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62일 목요일. 맑음


수요일 아침 9시 45. KTX를 타고 천안에 갔다. 천안 용곡동 성당에서 11시에 있는 샤를 드 푸코 시성 기념 미사에 참석하러 가는 길. 내게 기차를 타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고 그것만으로도 흥분된다. 그런데, 아쉽게도 40분도 안돼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오니  뭔가 둘린 듯한 기분. 우리 큰딸 이엘리가 먼저 와서 기차역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다 행사장까지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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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드 푸코 신부(Charles de Foucauld 1858~1916)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나 여섯 살도 못되어 고아가 되고 청년 시절 신앙을 잃는다그 뒤 군인 장교가 되어 아프리카 알제리와 튀니지로 파병되어 근무하다 금지된 땅 모로코를 2년 동안 탐험하며 사막의 고독과 무슬림 신앙에 깊은 감명을 받아 회심한다. 그 뒤 온 생을 하느님께 바친다. ‘나자렛 예수의 가난한 삶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고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들어가 사제서품을 받고는 가난한 알제리 사하라 사막 유목민 트와레그족의 친구요 형제로 살다가 1916년 은신처에서 강도들에게 살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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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남겨진 사진을 보면 나자렛 예수의 실물 얼굴, 아씨시의 실물 얼굴이 저랬으리라는 느낌을 주는 도사의 면모다. 지난 2022  515일에 성인(聖人)으로 시성(諡聖)되어 그분의 뜻대로 살아온 이들이 오늘 천안에서 축하미사를 함께 드리게 되었다 가난이 나를 구원했다는 유명한 명제를 남긴 현대 성인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분의 영성을 따라 살아가는 예수 까리따스 우애회, 샤를 드 푸코 재속 우애회, 예수의 작을 자매들의 우애회, 예수의 작은 형제회, 예수 까리따스 사제회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우리는 '작은 자매회' 수녀님들과 80년대부터 오랜 우정을 맺어 왔고 '작은 형제외' 신관 수사님과도 친분이 있어 오늘 초대받아 간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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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로마 유학시절 6년간 트레폰타네에 있는 총원에서 아마 적어도 백 번은 밥을 얻어 먹었을 꺼다. 그 수녀원은 끼니때 찾아오는 노숙자들과 손님 누구에게나 밥을 주었다. 가난하게 사는 가난한 수도회일수록 더 나눌 줄을 안다. 그때 만나서 친구로 지낸 많은 수녀님을 오늘 만났다. 40년 세월의 강물이 얼굴에 물결쳐 시간의 자국을 남겼어도 골골이 남은 우리의 우정엔 변함이 없다


그분들의 기억에 아직도 남아있는 당시 여덟 , 세 살 빵기 빵고와 30대의 애기엄마는 세월이 흘러 하나는 48, 하나는 43세의 중년나이고, 엄마는 70 고개를 숨이 턱에 차게 넘었다. 그래서 수녀님들은 아직도 나를 빵기엄마라 부른다.

그 밖에도 내 일기의 패친이어서 나를 반가워하는 안남옥 자매와 이름을 못 물어본 이들, 함양의 도나타도 만났다. 투병 중이면서도 도통한 얼굴을 한 신관 수사님도 만났다. 푸코 성인께서 마련하신 만남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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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분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와 서부역에 내렸는데 빵고신부가 기다렸다가 맞아 준다. 투표일이라 시간이 났는지 형과 저녁을 하잔다. 빵기의 대자 천주의 엄마(‘천주의 모친’) 블란디나가 와서 모처럼 한데 모인 우리 네 식구에게 저녁을 사주었다. 아들들이 와 있으니 시간이 두 배로 빨리 가는 듯하다.

지방선거에서 진보가 왕창 깨지고 보수가 다시 득세해서 거들먹거리는 꼴이 가관이다. 다행이라면 진보당이 크고 작은 자리 21곳을 차지했고, 정의당은 6곳을 차지하여 제3당의 위상을 차지했다니 우리 꼬맹이에게 축하전화를 해주었다. 여기는 한국. 모든 것의 속도가 인터넷에 비례해서 바뀌니까 4년 후에 저자들의 꼴이 어찌 되나 두고 볼 일이다. 아침에 보스코의 심기가 (선거 때문에) 몹시 불편했는데 빵기가 잘 풀어 주었다. 역시 젊은이들의 생각은 많이 다르고 진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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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가락 수술에 염증이 생겼다 하여 오늘 아침 병원에 가서 치료 받고 내일 3일에 지리산 내려가려던 계획을 접었다. 적어도 한 주간은 더 서울에 머물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단다. 회복 기간이 많이 길어지겠다. 내 계획대로 안 되는 일은 복병처럼 숨어 있다 딴지를 거는데, 그게 때로는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도움도 된다.

오늘 낮 12시에 한길사 김언호 사장님이 집으로 찾아오셨다. 보스코 친구 출판인 김영준씨는 그를 출판사상가로 높여 부른다. 역사가 건너야 할 중요한 구비마다 책으로 다리를 만들어준 그분은 우리 사회의 보배다그분의 출판 사상을 담은(한길사 창립 44주년 기념 기획으로 나온) 그 해 봄날(2020)김언호의 세계서점 기행(2916)을 갖고 오셨는데(보스코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을 답례로 드렸다)  그 해 봄날에서 나의 스승 안병무 박사님 사진을 발견하고 너무 그리워 눈물이 왈칵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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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그렇지 않다는 것으로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불의부정한 놈들이 난무하는 세상과 맞서 싸우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말씀 때문이다. 유신시대보다 지금이 그만큼 발전했다 말할 수 있을까? 오늘 다시 떠오른 선거판의 붉은 지도가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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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에는 가톨릭신문사 기자가  오는 12삼위일체대축일의 특집기사를 쓰면서 보스코와 인터뷰를 하러 왔다. 재작년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번역 주석으로 그 신문사로부터 가톨릭학술상을 받은 보스코에게 삼위일체 신비의 현대적 의미를 묻는 인터뷰였다. 내 보기엔 기자가 3시간에 걸친 아우구스틴의 삼위일체론 집중 강의를 듣고 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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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 빵기가 2주간의 한국 출장을 마치고 아내와 두 아이가 기다리는 제네바로 돌아갔다. 생필품을 가득 담은 커다란 가방 셋을 밴에 싣고 떠나는 모습이 어엿한 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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