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26일 화요일. 비 내린 후 흐림


너무나 기다렸던 비가 어젯밤부터 시작하여 오늘도 보슬비로 종일 내렸다비오기 전에 고추모를 낸다고 논에 밭에 동네 아짐들이 굽은 등을 더 구부리고 따개비처럼 땅에 붙어 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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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동네 사람들은 마을 입구에 사는 사람의 농약방 집에서 고추모를 단체로 샀다. 이번에도 삼세번째 군의원에 나오는 집이다이웃 백연마을 할매가 마당에서 쓰레기를 태우다 아래채를 홀라당 태워먹어 광에 쌓아둔 나락 네 가마도 재가 되었다는 소문에 농약방 어무이가 쌀 한 가마를 보내주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누구는 인심이 좋아서라 하고, 누구는 아들이 군의원에 출마해서가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초리도 보낸다. 내가 "그냥 그 어르신이 착한 일 하셨구나 하세요."라고 타일렀다. "그집 아들이 우리 면 후보도 아니고 읍내 후보니까 효과도 없는 일에 큰마음을 쓰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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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우리집 휴천재 올라오는 도로에 시멘트 공사하던 날. 그날도 고추모를 판답시고 트럭을 몰고 웃동네에서 내려와서 시멘트 포장을 곤죽으로 만들고선 말없이 가버린 일이 있었다. 내가 약이 올라 농약방에 항의를 하러가서 "우리동네 군의원으로 나오면 절대 안 찍어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더니만 "그 길 포장 때문에 내 트럭을 폐차했다구요"라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도로 포장 하니 출입을 금지한다'는 장애물을 치우고서 트럭을 몰고 내려온 사람 치고는 참 경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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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일찌감치 삶은 쑥과 쌀을 소쿠리에 담아 싣고, 자기 집 마루에서 먼산보기를 하고 있던 드물댁도 싣고 화계로 떡을 하러 갔다. 떡방앗간은 예전 같으면 "서너 시간 담갔다가 떡을 하니 오후에 찾으러 오라" 하는데, "전쟁 나서 기름 값이 올라 아침나절에 한꺼번에 떡을 하니 다음날 찾으러 오라"고 한다


얼마 전까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사는 모조리 "코로나 땜에"였는데 이제는 모든 죄목이 "전쟁 땜에"로 바뀌었다전세계 언론과 민심이 '미국의 소리'가 되다보니 "쏘련놈들 땜에"로 바뀌었다. 마음이 답답하다. 그래도 큰아들 빵기가 5월 하순이면 3년만에 회의차 일시 귀국을 한다니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떡을 하루 정도 늦게 먹는다고 '난리 나는' 것도 아니고, 드물댁이 내가 사준 새우깡 한 봉지를 들고 꽃구경 나왔다 좋아하는 모습만으로 나도 흐뭇했다. 산에는 때늦은 물철쭉, 흐드러지게 핀 이팝나무 가로수를 구경하며 '시상에! 그림이 좋다!'를 노래처럼 되뇌는 그미의 행복감에 나도 취했다


문정 할매들 해마다 가던(몇년간 그것도 못갔다) '어르신 관광 여행'에서 오가는 내내 버스 안에서 방방 뛰며 춤추느라 휘었던 허리는 펴지고 고래고래 유행가에 모두 목소리 쉬어 돌아오던 일이 떠올라 드물댁한테 '노래 한 자리 빼 보셔.' 했더니 '난 지금까정 생전 노래를 한 번도 해 본 일이 엄서.'란다. 그러고 보니 나도 요새 노래 부른지가 언젠지 기억이 안 난다. 시국 땜에, 그놈의 전쟁 땜에 나마저 노래를 잊고 사는 중이다.


오늘 새벽에도 빗소리에 행복하게 눈을 떴다. 화계 방앗간에서 가서 떡을 찾아 돌아오는 길에 승임씨네 들러 봄을 나누고 그집에서 꽃모종도 얻어왔다. 떡 핑계로 인화씨네도 들리고, 상주처녀, 드물댁, 진이네, 가밀라 아줌마, 소장댁, 임실댁에도 골고루 들렀다. 비온 뒤 고추모종 놓느라 모두들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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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못 준 집이 더 많아, 모두와 나누자면 두어 말은 해야겠는데, 그럼 쑥은 또 누가 뜯을까? "논두럭마다 '타는 약'(제초제) 쳤으니까 암데서나 쑥 뜯으면 안 돼요"라는 임실댁이 충고도 내린다. 우리 것은 남호리 산속에서 뜯는 쑥이라 안전하다.


송화가루가 바람처럼 날리는 계절. 휴천재 정자의 탁자에도, 우리 낡은 소나타도 노오란 먼지로 뿌옇게 덮였다. 보스코가 어제 앞마당 반송에 돋아난 송화 꽃대들을 큰 가위로 잘라냈고 오늘 오후에는 내가 다섯 그루 반송에 '쎈 가지치기'로 시원하게 이발을 해 주었다. 외팔이로 하는 소나무 전지여서 잔가지도 톱질이 여간 힘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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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보스코와 로사리오도 바칠 겸 문상 길로 올라가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위아랫 동네 방에 불이 켜진 집이 몇 채나 되나 살폈다. 큼직한 집에 방 하나에만 희미한 불빛과 TV 화면에 따라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그림자가 인적을 보여주는 것 전부어디에도 아이들 소리도, 심지어 개짖는 소리도 듣기 힘들다. 문하에서도 한길의 길갓집 세 채도용산댁과 유영감집도 새까맣게 어두운 빈집이 됐다문상에서 내려오는 한 길가에서 이미 컴컴해진 고추밭에서 임실댁이 고추 모종에 부토를 하고 있다


머지않아 저 할매들마저 '세상을 버리면' 마을 전체가 암흑과 적막에 잠기리라는 생각만으로도 농촌의 미래가 짐작된다철 따라 밭을 치는 채소 농사도, 한가한 꽃밭 손질도 어쩌면 우리가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다. 엊저녁 비에 물이 고인 논에서만 암컷을 찾는 수컷 개구리들이 얼마나 소란하게 울어쌓는지 그게 이 시골 산비탈 마을이 살아있다는 유일한 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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