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8일 일요일. 맑음


금요일 이른 아침에 보스코는 서울행 시외버스를 탔다. 장충동 분도수도원에서 분도출판사 창립 60주년기념행사를 한단다. 그 집에서 많은 책(25)을 번역 출간한 사람으로 당연히 축하해 주겠다고 올라갔다. 내가 운전하는 일을 꺼리기 시작하고 서울행이 워낙 트라픽이 심해서 그가 혼자 갔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왜 부인은 함께 오지 않았냐?’ 묻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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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수십년간 ‘1 + 1’로 살다 보니 그가 공식으로 등장하는 모든 곳에는 바늘 가는 데 실이 당연히 갔었다. 나도 갈까 말까 망설이긴 했다. 1973년 결혼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그의 첫 번 직장인 대건신학대학에서 발행하는 신학 계간지 신학전망 神學展望마지막 교정(‘O.K. 교정’)을 보러 출장 가는보스코를 따라 왜관 분도 수도원에 첫 나들이를 했다. 그곳에서 성바오로 수사님이 보스코와 종씨라고 새 색씨인 내게 얼마나 친절하게 해주셨던지 철도 없이 그 뒤론 남편을 따라 왜관 수도원을 드나들었다. 50년 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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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펴낸, 학문적으로 무게 있고 중요한 책은 거의 분도출판사에서 나왔다.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解放神學)(1977)을 비롯한 번역서 12, 신국론(神國論)(2004)을 위시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 12권의 라틴어-한글 대조본 역주서(譯註書)가 분도출판사에서 나왔고 그 중에서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De civitate Dei)역주는 2004년에 서우철학상을, 삼위일체론(De Trinitate)2020년에 가톨릭학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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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침 730분에 휴천재에서 떠나 밤 10시에 돌아왔다. 그가 없는 시간 나는 도정 스.선생님과 함께 휴천재 2층 테라스에 망가진 데크의 방부목을 뜯어내고 새 방부목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했다. 빠루(노루발) 두 개를 서로 나눠 들고 낡은 나무를 뜯어내는데 손이 망가진 나로서는 퍽 힘든 작업이어서 엄마 젖 빨던 기운까지 다 짜내느라 기를 썼다. 내 속도 모르고 스.선생님은 내가 일을 아주 잘한다고, 우리 둘이서 한 팀이 되어 집수리를 나가면 요즘 오전 두 시간 작업에 20만원은 받는다니 일당 40만원은 쉽게 번다니 그걸 반땅하자는 농담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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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단독주택을 유지하며 살다 보면 온갖 곳에 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 집 구름 위에 두둥실 떠서 사는 선비 양반은 어디가 망가졌는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알지도 관심도 능력도 없으니 팔자 하나 참 좋은 남자다. 예컨대 며칠전 고장난 휴천재 기름보일러를 수리하러 기사가 나 없는 틈에 왔을 적에도 그 보일러가 뒤꼍 어디에 설치되어 있는지, 그 스위치가 어디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추우면 옷 껴입으면 되고’ ‘망가지면 누군가 알아서 고치겠지하는 배짱으로 기다린다. ‘하느님과 마누라의 커다란 은혜에 기대어 의탁하고 오로지 감사하며 살아가는, .선생 말마따나, 천하에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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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에는 대파 모종을 사다가 심고 잎이 누렇게 마른 쪽파 씨는 뽑아 엮어 정자나무 귀퉁이에 걸었다. 올 가을 김장 쪽파를 갈 차비를 한 셈이다. 울 엄마가 파농사에는 워낙 농약을 많이 하니 땅이 한 뼘만 있으면 꼭 손수 심어서 먹으라고 하셨다. 내가 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흙과 지내는 시간을 좋아하는 것도 엄마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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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토요일 오전 책바오로’(성바오로수도회)의 이수사님이 전화를 했다. 전날 자정에 동서울에서 떠나는 버스를 타고 산청 단성에 도착해서 대원사 쪽으로 야간등산을 하여 아침 8시에 천왕봉엘 올랐단다.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길인데 휴천재엘 들르겠단다. 나야 무조건 좋으니 언제라도 오시라고 했더니 1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다


우리집에 아들이 둘이라도 어버이날찾아올 만한 아들은 없을 테고 당신이 위문공연을 하겠다면서 수사님은 앙증맞은 카네이션 바구니와 포도주병(‘하미앙’)을 들고 왔는데, 마천에는 산삼이나 있지 저런 게 없어 혹시 서울서 사들고 지리산 천왕봉을 올랐나 괜한 걱정까지 했다.


이수사님 친구로 산청에 귀촌한 부인과 주말부부로 지낸다는 배선생도 불러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배선생은 무려 35년 주교회의 사무실에서 근무한 가톨릭인사이고 그가 경향잡지를 담당할 적에는 보스코의 성염 교수의 살아온 이야기도 일년간 연재해준 적 있었다.


http://donbosco.pe.kr/xe1/?mid=s_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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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일에는 공소회장 토마스가 출장을 가서 보스코가 그를 대신해서 공소예절을 주관했는데 이수사님까지 합쳐 교우가 다섯 명이었다. 아침식사 후 이수사님을 인월까지 배웅해주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마천 중국집에서 쟁반짜장을 사들고 돌아와 혼자 있던 진이 엄마랑 셋이서 어버이날 파티를 했고, 저녁에는 혼자 있는 미루가 바쁜 시간을 쪼개 카네이션을 들고 찾아와서 우리 두 노친네가 어버이임을 톡톡히 일깨워 주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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