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12일 화요일. 흐림


컨테이너를 놓으려 굴착기 작업을 해 놓은 생땅이 아직은 잡초의 공격에서 자유롭지만 몇년이라도 풀 뽑는 노동을 피해 보려고 부직포를 깔기로 했다. 월요일 새벽에 작업을 하기로 했다. 내 일방적 결정이지만 싫다고 반대를 안 하면 GO! 설령 보스코가 반대를 하더라도 발언권으로는 존중되지만 결정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누군가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집에서는 마님이 법이야!"라는 정세파악을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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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저녁부터 온다던 비가 새벽녘에 한두 방울을 떨구더니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남호리까지 보스코를 데려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모자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리는 법. ‘성나중씨는 그냥 집에 돌아가고 일은 나중에 하잔다. 이슬인지 보슬인지 분간도 안되는 빗살이니 덥지도 않고 후탁 깔고 가서 샤워를 하자며 달랬다.


우선 길이를 맞춰보자며 한 자락 깔고, ‘두 자락은 깔아야 오솔길이라도 되겠다고 한 자락 더 깔고, 대충 핀을 꽂자는 말에는 바람에 안 날려가게 하려면이라는 대의명분으로 핀도 제대로 박았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며나로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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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목욕 후 남정은 '휴식 모드'로 전환하지만 아낙은 모든 후속조치를 감당하는 '열공 모드'로 지속하지 않던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가 하얀 새 모자를 쓰고 나섰으니 흙범벅을 빨아야 하고, 신고 간 등산화는 흙탕이어서 깨끗이 물로 씻고, 토시와 장갑, 땀수건과 양말은 손세탁을 하고, 겉옷과 (샤워 하고 남긴) 속옷은 세탁기로 돌리고 나니 아침 아홉 시. 벗어만 놓으면 다 끝나는 남자들은 참 좋겠다.


어제는 보스코 생일(80). 가장 가까이 있는 셋째딸 미루가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점심 대접을 했다. '아부이가 데불고 들어온 딸'이라 정성이 각별하다. '귀요미'가 내는 맛있는 점심과 애교스런 환담이 요즘의 무더위를 잊게 해주었다. 지리산에 내려오면 미루가 살갑게 살펴주고. 서울에 가면 그곳 딸들이 들여다 봐주니 딸들 정성에 우리 둘의 노년은 호강에 호강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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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촌에는 대장간이 있다. 휴천재산 민트를 썰려고 작년에 작두를 샀는데 최근 민트차를 만들다 잘 안 썰어져 대장간에 가져가 A/S를 부탁했다. 대장장이는 그 작두가 약재용이 아니고 떡국 써는 작두라고 일러주고서 칼이 휘어졌고 날이 없다며 반 시간 넘게 칼날을 버려주었다


칼을 망치로 두드려 바로잡고, 큰 숫돌 기계부터 섬세한 샌드페이퍼까지 너댓 단계를 거치며 칼날을 벼렸다. 자기가 만든 물건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친절이어서 '저 사람은 정말 장인이다' 라는 탄복을 자아냈다. 하도 고마워 조선낫 하나도 새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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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에 집밖에 나와 그렇게 현란하게 꽃 피우던 제라늄, 난초, 칼란디바, 긴기아난 등 꽃들도 조용히 자세를 낮추고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게 기다림이 있어 자기를 준비할 때 반짝 자신을 꽃 피우고 창조주께, 땅주인에게, 벌나비들에게 뽐내며 자랑할 날이 온다.


화요일 새벽 5. '의지의 된장녀'는 보스코를 깨워 전날 공사에 부족하여 어제 화계 철물점에서 사온 핀을 갖고 남호리 부직포 깐 공사를 보강하러 갔다. 낫을 들고 퇴비 더미 위로 건너오는 칡넝쿨도 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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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성 마누라의 등살에다 '움직이다 보면 건강해진다'는 훈계까지 귀에 못이 박이게 들어가면서 식사도 잘하고 잠도 잘 자고 그 나이의 사람 보다 걸음걸이도 힘차다는 말을 듣는 보스코. 본인 말마따나 "가사(유일하게 설거지)를 돌보는 틈틈이" 하루 열 시간 아우구스티누스 번역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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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에는 (어머님이 하늘에서 나무라실 것 같아) 어제 건너뛴 미역국 밥상을 차려주면서 "한여름에 아기 낳고 땀 뻘뻘 흘리셨을(몸조리나 제대로 하셨을까?)" 어머님을 생각한다. 문열이 첫딸은 돌도 안 되어 죽고, 큰아들은 여섯 살에 여의고, 둘째 딸은 6.25 전쟁통에 장질부사로 열 살 나이로 잃어 둘째아들 보스코가 맏이가 되었단다


보스코가 중딩1 때 돌아가셨으니 당초부터 사진틀 속에만 얌전히 계셔서 시집살이라곤 도시 모르고 살아온 전순란은 어머님의 사진에 대고 "50년 살아보니 정말 좋은(= 순하고 착하고 아내에게 말 잘 듣는) 남편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고 인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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