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630일 목요일. 흐림


오늘로 금년 한 해도 절반이 간다. 나이 70줄에 들어서니까 내 인생도 시속 70km로 내닫는다. 요즘 하늘을 보면 비라도 한 차례 걸게 쏟아부을 태세인데, 습하고 더운 장마의 특징을 빼고는 화분에 꽃이 말라갈만큼 비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날씨다. 서울 일원에서는 물난리가 걱정될 정도로 많은 비가 내리는 중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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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어제 오늘 뒤꼍에서 대밭 손질을 했다. 지난 10여년 시누대를 잘라내고 오죽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주어 이제 휴천재 뒤안길은 거의 오죽밭이 되었고 휴천재를 돌아 문상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시야에서 휴천재 방방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대나무로 가려져서 좋다. 


다만 휴천재 뒤안에서 쫓겨나며 살 길을 찾아 기동씨네 밭으로 죽순을 올리는 시누대 때문에 한동댁의 항의가 나오기도 한다. “저 시누대 좀 어떻게 해 봐요!” 대나무는 아랫집 진이아빠가 심었으니 그 사람에게 말해요.” 진이엄마에게 말하니 집주인이 교수님이라서 자긴 모른닥카드만.” "... ..." 난들 어쩌랴, 우리집 벽 밑까지 파고드는 대나무의 그 억센 생명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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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루가 산청 공장 사택에 바짝 붙여 대나무를 새로 심었기에 맘고생 안 하려면 당장 뽑아내라는 조언을 해주면서도 나 역시 과거에는 대나무에 속수무책이었다. 서울집 이웃에서 이사 간 정선생댁에서 30여년전 옮겨 심은 산죽 서너 뿌리가 지금은 마당 전부를 헤집고 다녀 지금도 서울에 가서 정원을 보살피려면 산죽과 생사를 건 전투를 벌여야 한다


어제는 오랜만에 휴천강변으로 송전길을 걸으며 로사리오를 했다. 인적 드문 길이라 지나가던 군내버스 막차가 깜빡이 등을 켜서 인사를 건네고 지나간다. 요 몇 해 우리 부부가 늘 산책하던 모습이 눈에 띄었을까? 송전에서 나오던 길에는 아예 차를 멈추고 기사가 창을 내리고 큰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자세히 보니 우리 동네 한동댁 사촌오빠. 읍내 차부에서 한동안 검표원으로 일했는데 다시 버스를 몰고 있었다. 내가 문정리 산다는 걸 알고 차부에 갈 적마다 살갑게 대해주던 아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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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댁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유산으로 집터를 외동딸 한동댁에게 주지 않고 저 사촌에게 남겼다. 그래도 사내붙이여서 당신에게 제사를 올려 달라는 유언과 함께. 자기 제사를 지내 주고 한 해 한번 음식을 차려준다는 게 돌아간 혼령에게는 그렇게나 중요한 일이었을까? 그 얘기를 꺼낼 적마다 딸은 열 있어도 소용없다!”고 원망하던 한동댁의 푸념이 생각난다. 몇 해 후 한동댁이 그 사촌오빠에게서 그 땅을 되샀고 제사도 딸이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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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정자에서 부추를 다듬으며 드물댁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 한길에 사는 상동댁에겐 네 명의 아들이 있는데, 큰아들은 딸만 둘 낳고, 둘째는 장가도 안 가고, 셋째는 애 안 낳기로 작정하고서 결혼했단다. 그런데 넷째 아들이 고등학교 때 사고를 쳐서처녀가 아이를 배자 학교는 작파하고 결혼을 시켜야 했단다


처녀에게 느그들 나이도 어리고 힘도 드니 담에 하나 더 낳고 이 애는 놈 주자.”는 사내 쪽 어머니 타협에 처녀가 절대 안 된다. 내 손으로 키우겠다고 떼를 써서 하는수없이 결혼을 시켜야 했단다. 그렇게 태어난 손주는 철부지 엄마 대신 친할매 손에 컸고 딸도 하나 태어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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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그 시어머니 하는 말. “난 아들 네 개나 놓았는데 막내아들에게서만 딸랑 손주 하나. 만약 걔를 놈 주었다면 우린 제사도 못 받아먹을 뻔했다.” 이 근방에선 아들 하나 보려고 각시를 서넛 본 영감도 있고, 아들을 보자고 딸을 일곱이나 낳은 아낙도 이 동네에 있으니 말하자면 여기서도 여자의 효용성은 아들을 낳는데 정점을 찍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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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 일어나 텃밭 도랑에 양편으로 호랑이 새끼 칠 만큼자라 오른 풀을 싹 뽑았다. 여름에 특히 장마철에는 뽑고 돌아서면 '나 요기 있지롱!' 하고 풀들이 사람을 놀린다. 하는 수 없이 감자 캔 후 가을까지 놀리기로 한 이랑에 오늘은 부직포를 덮기로 했다. 드물댁이 올라와 함께 끝을 당기며 고정핀을 양쪽에서 꽂으니 일하기가 수월했다


품삯으로는 잘 익은 방울 토마토를 양껏 따먹는 것으로 퉁친다. 올 첫 옥수수 수확을 따서 드물댁과 나누어 먹기도 했다. 이렇게 산골의 나날은 역사에 남을 일도 없이 잘도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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