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5일 목요일. 맑음


내가 요즘의 밭 일로 지쳐서 늘어진 모습에 진이 엄마가 동지로서 격려를 한다. “겨우내 놀다가 블루베리 밭에 나가 하루 종일 일을 하노라면, 첫날은 꼭 죽을 것만 같아요('기왕 벌려 놓은 일이니 올까지만 버텨 보고 차츰 접으리라'는 결심도 하죠). 그런데 둘째 날은 견딜 만하고, 세번째 날이 되면 해 볼만 해져요.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한 해 한 해를 넘기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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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 맞다. 첫날 일하고 돌아 와서는 자기 전에 진통제를 먹고도 밤중에 일어나 다시 진통제를 찾았다. 그런데 둘째 날은 온몸이 뻐근했어도 약 없이 견디고 잤다. 어제 아침에 일어나니 감당할 만했다. 그래서 동네 아짐들이 앞 산에 가서 하루 종일 고사리 꺾고도 이튿날은 더 먼 산으로 다래순을 따러 간다. 인생은 어차피 버텨 내는 것이니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자.


힘들다고 누워있으려니 그 또한 안될 일이라 보스코를 채근해서 어제 오후 산보를 나갔다. 송전 가는 길 강 옆으로 겨우내 포클레인을 불러 택지 다섯 필지를 닦은 터에 주인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나와서 고추, , 참깨를 심고 있다


수천 만원을 들여 닦은 저 땅의 소출은 아마 백만 원도 안 나올 게다강 건너 사과밭 주인이 며칠 전 우리한테 하소연하던 말. 작년에 사과 밭에 전지하고 약 치는데 500만 원이 들었는데 고작 사과 네 상자를 수확했다며 "한 상자에 백만 원도 더하는 금사과를 먹었노라"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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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지천으로 피는 찔레가 너무 청초해서 슬프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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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년의 우리 배농사도 비슷했다. 다만 우리가 농사를 포기하게 되면 돈이 있다고 해서 자동차를 삶아 먹거나 컴퓨터를 끓여 먹을 수는 없으니 농사꾼들이 사명감을 갖고 먹거리는 생산해야 할 게다가끔 시골에서 농사 안 짓고 사는 법을 궁리하는 친구들이 있는데(그런 논지로 글도 쓴다) 내 생각에는 시골에 살면 시골 사람들처럼(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농사는 꼭 지어야 한다. 기역자 허리로 밤늦도록 밭에서 부스럭거리는 할매들 처지도 이해하고 내 손으로 지은 소출을 내 밥상에 올리는 기쁨을 맛보며 땀 흘려 이루는 보람도 느껴볼 일이다.


아래층 진이네는 30년 지어온 농사에서 진일보 하여 자기 손으로 집까지 짓고 있어 정말 부럽다. 나도 해보고 싶다. 우리 테라스 방부목이 서너 장 썩어 교체해야 하는데 톱질이나 못질 잘못했다가는 큰일 난다며 '돈 주고 사람 시키라'는 협박인데 수긍이 안 가 속상하다. 다음에 태어나면 난 목수가 되고 싶다. 집도 짓고 여러 가지 목재와 놀겠다며 어서 날이 새기를 기다리는 그런 목수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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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보에서 돌아와서 기욱이네 대밭에서 대나무를 베다 보스코랑 우리 텃밭 토마토와 오이, 가지 모에 지주를 해주고 고추에는 지주를 박고 끈을 둘러 쳤다. 사람의 정성이 들어가야 초목도 호응을 한다.


오늘 오후에는 돌쟁이 머리칼 만큼 자란 부추를 베다가 서너 시간을 다듬어 오이 소박이와 부추 김치를 담았다. 주부가 들인 노력과 시간에 비해 참 하찮은 결과라고 저런 김치를 얕볼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중년을 넘어 노년에 들어서며 우리 하루하루와 하는 일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리라.


어린이날이어서 진이도 한빈이를 데리고 천안에서 왔다. 아기에게 축하하는 뜻에서(내일 서울 다녀올 보스코의 차표를 끊어올 겸) 읍내 나가 케이크를 사다 선물해 주었다. 우리 딸들과 두 아들에게도 내가 '어린이 날'을 축하하니까 자기넨 '어른이들'이라 인사 받기가 좀 쑥스럽다며 반긴다. 작은아들은 태국으로 회의 차 피정 하러 공항에 나가는 중이었고, 큰아들은 5월 하순에 회의 차 잠시 귀국한다며 3년만에 엄빠를 만나 반갑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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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에 놀러온 손녀들인지, 초딩 여자애 둘이 우리 마당에 들어와 두리번거린다. “집구경 해도 돼요?” “이 집 몇 평이나 되죠?” “우리 할머니 집보다 엄청 커요. 우린 두 채지만.” “이 집 살 때 (땅) 얼마 주었어요?” “지을 땐 얼마나 들었고요?” 사내들만 키워본 나로서는 저 소녀들의 놀랍게 조숙한 경제 관념과 속사포 질문에 어리둥절하여 글쎄다, 너무 오래 전이어서 기억이 안 나는구나.” 얼버무려야 했다.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세상 물정에 훨씬 밝다. 


가을에 필 쑥부쟁이가 철모르고 피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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