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1일 일요일. 맑음


달리는 길마다 이팝나무가 고봉으로 피어 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저 눈부신 흰꽃송이가 밥알로 보였을까! 해마다 넘어야 할 보릿고개가 가까워질수록 자식들을 배불리 먹이고 싶다는 어머니들의 간절한 소망이 나무 가득 꽃으로 피어났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꽃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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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이팝나무 길을 달려 2년 반 만에 산청 성심원 성당으로 미사를 갔다. 임신부님과 이사야는 산티아고로 순례를 떠나고 맘씨 착한 미루가 최근에 외부인 출입금지가 완화된 성심원으로 봉재언니를 모셔다가 함께 주일미사를 드리게 배려했다.


오랜만에 간 성심원 성당엔 한센인 노인들 얼굴이 많이 사라졌고 그 자리를 장애우 젊은이들이 채우고 있었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은 늘 너희 곁에 있을 게다하시던 주님 말씀대로다. 더구나 오늘 복음 말씀이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삼세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제자 베드로가 그 과오를 만회하여 삼세번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자리다. 미사를 집전한 유신부님이 , 주님 저는 당신이 좋아요.”라고 풀이하신 대로 프란체스칸들은 좋은 몫을 택해 구체적인 선행으로 주님을 따르는 모습이다.


보스코의 부활 제3주일 복음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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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가 끝나고 구내 묘지(납골당)를 찾아가 며칠 전 49제를 지낸 김현수(모세)씨에게 성묘했다. 프란체스코 제3회 회원으로 열심히 살다가 떠났으니 고통 근심 없는 주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리라. 10여 년 전 휴천재 텃밭에 놀러와 창고를 조립해주던 든든한 몸짓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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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리산 청학동 묵계리에 사는 오마리아 교수님이 우리를 초대하신 날이다. 오교수님은 정념 퇴임 후 20년 넘게 그곳에 은둔하신 AFI 수도자로 2년 전에 교통사고로 이웃에 사는 강신부님의 권유에 따라 하루아침에 당신의 차를 폐차하고 면허증을 반납하고 키우던 개까지 처분하는 용단을 내리고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고 편안한 마음으로 노후를 살고 계신다(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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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오랜 친구인 봉재 언니도 건강 상태로 보아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으면 주변 친지들이 훨씬 수월할 텐데 자신을 바보 취급을 한다고 역정을 내니 지인들은 늘 그분 곁에 있어 주지 못하는 처지여서 참 답답한 노릇이다. 예전에 울 엄마에게 이리저리 하시라고 일러드리면 내가 뭘 아냐 너희들이 시키는 대로 앉으라면 안고 서라면서니까 너희들 뜻대로 해라고 호응하셨는데, 막다른 노경에서 당신의 처지대로 자식들의 뜻을 수긍해 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언니의 경우를 보면서 절감하는 중이다. 머지않아 내게 일어날 앞날에 대해 요즘 많은 생각을 하며 공부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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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계리 신앙공동체의 중심에는 강신부님이 계셔서 신앙과 생활의 지주로서의 몫을 톡톡히 하신다. 거석리 계곡에서 오교수님이 사주신 점심을 먹은 후 강신부님 댁으로 돌아와 커피를 들며, 요즘은 집필을 하시면서도 "우리가 마지막 하는 공부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공부'임을 절감한다"는 강신부님 말에 전적으로 찬동했다. 나이 들수록  아집을 버리고 나를 다스리는 게 인생을 매듭짓는 순순한 준비임을 깨닫는다. 팔순 나이에 들어서니 세월이 80km 속도로 내리닫더라는 오교수님 말대로, 금년 2022년도 4개월을 흘려보내고 5월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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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에서 돌아오며 해거름에 남호리에 들려 우리 밭 신선초의 호기로운 성장을 본다. 저 풀이 그 밭을 다 차지할 날이 머지않아 보여 안심은 하지만, 개망초가 여전히 실한 것으로 보아 봐주지 않는 생명일수록 질기다는 인생 밑바닥의 이치가 여기서도 통하는 것 같다. 취나물이 지천이어서 한아름 뜯어왔다.  가난한 사람들도 질기게 살아

남으라고 하느님은 정말 많은 먹거리를 마련하셨다. 산에만 가면 나는 부자가 돼서 돌아온다.


문재인 정권의 아마추어 같은 정치개혁에 탄식해오던 보스코는 대통령 퇴임 며칠을 남겨 두고 그래도 국회가 검찰개혁에 마지막 피치를 올려 게으른 농부 해거름에 바쁘다는 속담을 떠올리면서도 마음을 조금 놓는 듯하다. 그는 정치검찰을 범죄집단으로 간주해온 터다


http://donbosco.pe.kr/xe1/?mid=sung_hb&document_srl=15453

http://m.vop.co.kr/view.php?cid=832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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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보스코가 예초기로 휴천재 텃밭에 풀을 자르는 사이 나는 낫으로 축대 사이에 가시덩쿨을 잘라냈다, 예전에 비해 보스코의 풀 자르는 솜씨는 좀 발전했지만 저녁에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는 그의 손목에 예초기의 진동이 여진을 남겨 떨리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또 나 역시 종일의 텃밭일로 밤새 끙끙 앓은 걸로 보아 과연 언제까지 저 텃밭을 유지 관리할 수 있을까 헤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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