디는 내가 밀 수 있었는데...”라고 립서비스를 보탠다.


9시까지 4시간을 일하니까 어느 정도 마당이 정리된다. 지리산에서 도 닦는 심정으로 밭일을 하다 보니 일머리가 생겨서 한결 수월했다. 이젠 서울 와서 산다면 이 작은 마당도 멋진 정원으로 꾸밀 수 있을 듯한데 다 밀어버리고 괴물거인들의 아파트촌을 세운다니, 그것도 우이동 골짜기에. 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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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도 열려서 빨갛게 익었고 늦은 제주 수국이 요즘 자주 내린 비에 신이 나서 꽃을 활짝 피우고, 금송도 사춘기 사내아이처럼 안 보는 사이에 몰라보게 훌쩍 컸다. 구상나무에 올린 오이가 조랑조랑 예쁜데 담쟁이가 구상나무를 감고 올라 보스코에게 거둬 달라고 부탁했다. 어제 아침 보스코는 현관 앞에 사다리를 세우고 오르려다가 이층 처마 담쟁이 사이로 말벌집을 발견했다. 마당에 수상한 벌들이 왕래를 하기는 했었다.


워낙 아름답게 지어진 둥지인데다 도시에서 보기 드문 말벌집이라 보스코는 그냥 놔두잔다. 몇 해 전에도 축구공 만한 말벌집을 떼낸 일이 있었다. 하지만 먼 옛날 지리산 칠선 계곡에서 말벌에게 쏘인 기억 땜에 나는 걔들과 별로 친하지 않다. 그보다는 큰손주 시아가 모기는 물론 벌에도 심한 알러지가 있어서 만일 쏘이면 큰일이라 내가 119에 신고를 했다.


몸집 좋은 장정들 넷이 금방 와서 달 탐사에나 쓸 만한 완전무장을 하고 비닐 봉지로 벌집을 싸서 떼어내고서 그 자리에 스프레이를 뿌려 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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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낮. 점심에 맞추어 바오로 수도원에 갔다. 이봉하 수사님이 전병성 전 환경청장님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겠다며 초대한 길이다. 코로나로 인해 외부인을 수도원으로 초대하지 못했다며 사람들이 오가지 못하니 수도원도 삭막하기는 마찬가지란다. 우리의 오랜 친구 이영춘 베르나르도 수사님도 십여년만에 만나 반가웠다. 다른 수사님들의 아스라니 기억나는 얼굴들이 변함없이 그곳에 있어서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여자수도자 교육원장으로 일하는 살레시오수녀회 아그리피나 수녀님도 그곳에서 사무를 보고 있어 반갑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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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탁에서 만난 젊은 수도자들은 세대가 바뀌며 낮설어져 있었다. 요즘은 우리가 어느 수도회를 가나 느끼는 낯섦이다. 전청장님은 방배동 성당 총회장으로 보스코의 삼위일체론을 읽고 계시는데 이해가 힘들어 번역한 사람은 어떻게 알아듣고 있을까 궁금해서 보스코를 만나보고 싶었단다. 보스코가 수사님과 청장님에게 특강을 하는 동안 나는 아그리피나 수녀님과 그동안 지난 이야기를 나누었다. 좋은 사람들과 갖는 행복한 시간은 빨리도 지나간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다니는 박순용 정형외과가 보인다. 원장님은 드물게 좋은 의사다. 젊은 나이에도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넉넉하고 따뜻하다. 다리를 절며 들어오는 할머니에게는 아유 힘들어서 어쩌나? 내가 편하게 해드릴께요.” 라고 인사하고, “어제보단 나아요.”라는 아줌마에게는 다행이네요. 차츰 더 좋아질 꺼예요.”라고 격려한다. 손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분에게는 어디봅시다내가 안 아프게 해드리면 되겠죠?” 라는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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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 차례가 되자 지리산에서 가져온 X-Ray를 보여주며 "이걸로는 안 되겠죠? 선생님이 다시 찍어보고 싶으시죠?"라고 했더니 "내 생각을 어찌 알았데요? 빨리 가서 찍고 오세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의사도 직업이라 서비스 차원에서 친절하다고만 하기에는 너무 좋은 분이다.


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03
손주들이 주일 아침 일찍 도착하기로 되어 있어 우이본당으로 토요특전미사를 갔다. 어제 오후에는 함양에서는 보기 어려운 소나기가 세차게 쏟아졌다.그동안 소나기가 서울에만 머물러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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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일찍 빵기네 가족이 스위스에서 바르샤바를 경유한 항공편으로 도착했다. 지난 부활절 방학으로는 부족하여 이번엔 한 달 여름방학을 한국에서 보낸다. 아이들을 데리고 전국을 보여주며 조국에 대한 견문과 애정을 쌓을 참이란다.


두 달 만에 온 아이들 키를 재니 그간 시아는 2cm, 시우는 3cm 컸다. 할머니가 의자를 놓고 올라가야 큰손주의 키를 잴 수 있다니 세월이 얼마나 빨리 갔고 우리 두 노인의 키는 정반대로 그만큼 줄었음을 알게 된다. 사람이 보다 더 크고 더 훌륭하고 더 출세하는 걸 시샘 않고  흐뭇해 하는 것은 자식들과 손주들이다. 자손들은 갈수록 커져야 하고 우리는 갈수록 작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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