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67일 화요일. 흐림


서울집 마당 구석에 작년에 떨어진 방울 토마토에서 싹이 많이 나왔기에 앞집에 몇 모종 갖다 주러 갔다. 아줌마가 유난히 힘이 없어 보여 사연을 물었다. 그 집 가족에 커다란 참사가 일어났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


작년에 방학동 살던 마흔 두 살의 딸(그미가 초딩 때부터 우리와 알던 사이고 걔 오빠는 빵고와 초등학교 동기)이 가족여행을 가기 전날 콘센트 과열로 집에서 불이나 두 아들과 시어머니까지 넷이 죽었단다. 사위와 사돈노인 둘만 살아남았고 두 홀아비가 살아가는 모습이 도저히 못 봐주겠단다. 내가 지리산 멀리 살다 보니 지척에 사는 이웃의 아픔마저 모르고 지나가 내 무심함을 사과하고 오늘 저녁기도 중에 졸지에 세상을 떠난 그 식구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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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농민회’ 회장을 했고 나와는 우리밀살리기운동도 같이 한 정재돈 회장이 돌아가셨다고 알려왔다그러고 보니 90년대 사회운동을 함께 했던 분들 중에는 살아계신 분들보다 돌아가신 분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남은 날이 적지만 겨울바다에 가보았지라는 어느 시인의 시구대로 머쟎아 우리 부부에게도 닥칠 그 시간을 담담히 준비하는 심경이 차간다.


우리동네는 고만고만한 지붕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어 열린 창문을 통해 이웃집 속내를 그집보다 더 잘 알고 지낸다. 또 한 자리에서 45년을 살다 보니 집 앞쪽에서만도 비운으로 죽어간 이들이 집집에 꼽히면서 기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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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 집 건너 살았던 쌍둥이 아빠는 교통사고로 갔고, 그 옆집에서는 할배가 몸이 너무 아파 뒷산 소나무에 목을 맸다. 그 골목 안집 중풍 할매는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끓는 물에 질식사했다. 그 아랫집 아저씨는 친구들과 올갱이 잡으러 개울에 갔다가 미끄러졌는데 술을 마신 터라 심장마비로 죽어 '접시물에 코박고 죽었다'고 동네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우리 바로 뒷집에 세 살던 처녀 가장의 여동생이 대학을 재수하다 심적 부담을 못 견뎌 친구랑 동반자살한 것도 20여년전의 참극이다.  보스코와 로사리오를 바치노라면 보스코가 이 동네만도 집집이 살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한 사람 한 사람 꼽으면서 둘이서 성모송 한 알씩을 굴리곤 한다. 자연사든 사고사든 모두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생자필멸의 이치 앞에서 '죽은 이들을 사랑하는' 보스코의 맘씨가 따뜻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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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더니 뒷집 연립의 뽀로로네 할매’(그집 손주들이 자라면서 밤늦게까지, 새벽 일찍부터 '뽀로로' 소리가 들렸다)가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고 푹푹 거리고 있다. 사연인 즉 4층에 세 사는 대학교 2학년 청년이 86살 먹은 당신 남편에게 쌍욕을 해서 분을 못 삭이는 중이란다. 그런데 더 걱정은 그 얘기를 남편이 아들에게 했다는 거다. 체대에서 레슬링을 전공한 아들이라 그 철부지 청년에게 뭔 일을 일으킬까 무섭단다


할매네 아들이 지입제 탑차를 해왔고 1년 전부터는 며느리도 큰손주를 옆자리에 앉히고 탑차를 하나 더 사서 함께 일하는 중이란다.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오다 보니 골목에 주차하기 힘들어 자기네 빌라 앞에 세울 수밖에 없단다4층 대학생도 '똥차' 한 대를 몰고 다니는데, 탑차 주인이 우리 차가 높아 지하차고에 못 들어가니 학생이 지하에 좀 세우면 어떻겠냐?’고 부탁을 했더니만 말이 안 먹혀 언성이 높아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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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새벽이나 밤늦게 탑차가 엔진소리를 낸다며 그 청년이 경찰에 '영업용차량이 차고지 없이 무단주차한다'고 고발했더란다. 할매는 '코로나로 이 어려운 시절에 서로 먹고 살려고 버둥대는데 이웃이 돕지는 못할망정 어찌 그럴 수 있냐?'고 언성이 올라갔고 화가 나 따귀라도 한 대 갈기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는 하소연. 제법 산다는 아파트촌에서도 층간소음으로 칼부림까지 나오는 터에 요즘 젊은이들 우리와 의식구조가 다름을 한탄하는 노인세대. 


언니, 잘 참았어요. 한 대 올라갔으면(벌금) 200만원이라는데 돈 좀 벌어 놨어요?” “아니, 나 돈 없어.” “언니, ‘이 싸가지 없는 놈아, 느그 부모 속께나 썩겠다!’ 욕하고서 참으세요. ‘내 새끼가 효자라 그나마 다행이다!’ 위안 삼으시고요.” 할매는 나에게 푸념삼아 젊은이 흉을 실컷 보고는 분이 풀려 휘적휘적 집으로 연립으로 들어갔다. 정말 쌍문동 1988’의 골목 풍경이다.


오늘 아침 내 손가락을 풀어보고 다시 드레씽한 의사는 내일 점심 직후 한번 더 치료받고 지리산에 운전해 내려가도 좋다는 진단을 내렸다. 오른손 못 쓰는 아내를 위하여 보스코는 설거지를 도맡고 생전 처음 아침상도 차리고 내 생머리를 땋아주고 손톱도 깎아주고 원피스 단추를 채워주는 등 제법 행세를 하는 중이다. 오늘 마당 아기덩굴장미와 대추나무 감나무에 마지막 소독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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