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4일, 금요일 날씨 맑았다 흐려짐

 

아침에 함양성당에 가서 어머니를 위한 연미사를 드렸다. 언제부턴가 제사 대신 연미사를 드려오고 있다. 본당신부님이 "김루치아의 영혼을 위한 미사"라는 지향을 발표해 주셨다. 52년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성함은 김도곡이셨는데 골짜기 도(陶), 골짜기 곡(谷)이어서, 보스코가 전하는 말로는,  당신 이름 자 때문에 팔자가 사납고 고생이 심하다고 푸념하셨다고 한다. 열네 살의 큰 아들, 11살, 8살, 5살의 아들들을 남기고 가시던 그 걸음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주위에서 무엇을 보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내게 들려주는 얘기는 어머니 혼령이 큰며느리 나를 무척이나 애지중지 하신단다. 나도 어머니 애끊는 정을 생각하며 남편을 그 정으로 보실피려고 노력은 한다. 하기사 내 친구 하나는 내가 남편을 대하는 품을 보고서 하는 말이, 시어머니 귀신이 씌어서 남편을 아들처럼 위한다는 풀이를 하기도 하였다.

 

미사후 루시아씨가 우리를 초대하여 점심을 냈다. 본당 수녀님 두 분과 제대봉사하는 여교우 두 분도 함께... 루시아씨는 아들이 대학 다니다 군대까지 마치고 나서 신학교 가던 사연을 얘기해 주었다. 신학교나 수도원에 자식을 보내는 어미들의 마음은 서로 통하는 데가 있다.

 

점심후 돌아오다 보스코는 모현에서 버스로 집에 가고 나는 면사무소에 남아 건강체조를 하고서 돌아왔다.

 

저녁엔 이기자 댁에서 생일턱을 낸다하여 스무 명 가까이 모였다. 어제 행사까지 하면 이틀에 세 번이나 봐도 서로 즐겁다. 서울 같은 대도시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글라라씨의 장어탕은 일급이어서 "요리 지존"이라고들 칭찬하였다.

 

저녁을 먹고 우리 부부는 구름에 가리는 달빛을 보면서 집에까지 걸어내려왔다. 대나무숲까지 우리를 바래 주던 스테파노씨 부부도 달밤이어서 어디까지나 함께 걷고 싶은 표정이었다. 이 산 속에 이처럼 정답고 사랑스러운 이웃들을 두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선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