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7일 목요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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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면 이웃과 나눌 것 하나가 꽃이나 모종이다. 내가 이웃 소담정 도메니카에게 준 새우란은 그 집 마당에서는 한쪽을 가득 채웠는데, 우리 집 화단에서는 새우란이 사라지고 안 보인다. 그래서 다시 역수입했지만 올해 보니 또 자취가 없다


여수 사는 양선생님이 보내주신 분홍색 루드베키아도 작년에는 화단 한 쪽에 가득했는데 올해는 구절초의 기세에 밀려 딱 두 포기가 살아남았고 화단 밖에서 겨우 뿌리 내린 두 포기를 화분에 키워 구절초를 캐고 그 자리에 어제 옮겨 심었다. 다행히 양선생님이 심어주신 분홍색 덩쿨 장미는 잘 커서 올봄 휴천재 마당 난간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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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이웃이 꽃모종을 달라면 얼른 내줘야 한다. 어디에서나 그 종자가 살아남아야 하니까. 도정에 체칠리아는 자주 내게 모종을 얻어간다. 어제는 능소화 세 뿌리와 아주까리 모종 20개를 갖다 주었다. 그 집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그 밑에 심으면 바위를 타고 올라가 100년쯤 후에는 마이산 탑사 능소화처럼 멋지게 피어오를 날을 기대해 본다


우리 집에는 두 가지 종류의 능소화가 있는데 하나는 꽃줄기를 늘이면서 운치 있게 피어 내리는 토종 능소화와 색이 좀 진하고 꽃잎이 뒤로 접히며 무더기로 피는 외래종이다. 외래종 능소화는 독일 가문비 나무를 타고 올라가 꼭대기까지 무더기로 피는데 역시 토종이 훨씬 운치 있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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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까리는 한번 심으면 (옛날처럼 아주까리기름을 짜서 쪽진 머리에 바를 일이 없으니) 그자리에 씨앗을 떨구어 머잖아 아주까리밭을 이룬다. 연한 잎은 호박잎과 같이 쪄서 강된장에 쌈 싸먹고 나머지 잎은 삶아서 말려 묵나물로 해 먹으면 식감이 아주 좋다. 이 아주까리잎 나물은 내 친구 한 목사가 특별히 좋아해서 아주까리 잎을 보면 그미가 생각나지만 갖다 주기에는 거리가 멀다.


어제 모종을 전달받은 체칠리아는 오늘 심고 내일은 부산엘 간다는데 예보된 비는 오늘도 안 내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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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에서 내려오는 길에 강영감네 논에 까마귀 한 마리가 소란스럽게 우짖는다. 동료가 하나 오자 까마귀가 죽은 까마귀 깃털을 물고 와 사건을 설명한다. 그것을 들은 다른 까마귀들이 전신주에 앉아 곡성을 하는데 (물까치떼의 짓이라고 성토하는 것도 같다네 마리 중 하나가 유난히 곡성이 컸는데 기어이 다른 까마귀와 부등켜 안고 곡하는 시늉까지 보인다. 참 의리 있는 동물같다


요즘 한국 산야를 독차지하는 물까치는 사냥 목록 1호에 등재하여 퇴출해야 한다. 떼지어 살면서 까치, 까마귀, 심지어 황새까지 다 공격하고 몰아낸다. 고양이나 사람도 공격한다. 텃밭에서 일하는 나도 두어번 어깨와 뒷머리를 날개로 치고 간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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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에는 태평씨에게 티셔츠와 목장갑을 주려고 운서로 산보길을 잡았다. 바람 없는 언덕길을 한 손엔 로사리오를, 한 손에는 부채를 부치며 오르는데 이미 윗옷은 땀에 흠뻑 젖어 한여름 소서가 왔다는 걸 일러준다. 시작이 있으면 늘 끝이 있는 법. 여름이니까 그러려니 두 달만 버틸 생각이다.


우리를 맞은 태평씨 부부가 답례로 자기 집에서 기른 닭이 낳은 유정란 30알을 판째로 내준다. 달걀 나르기 경주도 아니고 5Km는 족히 되는 길을 달걀 판을 불룩배 앞에 안고 갈 보스코의 얼굴이 난감하다. 내 이름이 돈보스코의 엄마 맘마 말가리타임을 사무치게 깨우치며 내가 매고 간 간이배낭에 계란 30개를 넣고 깨질세라 색시 걸음으로 조손조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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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리를 걷자니 옷은 땀에 젖고 긴장한 다리는 쥐가 날 지경이다. 집에 와서 배낭을 열어보니 단 한 개도 안 깨지고 얌전한 얼굴로 날 올려다 본다. “그래 잘했어! 당장 삶아주지!” 집에서 받은 싱싱한 계란이라 오늘 아침 먹어보니 맛이 좋았다.


새벽부터 실내온도 30도를 기록하는 요즘 더위도 해가 지면 좀 시원해져 새벽녘이면 차렴이불이라도 찾는다. 그것으로 '! 오늘도 하루를 넘겼구나!' 위안을 삼는다. 아침기도를 올릴 적마다 "오늘 새벽까지 우리를 살게 하신" 분께 감사드리는 구절이 갈수록 뜻깊게 울려온다. 


오늘 저녁, 먹을 물을 기르러 휴천재에 올라온 소담정 도메니카가 날씨가 더워도 에어컨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전기료가 올랐다며 에어컨 사용을 조심하란다. 집권 하자마자 전기요금을 올린 셈인데 '모든 원인이 원전을 폐쇄한 문정권 책임'이라는 윤가의 주장과 언론의 거짓말이 볼만하다. 문정권 하에서 실제로 폐쇄된 원전은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저 무지한 인간과 바람막이 기레기들을 어찌 할까나? 빨리 답을 찾아야 나라가 살겠다.


다음 주 서울을 가자니 집 안팎을 단도리해야 돌아와 고생을 덜한다. 오늘 새벽 다섯 시에 뒤꼍 비탈의 시누대를 자르고 집뒤 축대 위 한길가 풀도 낫질을 했다. 구장네 논에 물 대는 호스가 지나는 자리라 전에는 구장이 예초기로 풀을 깎았는데, 이제는 내가 손질해야 한다. 일제 때 중딩 사내아이의 빡빡머리처럼 매끄럽던 구장네 논두럭들은 더 이상 볼 수 없겠다. 머잖아 타는 약’(제초제)을 뿌려 논두럭을 벌겋게 만들어 놓으리라는 생각만으로도 심란하다. 사람이 드는 자리는 몰라도 나는 자리는 이리도 표가 나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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